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방송 3사 가운데 시청률 1위로서 전통적 뉴스 강자지만, 시민사회로부터 받는 평가는 방송 3사 가운데 가장 싸늘한 상황입니다. KBS가 시민사회의 비판에 대해 ‘참여정부 시절에는 보수단체가 편향성 논란을 제기했다’며 귀를 닫고 있는 가운데, KBS 기자는 논란의 중심에 선 KBS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미디어스>는 익명의 KBS 기자로부터 직접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보다 자유롭고 신랄한 비평을 위하여 필자와의 협의를 거쳐 익명 형식으로 내보냅니다. ‘즐감’ 부탁드립니다!

바야흐로 ‘꼼수’의 시대다. 김어준의 ‘가카 헌정 방송’은 주류 언론에서 주지 못하는 정보에 적절한 카타르시스까지 제공하면서 ‘세계 1위’ 방송으로 등극했다. 주류 언론이 반성해야 할 지점은 명확해 보인다. 그런데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렇게 심각한 이야기가 아니다. ‘꼼수’라는 단어가 유행하다보니 ‘꼼수’ 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KBS뉴스의 꼼수’에 대해서 한 마디 하고 싶을 뿐이다. KBS의 꼼수는 ‘섬세하고 꼼꼼한 가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다. 사회적인 해악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도 가카의 꼼수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가카 헌정 방송’이라는 점에서도 다르지 않다.

▲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2일 오후 서울 서대문 구청에서 열린 `2011희망공감청춘콘서트'에 시골의사 박경철과 함께 참석,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오늘 하는 이야기는 100% 구라라는 점을 먼저 밝힌다. 우리 KBS 간부들은 절대 그럴 분들이 아니지만 불평불만만 일삼는 일부 좌빨 세력들은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전할 뿐이다. 나도 꼼수 좀 부리자.

추석 직전 ‘안철수’라는 인물은 한국 사회의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비단 서울시장 선거나 정권교체 같은 지엽적인 분야를 넘어서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떤 갈증을 느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사건’이었다. KBS 9시뉴스는 이 사건을 어떻게 다뤘을까.

9월 2일 KBS 9시뉴스는 ‘안철수.박원순 서울시장 출마?...정치권 술렁’이라는 제목으로 안철수 원장 관련 뉴스를 처음으로 전한다. 이후 안철수 원장은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였고, 드라마틱한 출마 양보가 있었고, 이후 대선 지지율 조사에서도 박근혜를 넘는 ‘기적’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TV뉴스로 볼 때 이만한 ‘꺼리’는 없다. 무척이나 신선한 ‘인물’이 주인공이며, 스토리도 기가 막히게 드라마틱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가지는 함의도 다각도로 분석이 가능한 소재다.

KBS 뉴스의 수뇌부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이른바 ‘안철수 신드롬’은 기존 정치권 전체에 대한 염증을 넘어서 현 집권세력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가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안철수가 ‘반 한나라당’을 명확하게 하고나서는 정말 ‘허걱!’ 했을 것이다. 안철수 관련 기사는 다루되 그 의미는 축소해야 한다. 물론 축소한다는 느낌을 줘서는 안 된다. 이제 꼼수가 시작된다.

KBS뉴스는 안철수 신드롬에 대해서 분석하는 기사를 보도하지 않았다. 단순 스트레이트 뉴스로 중계보도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지지율과 관련된 언급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일종의 금기가 된 셈이다. 9월 3일 9시뉴스에서는 ‘무소속 후보 급부상...정치권 바짝 긴장’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안철수를 박찬종과 비교하며 무소속 후보의 한계를 부각시키고 평가 절하했다. 하다못해 김재철의 MBC도 9월6일 뉴스데스크에서 ‘안철수 신드롬 무엇을 남겼나’와 9월4일 ‘안철수 신드롬의 이유는’이라는 꼭지를 통해서 사회적 의미를 분석하려고 노력했다. 이 정도 큰 정치적 이슈에 대해 ‘분석’이 전무한 뉴스가 과연 정상적인 뉴스일까. 그렇다고 KBS뉴스 수뇌부들을 무뇌아들로 치부하지는 말아 달라. 그들의 섬세하고 꼼꼼한 고민의 결과일 뿐이니까.

