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권 째 월간 토마토가 세상에 나왔다. 일백도 채우지 못했지만 창간 즈음을 생각해보면 엄청나다. 간혹 지금껏 나온 토마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호를 묻는다. 매호 그지없이 소중하지만 ‘창간호’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머리와 가슴으로 인식하던 ‘꿈’이 구체적인 실체로 눈앞에 놓여 있던 그 순간을 어찌 잊겠는가?

창간 준비호에서 드러난 문제도 거의 개선해 나름 잡지다운 꼴을 갖췄다. 종이도 가격이 좀 나가는 것을 골라 사진 표현과 텍스트 모두 안정적인 발색을 보였다. 그런 고급지는 창간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말이다.

‘키스, 잡지 표지 콘셉트로’

창간호 표지는 지금도 머릿속에 또렷이 박혀 사라지지 않는다. 해변에서 남성과 여성이 ‘키스’하는 모습이었다. 며칠에 걸친 논의 끝에 월간 토마토 첫 표지 콘셉트로 ‘키스(kiss)’로 결정하고 고른 사진이었다.

잡지 창간 전, 기본적인 학습을 진행할 때 외국 잡지 중 ‘윙크’하는 사진을 표지 콘셉트로 사용한 잡지를 보았다. 할렘에 살고 있는 흑인부터 대중가수 마돈나까지 다양한 포즈로 윙크하는 그들의 모습을 표지로 삼았다. 지위 고하, 피부 색, 재산 정도, 성별 등은 모두 달라도 해맑게 윙크하는 모습은 똑같다는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잡지가 내세우는 기본 철학을 표지에 담아내는 것이 부러워 우리도 시도해 본 것이다. 가장 인간적이며 강렬한 느낌을 갖는 ‘키스’는 우리 토마토 정신을 나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기획단계에서는 1년 혹은 2년 동안 다양한 키스 사진을 표지에 실을 생각이었다. 사랑에 푹 빠진 20대 남녀는 기본이고 60~70대 노부부, 엄마와 아들, 아빠와 딸, 교복 입은 청소년,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등등. 가벼운 뽀뽀부터 격렬한 딥 키스까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억압과 관습, 증명하지 못한 상식 등에 대한 거부와 함께 인간 본능인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출발하는 ‘평화’ 의지를 담아내고 싶었다. 너무 거창한가?

당시에 많이 답답했던 모양이다. 손가락질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세상을 향해 커다란 바위 하나 굴려보고 싶은 젊은 객기도 이런 생각을 더했을 게다. 시작은 이리도 거창했으나 끝은 무척 초라했다.

▲ ⓒ이용원
‘상상과 전혀 다른 현실’

모델을 섭외해 스튜디오 연출 사진을 표지에 쓰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아마추어 모델을 고용하면 키스라는 상황연출이 어려울 것 같고 프로 모델은 섭외 자체도 어려울뿐더러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다. 결국 선택한 것은 독자대상 지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독자가 몇 명이나 되었다고 그런 무모한 짓을 벌였는지 모르겠다. 지인을 통해 섭외도 하고 간간히 신청자도 있었다. 결혼을 앞둔 연인과 7살 꼬마 어린이, 아이 둘을 둔 부부까지, 우려했던 것보다는 표지모델 구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카메라 앞에 서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에게서 의도한 느낌을 뽑아내는 것이 문제였다.

표지 촬영하면서 전문 모델과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아티스트 등이 왜 직업으로 분화되었는지 가슴 절절하게 깨달았다. 촬영을 마치고 모니터로 확인하는 사진은 모두 평범했다. 의도한 느낌이 제대로 살지 않았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이었다. 잡지를 발행하면서 피드백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부끄러워서 아이들이 있는 곳에 월간 토마토를 꺼내 놓을 수 없다는 항의였다. ‘19금 잡지’로 분류되는 순간이었다. 또 문화예술잡지 월간 토마토와 키스하는 사진이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를 물어왔다. 생뚱맞았나 보다. 나름 깊은 의미를 담았는데 말이다.

그러나 이정도로 표지 콘셉트를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정작 의지를 꺾은 것은 애초에 기획한 여러 상황을 만족시킬 표지모델을 섭외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60대 노부부 40대 중년, 교복 입은 청소년, 동성 등 통념상 부끄러움이 많거나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콘셉트는 더욱 그랬다. 무리한 기획임을 인정하며 접었다. 하하.

