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밴드는 성공했을까? 아직 끝나지도 않은 프로그램의 성패를 논하는 것이 어색하기는 하지만 톱밴드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시청률에서는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과 비교할 수 없는 초라한 성과에 머물고 있지만, 편식이 심한 한국 가요계에 록음악 혹은 밴드음악이라는 장르를 탄탄하게 개척하고 있다는 내실에서는 다른 오디션보다 오히려 높은 점수를 줘도 충분하다. 그래서 진작 시즌2 제작이 결정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많은 밴드들이 시즌2를 향한 뜨거운 땀방울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톱밴드는 기본적으로 아마추어들이 그 대상이다. 또한 직장인 밴드라고 해야 옳다. 비록 밴드를 오래 해오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생계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적어도 밴드 이외에 하나의 직업을 가져야만 하는 한국 실정에서 몇몇 프로밴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직장인밴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톱밴드에 참가한 밴드들 중에서 고교생 밴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직장인 밴드라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누구나 어려운 형편 때문인지, 소수 음악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유난히 톱밴드는 참가자들 사이에 경쟁의식보다는 오히려 서로를 응원하고, 상대의 음악을 즐기려는 남다른 모습들이 보여 왔다. 물론 서바이벌 오디션의 특성상 누구는 떨어져서 마음이 심란하고, 반대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밴드는 기쁠 수밖에 없지만 일대일 맞대결로 진행된 16강 토너먼트에서 탈락한 밴드 누구도 심사위원들의 결정에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지난주 2인조 밴드 톡식이 재해석한 ‘나 어떡해’가 큰 화제가 될 정도로 톱밴드의 위력이 조금씩 쌓여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보다 톱밴드를 놓치지 않고 사수하는 시청자들이 더 즐거워하는 것은 이 오디션에 참가한 모든 밴드들이 누가 위로 올라가더라도 한마음으로 기뻐할 줄 아는 모습들이라고 생각된다. 톱밴드를 통해서 스타 밴드가 만들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다른 오디션들과 비교해서 밴드들의 아주 순수한 모습들은 음악 이외에 큰 기쁨을 주는 요소이다.

그런데 그런 훈훈한 분위기를 한방에 망쳐버린 일이 벌어졌다. 톱밴드 16강 토너먼트 마지막 대결은 심사결과 88대 12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라떼라떼가 직장인밴드 S1을 이겼다. 결과가 발표되고 당연히 MC 이지애 아나운서가 코치인 신해철과 인터뷰를 하려고 하는데 돌방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신해철은 인터뷰를 요청하는 이지애 아나운서의 말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이때 이지애 아나운서는 퇴장하는 신해철을 향해 몸을 굽혀서 “인터뷰 잠깐 할 수 있을까요?”하고 상황을 수습하려 했지만 신해철은 대꾸도 하지 않고 행사장을 떠났다. 나중에 제작진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신해철은 그 결과를 직장인 밴드에 대한 멸시 같은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랬다고 했다. 그러면서 “톱밴드의 심사결과에 불복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냥 내 상당시간을 직장인밴드 운동에 투신하고, 또 앞으로 지속적으로 S1의 코치로 계속 음악을 하면서 이 팀이 진짜로 음반을 내고 활동을 하고 잠실주경기장에서 S1이 콘서트하는 것을 나는 봐야겠다는 게, 저의 불복이죠”라고 했다.

그러나 심사결과에 대해서 멸시를 느끼기 전에 신해철이 S1을 탈락시킨 주범이라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했다. 신해철은 S1에게 전원이 춤을 추기를 요구했고, S1은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연습 때는 별무리가 없었는지 몰라도 현장상황은 너무 좋지 않았다. 특히 남녀 메인보컬이 숨이 차서 음정이 전반적으로 흔들렸고 그러니 당연히 화음도 맞을 수가 없었다. 춤을 추면서 노래를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결국 신해철의 의욕은 중요한 무대에서 최악의 결과를 빚고 말았다.

S1은 비록 패자부활전을 통해서 16강에 올랐지만 예선에서는 상위에 랭크될 정도로 실력이 탄탄한 밴드다. 그런 밴드가 신해철의 코치를 받아서 분명이 연주적인 측면에서 좋아진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8강전략으로 선택한 춤이 문제였다. 그 책임은 S1도, 심사위원도 아닌 신해철에 있음은 그 자신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멸시감 운운하며 방송 중 자리를 이탈한 것은 적반하장이고, 판을 엎고자 하는 깽판이었다.

그것은 방송사고 이전에 톱밴드에 참가한 밴드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페어플레이 정신 그것을 망치는 행위였다. 톱밴드에 참가한 아마추어 밴드들은 모두와 함께 아름다운 동행을 하고자 했으나 신해철은 그것을 추하게 변질시켰다. 신해철은 톱밴드에서만 사고(?)를 친 것이 이번으로 두 번째다. 앞으로 더는 톱밴드에 얼굴을 비출 일이 없겠지만 그로 인해서 아마추어 밴드들이 애써 밴드음악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거대한 장정을 방해한 점은 큰 오점으로 남았다. 그리고 탈락한 마지막이 아름답게 기록되는 것조차 망친 신해철은 누구보다 S1 멤버들에게 백배사죄를 해야 할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