[미디어스=윤광은 칼럼] ‘가짜사나이’는 올해 한국 최고의 화젯거리가 된 유튜브 콘텐츠다. 시즌2까지 이어지며 개별 영상들이 천만이 넘는 재생 수를 달성했을뿐더러 파생된 이야기가 난무했다. 교관으로 출연한 이들에 관한 논란이 불거지는 와중 영상 업로드가 중단됐지만 이 유튜브 콘텐츠는 곱씹어 볼 의미가 있다. 왜 군사 훈련 영상이 이토록 흥행하게 되었고 왜 사람들은 열광했는가. 이건 단순히 이 영상이 가학적이란 사실을 지적하는 것을 넘어 이런 영상을 초 히트작으로 만든 사회 현실과 사람들 의식 구조에 관한 물음이다. 어쩌면 논란의 열기가 식은 지금이 교관들에 관한 가십과 선을 긋고 차분한 시선으로 돌아볼 수 있는 적기일 것 같다.

‘가짜사나이’는 연예인들이 훈련소에 입소하던 공중파 예능 ‘진짜 사나이’를 업그레이드한 영상이다. 일반적인 군대 체험에서 특수부대 훈련 체험으로 강화된 기획인데, 얼개를 살펴보면 가히 익스트림 콘텐츠라 할 만하다. 참가자들은 쉴 틈 없이 얼차려를 받고 육체적·정신적으로 부하가 가해진다. 설령 특수부대 훈련이 나름의 취지로 심신의 극한 상황을 연출한다고 쳐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예능으로 촬영돼 인기를 끌고 일상에서 수용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가짜사나이2 [왓챠 제공]

댓글 창을 보자. 이 영상을 '재미'로 본다는 말이 무색하다. 참가자들의 자세를 평가하는 말들, 그들이 얼마나 군말 없이 괴로움을 견뎌내는지 평가하고, 열외를 위한 시도, 그러니까 '뺑끼'와 '민폐'를 성토하는 말로 진지하다. 시청자들이 얻는 쾌감이 있다면 알맹이는 그런 거다. 컴퓨터 의자에 허리를 빼고 앉아서, 침대 장식대에 목을 괴고 누워서, 유튜브 영상을 보는 안락한 자리에서 나락에 떨어져 뒹구는 인간들의 아우성을 구경하는 것이다.

물론 참가자들은 밑바닥 인생이 아니고, 나름대로 유명한 서브컬처 셀럽들이 출연을 자원했다. 영상 제작을 가능케 하고 얼차려를 전시하는 명분이 되겠지만 그런다고 내용물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달리 말하면, 인간이 겪는 피학을 구경하는 걸 합리화해 주는 명분이다. 이런 영상이 인기를 끄는 건 그럴 수도 있다. 선정적 성격의 콘텐츠가 인기를 끄는 건 그 자체로 이상할 건 없다. 정말로 곱씹을 대목은 그 체험에 삶을 바꿀 수 있는 일반론적 ‘교훈’이 있다고 합리화, 사회화, 도덕화 되는 지점이다.

특수부대의 이념이 호국이라면 ‘가짜사나이’의 주제의식은 갱생이다. 특수부대는 말 그대로 실전에서의 특수 임무를 위해 존재하지만, 전투 기술을 빼놓고 육체와 정신을 달구는 훈련만을 받을 때, 실용성이 없는 커리큘럼의 목적은 참가자들의 인간성을 재조립하는 ‘훈육’이 된다. 출연자들은 저마다 자신을 바꾸고 싶어서, 거듭 태어나고 싶어서,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어서 출연을 결심했다 말한다. 교관들은 얼차려를 주는 와중, 참가자 정신 자세를 꾸짖고 계도하며 무언가 명언 같은 걸 던지고 싶어 한다. 훈련소에 입소하는 ‘가짜’ 훈련병들이 실제 특수부대처럼 고초를 겪으며 ‘진짜’ 사나이, 어떤 관문을 통과해낸 참된 인간으로 거듭나는 프로세스다.

