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로봇과 인간의 절묘한 콜라보 아이언맨, 과거에서 온 절대강자 캡틴 아메리카, 신화 속에서 길어온 토르, 신비의 섬에서 날아온 원더 우먼, 먼 우주로부터 던져진 슈퍼맨에 돌연변이 박쥐, 고양이 등등 마블과 DC의 히어로들만 해도 무궁무진하다. 과연 여기에 새로운 히어로 캐릭터들이 더해질 수 있을까 싶은데, 여전히 히어로들의 등장은 우후죽순이다.

침팬지 유전자를 이식해 헐크처럼 큰 덩치로 괴력을 행사하는 히어로는 어떨까? 망자들을 소환할 수 있는 영매나 시간을 오가는 능력자는? 2019년 2월 넷플릭스가 새로운 히어로물 시리즈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공개했다.

공개 이후 전미 넷플릭스에서 오랜 시간 동안 1위 자리를 유지할 만큼 인기를 끌었던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미국의 록밴드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리더이자 보컬인 제라드 웨이의 그래픽 노블 데뷔작이다. 그중 1부 종말의 조곡과 2부 댈러스가 동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되었다.

지구 종말 앞에 던져진 히어로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즌1

시리즈의 시작은 러시아의 한 수영장에서다. 한창 수영 연습 중인 여성들 중 한 여성의 배가 갑자기 부풀어(?) 오른다. 임신을 한 적이 없는 여성은 그 자리에서 만삭이 되어 결국 출산하게 되는데, 이런 이상 사례가 전 세계에서 벌어져 43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태어나는 이변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 중 7명이 유명 과학자이자 사업가인 레지널드 하그리브스(컬럼 피오레 분)에게 입양된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라며 입양 목적을 밝힌 하그리브스 경은 그 목적에 맞게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조직하고 아이들에게 히어로가 될 강훈련을 시킨다.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후, 하그리브스 경이 급작스레 죽음을 맞이했다. 뿔뿔이 흩어졌던, 이제는 5명만 남은 아이들이 아버지의 죽음에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가 명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달에서 4년을 보낸 맏이 루서(톰 호퍼 분)는 아버지 죽음에 의혹을 제기하며 진위를 밝히려 하지만, 둘째 디에고(데이비드 카스타네다 분)는 아버지에 대한 애증에 전전긍긍한다. 그런가 하면 셋째 앨리슨(에미 레이버 램프먼 분)은 이혼 위기의 사생활에서, 넷째 클라우스(로버트 시한 분)은 약물과 알콜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그리고 형제들과 달리 히어로 훈련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던 막내 바냐(엘렌 페이지 분)는 여전히 아웃사이더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마음을 모을 수 없는 아이들 앞에 15살 때 시간 속으로 사라진 넘버 5(에이단 갤러거 분)가 하늘에서 툭 떨어진다. 15살이라는 외모와 달리 시간 여행을 하며 58살의 나이가 됐던 넘버 5는 17년 만에 겨우 집에 돌아온 형제들에게 '지구 종말'이 이제 겨우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음을 통보한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즌1

히어로물의 전형적인 서사에 따르면, 갈등이 있더라도 히어로로서의 사명감으로 지구 종말을 막기 위해 애쓰련만, <엄브렐러 아카데미> 속 히어로들은 사정이 좀 다르다. 말이 입양이었지, '얼마 주면 되겠니?'라며 갓 태어난 아이들을 사온 것이다. 그리고 말이 아버지이지 자신을 '경'이라 부르라며 아이들이 자라는 내내 사랑이라고는 단 한 번도 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만들어낸 사이보그 어머니가 아이들의 이름을 지어주기 전까지 이름조차 없어 숫자로 불리던 아이들(그래서 이름이 지어지기 전 시간여행을 떠난 다섯째는 넘버 5이다)은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육친의 애정에서 소외되어 상처받은 아이의 모습 그대로이다.

거기에 이들 히어로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해서도 혼돈 속에 빠져있다. 그저 많이 자란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형제들이 다 떠나버려 홀로 적과 싸우다 죽을 위기에 빠졌던 맏이 루서는 그를 구하기 위해 주입했던 집사 침팬지 포고의 DNA로 인해 '동물적인 육체'를 지니게 되었고, 그런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도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홀로 고독과 싸우며 견뎠던 달에서의 4년이 '방치'였음을 알게 되며 방황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가장 크지만, 그만큼 히어로에 대한 '사명감'이 집착에 가까울 정도인 둘째는 자신의 사명감에 따라 경찰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그라지 않는 그의 방식은 결국 그를 경찰 교신망을 도청하는 불법 히어로의 신세로 전락시킨다.

'소문으로 들었는데'라는 말 한마디로 자신의 말을 들은 사람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앨리스는 그 능력으로 스타가 되고 가정도 얻었지만, 결국 그 능력으로 인해 모든 걸 잃게 된 처지에 놓이게 된다. 넷째 클라우스는 거의 폐인이다. 죽은 자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일곱 히어로 중 한 명인 죽은 벤과 항상 함께한다. 하지만 때로는 처참하게 죽은 자들이 소환되는 그 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물과 알콜에 쩔어 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즌1

지구 종말이라는 사명 앞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한 채 팀으로서의 결집은 '언감생심'인 시즌 1. 결국 그 지구 종말조차도 이들 히어로 중 한 명인 '바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시작할 때는 B급 정서에 기반한 오합지졸 히어로들의 시트콤 같은 상황으로 이어지던 시리즈는, 중반을 넘어 각 히어로들의 성장통을 거치며 그간 히어로물이 그려왔던 '당위적 사명을 가진 남다른 존재'로서의 히어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다른 존재란 이유로 혹은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는 이유로, 인간적인 행복조차 억압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히어로라는 수식어를 떼어놓고 보면 오늘날 젊은 세대가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로 귀결된다. 아마도 이 작품이 미국 넷플릭스에서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정서에 대한 공감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그 '지구 종말'이라는 거창한 문제도 결국 한 가정에서의 학대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는, 결국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이들이 지구 종말을 막아낼 수 없다는 '화두'는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더 기발하고 신선하며, 늘 대의와 사명에 치우쳐 왔던 이전 히어로물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의 허를 찌른다.

결국 '엄브렐러 아카데미' 히어로들은 자신들의 존재론적 문제에 허우적거리다 지구 종말을 막아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지구는 끝일까? 여기에 시간 여행이라는 기막힌 '치트키'가 등장한다. 시간 여행을 통해 케네디 암살 시점인 1963년 댈러스로 떨어진 이들은 여전한 자신들의 숙명과 정체성에 대한 고뇌를 시대적 감성에 기대어 마주하며 업그레이드된 서사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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