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를 만들었던 김석현PD가 CJ E&M 이적 후 선보이는 프로그램인 tvN 코미디 빅리그에 대한 관심이 쏠쏠하다. 우선 최근 CJ E&M 계열사들이 앞장서고 있는 서바이벌 오디션 방식으로 개그를 본다는 것이 식상하면서도 신선한 방식이다. 개그콘서트를 만들었던 PD답게 일단 공개 개그 콘서트를 하면서도 거기에 참가한 열 개의 개그팀들이 매회 점수를 쌓아 최종적으로 1억 원의 상금을 거머쥐는 형식을 더했다.

코미디 빅리그에 합류한 MBC 출신 개그맨들은 제명을 각오했다는 농담 아닌 농담도 했지만 코미디 빅리그는 그동안 각 지상파 방송에 엄격하게 격리(?)됐던 개그맨들이 한 무대에 선다는 의미가 있다. 왜 그래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개그맨들은 자신들이 속한 방송사 외에는 출연이 금지됐다. 코미디가 잘될 때에는 호황의 즐거움 때문에 굳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제 코미디가 버라이어티에 밥통을 모두 내어준 현재에 있어서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지상파 3사의 코미디 프로그램 중에서 된다 싶은 것은 개그 콘서트 하나뿐이다. 그러나 개그에 목숨 걸고 살던 개그맨들이 개그를 모두 그만둔 것이 아니다. 최근 들어 웃찾사 부활 소식도 있어 다행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봐야 개그맨들의 수에 비해 이들이 출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예컨대 개그맨들이 타사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못하도록 통제한다면 그에 따른 보장이 필요하지만 개그맨들에게는 금지사항만 존재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환규, 김미려가 ‘제명 받을 각오’ 운운하게 된 것인데, 현재 상황으로는 제명해도 그만일 만큼 MBC의 코미디는 지리멸렬한 상태이다. 친정을 떠나 다른 곳에서라도 개그를 할 수 있고, 또 1억 원의 큰 상금까지 노릴 수 있는 몇 달간의 시간이 이들에게는 그 어떤 금지보다 달콤하고도 행복한 유혹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코미디 빅리그가 히트한다면 그 몇 달은 다시 몇 년으로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 아마도 출연하는 개그맨들에게는 가장 절실한 바람일 것이다. 아니라면 이제는 이들에게 돌아갈 곳은 없다.

그렇지만 코미디 빅리그의 전망을 일단 밝다. 여기에 참가하는 개그팀들은 한때를 풍미했던 개그 코너들을 다시 선보이기 때문에 일단 실패를 모르는 추억 마케팅요소가 성공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또한 분장실의 강선생이나 마빡이 그리고 사모님처럼 각사의 대표적인 개그 코너가 따로가 아니라 한 무대에서 평가받고 순위를 정한다는 것도 빼놓지 못할 흥밋거리다. 인간은 여간해서는 경쟁을 멈출 수 없는 동물이기에 전설의 개그코너들이 순위를 놓고 경쟁한다는 것은 꽤나 좋은 아이디어로 보인다.

거기에 하나 더 기대하게 되는 것이 있다. 정치적, 사회적 풍자가 이슈가 되어 결국 폐지된 개그코너가 코미디 빅리그를 통해서 부활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기존 방송사보다 훨씬 더 장사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슈화가 필요한 케이블 프로그램이기에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수근과 이영아가 MC로 진행하는 코미디 빅리그는 9월 17일부터 전파를 탄다. 흥미로운 것은 방송되는 요일과 시간대이다. 매주 토요일 늦은 아홉시에 90분간 방영되는 코미디 빅리그는 꽤나 막강한 지상파 주말드라마들과 경쟁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칫 무모해보일 수도 있겠지만 주말드라마들의 식상한 포맷에 고개를 돌리는 층들을 흡수할 수 있다면 의외의 틈새공략에 성공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게다가 여자들에게 티비 채널을 빼앗기더라도 티빙(tving.com) 등의 다양한 시청 방법들이 있기 때문에 주말드라마와의 일전이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성공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코미디 빅리그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코미디 채널의 확대다. 개그콘서트 하나로는 코미디에 목마른 개그맨이나 시청자 모두에게 98% 부족한 현실에서 90분짜리 매머드급 코미디 프로그램이 하나 생긴다는 것은 그 자체로 커다란 즐거움이다. 새로이 출범하는 종편은 알려진 데로 예능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런 흐름 속에서 코미디 빅리그의 제작 소식은 상당히 의외였다.

방청객의 투표로 순위를 결정하는 것과 과거의 개그 코너를 들고나온다는 점에서 코미디판 나는 가수다라는 말을 듣고 있지만 그러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코미디 메이저리그를 꿈꾸는 코미디 빅리그가 마이너 혹은 독립리그가 되지 않겠냐는 삐딱한 시선을 극복하는 것이다. 즉 코미디가 안 될 때는 이유가 있다는 부정적인 인식 없지 않다. 과연 그런지 코미디 빅리그의 성공여부를 지켜볼 일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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