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남규 칼럼] 2004년 제17대 총선은 진보정당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선거다. 처음으로 도입된 비례대표 투표의 기대효과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열풍을 타고 민주노동당이 무려 10석을 획득해 사상 첫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총선 직후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20% 가까이 됐다. 그러나 이후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2006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10% 밑으로 떨어졌다.

그해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은 서울시장 후보로 36세의 김종철을 선출했다. 61세의 당대표 출신 김혜경이 그에게 졌다. 선출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어떤 기자가 반토막된 당 지지율을 반성하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김종철 후보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내가 된 것이 (민주노동당의) 반성문이다.” 김종철 후보의 무엇이 달랐기에 반성문이 됐던 걸까. 우선 젊었다. 지금 기준으로도 서울시장급 선거에서 36세 후보는 상당히 젊은 편이다. 또한 당시 민주노동당 주류를 차지한 자주파가 아닌 평등파에 속하는 후보였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당시의 여당인 열린우리당과의 명확한 차별화를 이슈로 내걸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열린우리당을 아직도 진보라고 인식시킨 게 첫 번째 잘못이다. 진짜 진보정당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이겠다.”(기자간담회 발언) 차별화를 위한 무기는 민주적 사회주의였다. “민주노동당 이념대로 민주주의적 사회주의에 입각한 교육 보육 교통 에너지 기본권에 관심을 둬야 한다. 자본주의를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미디어오늘, “TV토론에서 당당히 사회주의 말하겠다”)

정의당 김종철 신임 대표가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5·6기 지도부 이·취임식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연합뉴스)

36세의 젊었던 김종철은 이제 50세가 되었다. 그 14년간 그는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으로, 진보신당이 사회당과 합쳐 이름을 바꾼 노동당으로, 노동당에서 정의당으로 옮겨갔다. 그 14년간 그는 동작구에서만 네 번의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고, 모두 낙선했다. 정동영, 정몽준, 이계안, 나경원 같은 ‘빅네임’들이 그가 부딪혀야 했던 상대였다. 그 14년간 후배 박은지와 2살 위 이재영‧오재영과 선배 노회찬은 세상을 떠났다.

14년이 흘러 그는 정의당의 대표가 됐다. 심상정 전 대표의 말마따나 “모든 당직을 섭렵하고 할 수 있는 것이 대표밖에 없었”을 정도로 치열했던 14년이었다. 그러나 그의 당선은 이번에도 이변이었다. 결선 상대 후보가 현직 국회의원이자 당내 주류 정파인 NL성향의 인천연합에 속했으며 ‘이념정당이 아닌 대중정당’을 표어로 내건 배진교 의원이었다. 김종철의 결선 진출도 의외였지만, 결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 주된 분석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을 뚫고 김종철은 당선됐다. 선거구도와 메시지만 보면 2006년 서울시장 당내 경선의 재판이다. 더 이상 젊진 않지만, 그의 정파는 여전히 주류가 아니며, 정의당은 여전히 민주당과의 관계를 두고 애매모호한 상태에 있다. 이런 구도에서 김종철은 더불어민주당과의 명확한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로 선거에 나섰다. 역시 이번에도 그 무기는 (직접적으로 명시하진 않았지만) 사회주의였다. “우리가 천착했던 무상의료, 무상교육, 주거공공성, 노후보장 등 전통적인 과제를 계승하면서 기본자산, 기후위기, 젠더 등의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고 답안을 내야 한다.”(서울신문, “대중들 이재명에도 호응… 더 선명한 진보 안 될 이유 없다”)

2006년 서울시장 당내 경선에서 그의 당선이 민주노동당의 반성문이었다면, 2020년 정의당 대표 선거에서 그가 당선된 것 또한 정의당의 반성문인 셈이다. “정의당에 ‘확실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당원 여론이 반영된 거라고 본다”(한겨레21, “정의당을 BTS처럼 ‘당대표’ 김종철의 도전”)는 김종철 대표의 자평은 그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 끊임없이 논쟁점이 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의 관계, 오랫동안 진보정당의 역할이었던 의제 설정에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이 주장해온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됐음에도 의석을 확대하지 못한 채 정체된 성장세 등 삼중의 위기에서 정의당원들은 김종철이 내건 ‘선명한 진보’를 선택했다.

14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제기되는 문제가 똑같고 내놓은 해답도 똑같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우선 2006년 노무현 정부부터 2020년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한국 자본주의의 큰 흐름이 바뀐 적이 없다는 뜻이다. 사회가 제대로 바뀌었다면 문제 진단이 달라졌을 테지만, 그런 적이 없기에 문제 진단도 똑같다. 한편 2006년 민주노동당부터 2020년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 정책에 입각한 ‘선명한 진보’ 노선을 해답으로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을 제대로 시도해 볼 기회조차 없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제대로 시도된 적이 없으니 실패할 기회도 없었고, 실패할 기회가 없었으니 수정될 필요가 없었다.

이제야 김종철은 제대로 시도할 기회를 얻었다. 6석, 원내 유일 진보정당의 수장으로서 그에게 주어진 책임감의 크기가 상당하다. 14년간 고집스럽게 주장해 온 정책이 정말로 ‘정답’인지, 그의 선거 슬로건처럼 ‘과감하고 단단하게’ 실험해보라.

아참, 14년의 시간 동안 바뀐 것이 있다면 그의 나이다. 14년 전 그는 젊은 정치인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젊지 않다. 언론은 그를 ‘포스트 노회찬’, ‘포스트 심상정’이라고 칭하지만, 누군가의 ‘포스트’로 불리기엔 다소 늦은 나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해야 할 것은 ‘포스트 김종철’을 키워내는 일이리라. 선명한 진보 노선의 과감한 실험과 ‘포스트 김종철’ 키우기, 김종철 정의당 신임 대표가 해결해야 할 핵심적인 과제가 있다면 이 두 가지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