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탁종열 칼럼] 한국경영자총연합회(이하 경총)는 지난 25일 국회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경영활동을 위축한다”는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경총은 “현행 산업재해보건법에 규정된 사업주 처벌 형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기업이 안전, 보건 조치를 위반했을 때 싱가포르는 2년 이하 금고형, 독일・프랑스・캐나다는 1년 이하 징역을 부과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사망 사고에 대한 처벌 기준도 따로 없다”고 밝혔습니다. 경총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도입되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어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킨다”며 처벌 강화보다 사업주와 현장 안전 책임자, 원·하청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정립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경총의 이러한 주장은 호주, 영국, 캐나다의 ‘기업살인법’을 외면하고 세계 최고의 산업재해 사망률을 은폐하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이는 2018년 김용균 씨 사망 이후 산업안전법 개정 당시에도 똑같이 반복된 주장으로, 최근 반복되는 기업살인에 눈감고 살인 면허를 달라는 주장에 다름없습니다.

9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촉구를 위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호주의 ‘Crimes(Industrial Manslaughter) Amendment Act 2003’은 종사자, 하청 노동자, 재택근무자, 견습생, 수습생, 자원봉사자를 피해대상으로 규정하고 있고, 처벌대상으로는 기업(원청, 하청), 정부 상급관리자(장관, 최고경영자 등), 기업을 두고 있습니다. 양형 시 벌금은 개인에게는 25만 달러(약 2억 8000만 원), 기업에는 125만 달러(약 14억 원)를 부과할 수 있고, 징역은 25년 형까지 가능하며 두 가지 처벌을 동시에 선고할 수 있습니다. 또 처벌 기업의 비용 최고한도도 500만 달러로 약 60억 원에 이릅니다.

영국의 기업살인법은 1997년 런던으로 향하던 고속열차가 화물열차와 충돌해 7명이 사망하고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기업처벌이 이뤄지지 않자 2007년 제정됐습니다. 이 법에서는 기업이 ‘운영되고 조직되는 방식’의 실패로 사망 사건이 발생하고, 그 운영 방식의 실패가 고위 경영진에 의한 것이라면 해당 기업을 기업살인죄로 처벌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2008년에는 한 건설노동자가 현장 근무 중 웅덩이에 들어갔다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안전수칙 위반으로 해당 기업에 6억9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습니다.

캐나다의 ‘단체의 형사책임법(Criminal liability of organizations)’은 1992년 웨스트레이(Westray) 광산에서 가스폭발 사고가 계기가 됐는데, 피해대상이 종사자와 일반시민으로 처벌대상이 공공단체, 법인, 협회, 회사, 동업, 노동조합, 지방자치단체, 사단 등 광범위하며, 부상일 경우 개인에게 최대 10년의 징역을, 사망의 경우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고 무한벌금과 최대 15할의 피해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기업에 대해서는 전과기록을 남기고 보호관찰이 이뤄지며 무한벌금과 최대 15할의 피해자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지난 2018년 말에도 기업의 안전관리 부실로 사망한 김용균 씨 사건을 계기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셌지만, 경총의 반대로 경영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 하한선(징역 1년 이상)을 두는 조항은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1년에 2400여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세계 최고의 산업재해 발생 국가입니다. 하지만 기업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어, 반복된 산업재해 사망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건으로 40명이 사망했지만 기업에 부과된 처벌은 벌금 2000만원에 불과했고, 얼마 전 남이천 물류창고 화재사건에서 38명의 사망으로 이어졌습니다.

고용노동부가 2013∼2017년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위반 사건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산업안전법 위반 재범률은 97%로 일반 범죄 재범률의 2배입니다. 2017년 산업안전법 위반 관련 사건 중 정식 재판에 넘겨진 경우는 4.64%에 불과하며, 책임자가 구속 수사를 받은 사건은 단 1건(0.007%)에 불과합니다. 경총의 주장처럼 지난 십수년동안 법 제도가 개선됐고 노동부 감독 인력이 2배 가까이 늘었음에도 산재사망이 줄지 않는 이유는, 1명이 죽든 10명이 죽든 ‘평균 420만원 벌금’이란 솜방망이 처벌입니다.

우리나라 산업재해의 또 다른 특징은 그 피해가 하청노동자에게 집중된다는 데에 있습니다. 건설업의 경우 하청노동자 사망 비율은 90%이고, 최근 5년간 한국전력공사의 산재 사고 사망자 32명 중 31명이 하청노동자입니다. ‘위험의 외주화’가 전 사회에 말기암 환자처럼 퍼진 상황에서 원청에 죽음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살인면허를 부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처음 제기된 것은 2013년입니다. 그때마다 경총은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는 같은 주장으로 반대했습니다. 그 사이 매년 2400명, 16,000여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습니다. 지난 22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아니라 기존 산업안전법 개정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합니다.

택배노동자의 잇단 과로사에 모든 언론이 ‘재발방지 대책’을 주문하지만, 정작 그 죽음을 멈추기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해서는 경총의 반복된 주장만 일방적으로 중계하고, 그 주장이 사실인지 검증하지 않는다면 언론은 ‘세계 최고의 산업재해 사망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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