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국정을 파탄시킨 세력들이 야당과 정부조직, 권력기관, 방송사,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 등 각계의 요직에 남아 새 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고 방해하고 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발언 가운데 일부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인적 청산’을 주창하고 나선 배경이 뭘까.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각종 의혹과 공천심사와 관련한 내부 갈등으로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총선용이라는 분석이 있다. 지금과 같은 판국이라면 야당에게 ‘질질’ 끌려가기 십상이고, 총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다다를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 같다.

안상수 원내대표의 발언 … 사람 챙기기와 언론장악 의도

이른바 수세적 국면을 공세적 상황으로 바꿔놓기 위해선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결집력’이 필요한데 이때 ‘좌파세력 어쩌구’ 만큼 유용한 게 없다. 나름 전략적인 발언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이것만을 의도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오늘자(12일) 아침신문들에 몇 가지 ‘단서’가 실려 있다.

▲ 경향신문 3월12일자 3면.
우선 한국일보. 오늘자(12일) 한국일보 3면을 보면 이런 부분이 나와 있다.

“청와대 안팎에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를 강하게 비판한 KBS ‘미디어포커스’의 보도가 구 정권 인사 사퇴론의 한 배경이 됐다는 얘기도 흘러 나온다. 한 관계자는 ‘이 보도를 본 청와대가 ‘해도 너무 한다’며 발끈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을 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지난 8일 방영된 KBS <미디어포커스>에서 최시중 방통위원장 내정자를 강하게 비판했는데 이를 본 청와대가 ‘해도 너무 한다’ 즉, ‘이것들 도저히 안되겠다’며 발끈했고 그래서 ‘인적청산론’을 제기하게 됐다는 말이다.

경향신문을 보면 이런 내용도 언급돼 있다. 일부를 인용한다.

“실제보다 직접적 대상은 방송·언론·문화계로 보인다. 이날 발언에서 ‘국정발목 세력’의 구체적 예로 ‘지금도 방송통신위원장과 국정원장 청문회조차 열리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언급한 점에서다. 최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임명 철회를 요구한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인총연합회, 언론개혁시민연대, 문화연대 등을 겨냥한 셈이다.”

자리는 챙겨야 되는데 자리는 없고 … 공천갈등은 깊어가고

사실 한나라당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10년 만의 정권교체이고 대선 과정에서 자신들을 지지해준 사람들을 챙겨야(?) 하는데, 이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공기업 아닌가. 하지만 상황을 보니 만만치가 않다. 임기는 아직 많이 남아 있는 데다 당사자들이 나갈 생각도 없는 것 같다.

상황이 이런데 새로 임명한 장관 후보자들은 ‘줄줄이’ 낙마를 하고, 앞으로 임명될 후보자들도 이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 그런데 한나라당 공천심사와 관련한 갈등은 점점 깊어만 하고, 이래저래 골치 아플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 이런 측면을 고려했을 때 안 대표의 발언이 “방송·언론·문화계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는 경향신문의 지적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새로 임명한 장관 후보자들이 ‘줄줄이’ 낙마를 하고, 앞으로 임명될 후보자들도 이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는 상황을 만든 데에는 이들을 철저히 검증하려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주요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KBS ‘미디어포커스’의 보도가 구 정권 인사 사퇴론의 한 배경이 됐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쉽게 정리하면 정부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산하기관(방송사 포함)을 ‘장악’하지 않고서는 현재의 국면을 돌파할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조선일보 11일자 사설과 안상수 원내대표의 발언

▲ 조선일보 3월11일자 사설.
그런데 안상수 원내대표의 ‘인적 청산론’이 이미 하루 전인 지난 11일 조선일보 사설에 게재된 것을 아는지. 물론 그 이전에도 동아와 조선은 문화계 등의 인적청산론을 주장한 적이 있는데 조선은 이날 방통위원장을 직접 거론하며 이를 반대하는 진영을 모두 ‘좌파’라고 맹비난했다. 일부를 인용한다.

“일부 좌파적 신문과 전 정권 내내 좌파 정권의 홍보 역할을 떠맡았던 일부 방송, 그리고 이들의 동조세력에 장악된 일부 언론단체가 최 후보자에 대해 신문 지면과 방송 뉴스를 통해 대대적 검증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 말은 간단히 요약하면 이들을 ‘견제’ 혹은 ‘장악’하지 않고서는 현재의 국면을 돌파할 수 없다는 말이다. 조선일보는 결국 이명박 정부로 하여금 이런 주문을 하고 있는 셈인데, 이렇게 되면 결국 감독은 조선일보이고, 배우는 안상수 원내대표가 되는 것인가.

아무튼 언론계와 시민사회진영, 그렇지 않아도 정신 없을 텐데 앞으로 더 바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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