이건 밑바닥 인간들을 징집해 굴리면서 개조시키려던 삼청교육대 식 논리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압력을 주입하면, 그것을 한계치까지 견뎌낸다면 삶과 내면이 바뀐다고 믿는 미신 같은 법칙, 병영 문화의 극단. 이런 대의명분이 위력에 의한 피학을 믿고 순응해야 하는 규범으로 비튼다. 이를테면 칠팔십 년대 군사정권 식 병영문화 이데올로기가 2020년에 귀환해 하드고어 한 버전의 자기 계발 서사가 된 것이다. 이건 지금 사회에 넓게 퍼진 관념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강자에 대한 동경심, 힘에 대한 복종, 타인에 대한 단념, 극도의 자기중심적 인간관 같은 거다.

이 영상에서 개인이 삽입된 환경, 규칙의 합리성에 대한 의심은 당연히 논외 된다. 가장 혹독한 명령을 가장 착실하게 수행하는 사람이 '개념인'이 되는 게임이다. 그러는 새 군기 문화와 권위주의, 교관들의 압도적 완력, 그러니까 '힘'에 대한 왜곡된 관념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재생산된다면? 출연자들이 겪는 피학을 그들의 자발적 선택 탓으로만 돌리며, 그들이 느끼는 고통에 대한 이해를 거절한 채 정신 자세를 평가하는 태도는 자신의 상승 의지를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나태함, 사회 구성원이 될 자격 없음을 혐오하는 것으로 실천되는 이 시대 극우화된 자기계발주의와 통한다.

가짜사나이2 [카카오TV 제공]

요즘엔 유튜브에서 밀리터리 콘텐츠가 피트니스 콘텐츠와 콜라보하며 범 취향적 콘텐츠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가짜사나이’ 역시 그런 경향 아래 탄생한 기획이다. 현실에서 도태되어 가는 남성성이 인터넷이란 유사 사회에서 판타지로 재현된다고 할까? 그게 근육질의 남성상과 '군대'라는 대상을 매개물로 거쳐서 나온다면? 아니할 말로, ‘가짜사나이’는 약간만 낯선 시선으로 쳐다봐도 웃지 못할 콘텐츠다. 현역 군인도 아닌 민간인들이 국가 권력 자체인 것처럼 같은 민간인에게 위력을 행사하고 나중엔 계급장까지 달아준다. 이 작위성에 안테나를 끄고 영상에 몰입하게 하는 건 특수부대 출신 교관들의 약력이 주는 권위, 그리고 출연자들이 순종하는 게 마땅해 보이는 그들의 떡 벌어진 근육질 몸이다. 이런 ‘탁월한 남성성’이 저 ‘군대놀이’를 의심치 않게 만드는 공감각적 권위를 준다.

군 복무를 고통스러운 차별적 경험으로 혐오하는 이들이 군대 문화의 모진 부분을 증폭한 특수부대 체험에 심취하는 건 이상하다. 군대에 얽힌 피해의식만 있고 군대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병영'이란 교집합을 통해 근육질 교관들을 동경하며 자신을 그들 근처에 가져다 놓고 군 복무 경험에 대한 존중을 요구한다. 유튜브를 비롯한 뉴미디어는 저마다의 의식, 취향과 좀 더 날 것 그대로 조우하는 미디어 체험을 주고, 그럴수록 사회에 가라앉아 있는 무언가가 비집고 떠오를 틈새는 벌어진다.

시청자들은 ‘가짜사나이’가 보여주는 가학성과 병영 문화의 악습에 대한 비평에 “불편하면 그냥 안 보면 된다”라며 취향의 차원으로 논점을 환원해 미봉한다. “출연자들의 동의하에 언제든 포기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참가한 훈련인데 뭐가 문제냐”라고 개인의 ‘자발적 선택’을 절대시 하며 방송에 대한 심도 있는 진단을 거부한다. 이 또한 구조맹적 사고와 이분법적 태도가 대세가 되어 사회에 대한 시선이 단순화되어 가는 현실의 징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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