▲ 9월 5일 KBS <뉴스9> 3번째 꼭지

프레임도 새롭게 설계한다. 안철수는 9월 5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현 집권세력이 한국사회에서 그 어떤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 반대한다. 제가 만일 어떤 길을 선택한다면 그 길의 가장 중요한 좌표는 이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과의 선을 명확하게 긋는 발언이다. 하지만 9월 5일 KBS 9시뉴스의 ‘안철수, 박원순과 회동... 출마여부 결정’이라는 리포트는 이렇게 시작한다.

"기존 정치권은 제발 자각했으면 좋겠다."
안철수 교수가 한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자신에 대한 여론의 호평에 대해 안 교수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대리 표현된 것이라는 겁니다. 한나라당이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렇다고 민주당에게도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9월5일 KBS 9시뉴스 ‘안철수, 박원순과 회동...출마여부 결정’

이 리포트에서 ‘한 인터넷 언론’은 물론 오마이뉴스다. 같은 인터뷰에서 “나는 현 집권세력이 한국사회에서 그 어떤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 반대한다. 제가 만일 어떤 길을 선택한다면 그 길의 가장 중요한 좌표는 이것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어디로 갔을까. 그래. 인터뷰를 취사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취사선택의 결과로 안철수 신드롬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라는 상투적인 프레임에 갇혀 버린다. 지금 현재, ‘2011년 9월’이라는 현재성은 상실되고 수 십 년 째 반복된 ‘정치적 혐오’의 표출로 박제화 된다.

KBS뉴스의 꼼수는 한 발 더 나간다. 안철수 신드롬에는 그렇게 심드렁했던 KBS뉴스가 9월 8일에는 ‘‘안풍’에 박근혜 대선 행보 빨라지나?’라는 분석기사를 내 놓는다. 이 리포트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른바 '안철수 바람'을 계기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대권 행보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 전 대표도 현장 행보를 강화하겠다고 말해 움직임에 변화를 주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000 기자의 보돕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대선후보 경쟁력이 거론되면서 부동의 1위였던 박근혜 전 대표의 행보의 변화가 관측되고 있습니다. 당내에서도 박 전 대표가 본격적으로 나설 때가 됐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KBS 9시뉴스 ‘‘안풍’에 박근혜 대선 행보 빨라지나?’

상황을 설명하는 기사인지, 대선행보를 빨리 시작하라는 충고인지 뭔지 모르겠다. 이 와중에 부동의 1위 박근혜와 안철수의 지지율이 얼마였는지는 물론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가카 헌정 뉴스’가 ‘박근혜 헌정 뉴스’로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이라고 보면 기우일까.

안철수에서 박근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KBS의 꼼수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건이 또 있었다. 9월 7일 박근혜의 5촌 조카 2명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유력한 대선주자의 친인척 두 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한 명은 살해된 채, 한 명은 자살한 채. 더구나 박근혜의 친인척은 재산관계가 무척이나 복잡해서 갈등이 계속돼 왔다. 무척이나 뉴스 가치가 높은 사건이다.

여기서 다시 KBS 보도국 수뇌부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간다. 9시 뉴스에 내자니 뭔가 부담스럽다. (그게 도대체 뭐니?) 그렇다고 빼자니 욕을 얻어먹을 게 두렵다. 그래서 꼼수를 생각해 냈다. 9시 뉴스에서는 빼자. 그리고 11시 뉴스에 슬쩍 끼워 넣는다. 뭘 하는 것도 아니고 뭘 안하는 것도 아니다. 박근혜에 대해서 변명의 알리바이는 만들고, 시청자들에 대해서도 알리바이를 만든다. 내가 십수년에 걸쳐 수없이 본 KBS식 꼼수다. 참 머리는 좋은데 다 보인다 씨바. (김어준 말투일 뿐이다.)

물론 지금까지 쓴 모든 말들은 소설에 불과하다. 우리 KBS 간부들은 절대 그럴 분들이 아니다. 자나 깨나 공영방송과 저널리즘 걱정에 잠 못 이루시는 우리 간부들은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미천한 평기자가 잠깐 소설을 쓰면서 불충을 저질렀다. 심심한 사죄를 드린다.

P.S. 꼼수체로 쓰려고 했는데 별로 재미는 없다. 죄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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