‘창간호, 그 강렬한 기억’

창간호를 내는 그 순간,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상을 만났다. 상황과 사정 등 매달 잡지 발행일에 맞춰 토마토를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는 원칙이 삶에 들어와 버린 것이다. 이거 참, 당혹스러운 일이다.

높은 산에 올랐다가 내려올 때 배낭끈은 어깨를 짓누르고 다리에 힘이 풀려도 결코 멈출 수 없는 현실과 비슷하다. 그나마, 아주 조금씩이긴 하지만 월간 토마토를 알아가는 사람이 늘고 도와주겠다고 손을 내미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 커다란 힘이었다.

무엇보다 자발적 구독자가 드물지만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환호성을 지를 만큼 큰 기쁨이었다. 자발적 정기구독자 확보는 마수걸이 한 기분과 유사했다.

이즈음에 약속도 늘었다. 호기심 반 기특함 반으로 만나길 희망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많은 초창기 만남 중에 잊히지 않는 만남이 있었으니, 대전 사립대학교 한 교수와의 만남이다. 이 만남은 지금 토마토가 세상에 나오는데 큰 기여를 한 만남이었다.

마감 때문에 정신없던 어느 날, 월간 토마토에 대한 전폭적 지지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으니 바쁘지만 잠깐 나와 달라는 이야기였다. 바빴지만 경영을 책임 진 사람으로서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부지깽이 도움이라도 절실했던 때였으니 말이다.

저녁 어스름에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 교수는 흡사 면접이라도 보는 것처럼 많은 질문을 해댔다. 창간 동기, 창간 자본, 창간 멤버, 운영 방식, 잡지 콘셉트 등을 물었다. 정말 투자라도 고려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 면접에 응하는 사람처럼 시종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로 답변했다. 어느새 내 등도 꼿꼿하게 서 있었다.

‘어차피 죽을 나무’

답변을 들으며 그 교수는 중간 중간에 조언도 곁들였다. 언론사 경험 5년에 관련학과 전공자에게는 정말 새삼스러울 것 없는 조언이었다. 그래도 고개 끄덕이며 진지하게 들었다. 좋은 이야기는 자꾸 듣고 상기해서 나쁠 것 없으니 말이다.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쯤 구독신청을 요구했다. 당시 만나는 사람에게 구독신청서를 내미는 것은 거의 습관이었다.

절박함에서 나온 습관이기에 때론 저돌적으로 보이거나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정도였다. 테이블 위에 구독신청서를 다시 나에게 밀며 그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저는 죽을 나무에는 물을 주지 않습니다”

구독신청을 요구하고 거절당하는 것이야 일상다반사니 별반 속상할 일도 아니었는데, 문제는 거부하며 함께 이야기한 사유였다. ‘어차피 죽을 나무’라는 문구가 계속 머리를 맴돌았다.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 ‘조언’만 아니었어도 충격이 훨씬 덜했을 텐데. 거의 패닉상태였다. 소태를 씹은 것 같이 정말 썼다. 깨달음도 있었다. 아무리 진심어린 조언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결과적으로는 초반 의지를 다잡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어차피 죽을 나무’라는 표현이 오히려 ‘살아야 한다’라는 강한 동기 유발이었다.

그래도 기왕이면 죽을 가능성이 큰 나무에 필요한 영양분과 물을 충분히 공급하려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 마음이었다.

대전광역시에 <월간 토마토>라는 잡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만 4년을 넘어 5년 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금을 만들어내려 했던 연금술사처럼 ‘뭉클한 감동’에 중독돼 계속 실험을 반복하며 주위를 괴롭힙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월간지를 만들면 한 달 중 열흘은 빈둥빈둥 놀아도 되는 줄 알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현재는 월간지를 만들려면 한 달을 60일처럼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어설픈 도전을 계속하며 히말라야라도 오르는 사람처럼 결기에 차 있다가도 고집불통 철딱서니가 아닌가 싶어 은근 뒤통수가 간지럽기도 합니다.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잡지 만들기는 여전히 태풍에 휘둘리고 표류하며 여행 중입니다.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우리끼리 치열한 그 여행을 가볍게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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