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의 남자에는 두 가지의 사랑이 있다. 하나는 인륜도 버릴 정도의 미친 사랑이 있고 다른 하나는 인륜 때문에 차마 내색도 못할 사랑이 있다. 전자는 분명 세령의 사랑이고 후자는 마침내 마지막이 될지 모를 거사의 전야가 돼서야 겨우 입을 떼어 ‘서방님’이라 자기 남자를 불러본 경혜의 사랑이다. 그리고 그들은 마지막이 될 첫날밤을 아주 늦어서야 맞을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비록 배시시한 미소를 입에 물을 수 있었지만 그것은 회광반조의 기쁨일 뿐이었다. 이 비극적 부부에게 그나마 첫날밤을 허락한 작가가 인정머리는 있어 보이는 장면이었다.
모름지기 사극에 있어서의 사랑은 주로 경혜쪽이었다. 전쟁이건, 정변이건 어떤 상황이라도 조물주가 내린 연애의 본능을 죽어도 억제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조선이라 해서 사랑이 없을 리는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사랑밖에 난 몰라 하는 시대가 아닌 조선 그것도 계유정난을 거친 조선의 밤하늘에 사랑이 녹록치는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그것이 세조의 딸과 김종서의 아들이라면 일단 환경은 로미오와 줄리엣은 비교도 못할 극한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령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알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어쩐지 불편을 겪게 된다. 적어도 조선이란 사회를 생각하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으로 시작해서 결국 용서받지 못할 사랑이라는 생각을 영 떨쳐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랑이 귀해도, 또한 아비가 정말 죽을죄를 지은 것이 분명하다 할지라도 그 딸이 아비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방조한다는 것을 용납하기 힘들다. 그래서 승유와 세령의 사랑은 어떤 멋진 대사와 장면을 만들어도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무엇보다 이들이 사랑이 빛날 수 없는 것은 계유정난의 광풍이 몰아치는 역사의 한 가운데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경혜는 정종에게 무사히 돌아오라 했고, 정종 역시 그러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그러지 못할 것이다. 비록 아직 죽지는 않겠지만 결코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이 부부가 느끼는 불안인 동시에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도 하다. 비록 세령과 승유의 사랑만큼 많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지만 진짜 사랑은 정종에게서 찾게 된다. 순전히 취향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승유와 세령의 사랑은 불편이 느껴진다. 승유는 사랑을 잡아도 이상하고, 버려도 이상하게 됐다. 그렇지만 정종과 경혜의 사랑은 비록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긴 하지만 거리낄 것이 없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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