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는 폭발 직전의 화산처럼 들끓고 있었다. 이제는 잠잠해졌지만 한예슬의 촬영장 이탈 사건은 비록 한예슬 마녀사냥 비슷하게 시작했다가는 한국 드라마 제작환경의 문제점들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내는 결말을 가져왔다. 새삼스럽지만 결코 해결이 되지 않는 쪽대본의 문제 그리고 그것을 해결할 최선의 방법인 사전제작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다툼도 결국 전과 다름없이 드라마 제작에 대한 어떤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한 채 이번에도 발의만 하고 드라마를 바꿔보자는 구호는 잦아들고 말았다.

그런 한편 요즘 최고의 히트작을 낸 김은숙 작가는 오히려 쪽대본을 강력하게 옹호하고 나서고 있어 뭔가 분위기를 가라앉게 하기도 했는데, 최근 드라마를 시작하는 원로작가이자 대작가인 김수현이 트위터를 통해 쪽대본이 당연시 여겨지는 관행에 쓴소리를 하고 나서 간만에 누리꾼들의 환호를 받게 되어 다시 상황은 역시 쪽대본은 드라마의 암적인 존재라는 쪽으로 분위기 반전이 이뤄졌다.

그렇지만 백번의 토론보다 더 중요하고 절실한 것이 기존의 제작 관행을 벗어난 드라마의 성공 케이스이다. 아무리 옳은 주장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면 수십억씩 들어가는 드라마에 모험을 걸 제작자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마치 미리 알고나 있었던 것처럼 SBS 금요드라마 더 뮤지컬이 시작됐다. 더 뮤지컬은 작년부터 촬영을 시작해 현재 2,3주 정도의 촬영분만을 남겨둔 사전제작 드라마이다. 게다가 생방송 제작을 부추기는 주당 2편 방영의 관행과 달리 한 주에 한 편만 방영한다. 그런 의미에서 더 뮤지컬은 기존 한국 드라마의 관행을 아주 많이 깨뜨리고 있다.

더 뮤지컬이 이렇듯 드라마 제작관행만 깨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드라마의 구태의연한 소재에서 벗어나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아낸 것도 주목해야 한다. 더 뮤지컬을 집필하는 김희재 작가는 실미도, 공공의 적2 그리고 한반도의 시나리오를 쓸 정도로 소재를 찾아내는 눈이 남 다르다. 그렇다 하더라도 단선적인 관계에 금방 질려버리는 한국 시청자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드라마의 MSG인 삼각관계 등의 구조는 버리지 못하겠지만 그나마 소재 개발만도 다행한 일이다.

남은 문제는 오직 성공이다. 일단은 흥행에 있어 안정적인 카드인 구혜선이 있어 다행이고, 드라마를 제작할 당시에는 몰랐겠지만 나가수를 통해서 극성 안티를 양성한 옥주현이 출연하고 있어서 또 불안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의외의 캐스팅이 가져온 횡재도 있다. 최근 극장가를 점령하고 있는 영화 최종병기 활을 통해서 재조명되고 있는 박기웅이 관심 끄는 데 한몫을 할 것이고, 최다니엘의 부드러운 미소도 많은 여성 시청자들이 반길 캐스팅이다. 또한 노래 좋아하는 한국 시청자를 만족시킬 음악도 풍부하다. 그렇지만 엄격히 말하자면 더 뮤지컬 역시 구혜선 원톱의 성공여부에 사활을 건 드라마임은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더 뮤지컬의 키 포인트 고은비(구혜선)는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아니 뮤지컬에 미친 의대생이다. 음치에 가까운 솜씨지만 뮤지컬 배우가 되기 위해 여든한 번의 치른 오디션에서 여든한 번의 낙방을 했어도 끝내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중증 뮤지컬 환자다. 거의 꿈을 포기하거나 보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뉴욕에서 뮤지컬을 했다고 뻥을 치는 삼류 뮤지컬 배우 사복자(박경림)를 만나면서 고은비의 꿈은 좀 더 현실로 다가서게 된다. 그 배경에 최고의 뮤지컬 스타 배강희(옥주현), 최고의 뮤지컬 작곡가 홍재이(최다니엘) 그리고 뮤지컬 투자자 유진(박기웅)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드라마가 뮤지컬에 대한 막연한 환상 만들기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뮤지컬을 숫자로만 대하는 투자자 유진은 과감하게 창작 뮤지컬을 성공시키려는 기획을 추진한다. 물론 그다지 현실적인 접근은 아니다. 국내에서 돈을 벌어들인 뮤지컬은 거의 모두가 라이선스 작품들이다. 소극장 연극과 달리 많은 제작비가 들어가는 뮤지컬이기에 소극적이지만 선택할 수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최다니엘이 최고의 작곡가로 출연하는 이상 창작 뮤지컬은 드라마 속에서 라이선스를 능가할 정도의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다. 비록 현실에서는 아직 먼 이상에 불과하지만 드라마에서 그 희망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투자자 유진의 입을 통해서도 말해지지만 승승장구하던 뮤지컬이 2008년부터는 그 성장이 둔화된 것은 본 작품을 다시 볼 수밖에 없는 한정적인 레파토리가 큰 원인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뮤지컬이 한 편을 만들기 위해 뮤지컬의 양대축인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에서는 많은 새 작품이 시도되고 또 사라지고 있다. 비록 현실의 대학로는 아니지만 드라마 속 대학로에서 앤드류 로이드 웨버를 능가할 뮤지컬 한 편이 나오는 행복한 결말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 더 뮤지컬에 대한 호감을 높여주게 한다. 이런 수많은 긍정요소들로 인해 더 뮤지컬은 한 주에 한 편만으로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 또한 모처럼의 사전제작 드라마인 더 뮤지컬이 살아야 한국 드라마의 잘못된 관행들이 고쳐질 희망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열심히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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