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초 선두 타자 이호준까지 삼진 3개를 솎아내며 완벽하게 틀어막던 선발 리즈가 갑작스런 부상으로 강판되었을 때 LG에는 암운이 드리우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구원 등판한 유원상이 4.1이닝을 2피안타 2볼넷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LG는 4연승으로 4위 SK에 3.5게임차로 육박했습니다.

호투하던 선발 투수의 부상에 따른 조기 강판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몸도 풀지 못한 구원 투수가 등판해야 하며 불펜 투수들이 많은 이닝을 소화해야 하기에 당일 경기뿐만 아니라 이후 경기들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LG가 올해처럼 힘겨운 4강 싸움을 이어가던 2007년 9월 12일 대전 한화전에서 선발 등판한 에이스 박명환은 1회말 등판하자마자 1번 타자 고동진에게 안타를 허용한 후 2번 타자 김수연과 상대하다 어깨 통증을 호소해 강판되었고 구원한 좌완 김재현을 비롯한 불펜 투수들이 난타당하며 8:3으로 완패했습니다. 류현진에게 15승을 헌납한 LG는 이후 박명환이 시즌 아웃되며 4강 싸움에서 탈락한 악몽이 떠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리즈를 구원한 유원상은 4.1이닝을 무실점으로 처리하며 LG 이적 후 첫승을 중요한 경기에서 기록했습니다. 특히 안타와 실책, 그리고 볼넷으로 비롯된 5회말 1사 1, 2루 위기에서 김강민과 조동화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위기에서 벗어나는 장면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습니다. 5회초 LG가 2득점했기에 5회말에는 실점 없이 SK 타선을 틀어막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부상을 입은 리즈가 다음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등판할 수 있을지 미지수인데 만일 등판할 수 없다면 유원상이 리즈의 공백을 메울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유원상은 LG 유니폼을 입은 후 3경기에서 8.2이닝 동안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4회말 2사 1,2루, 5회말 2사 1,2루의 위기를 무실점으로 넘긴 LG의 두번째 투수 유원상 ⓒ연합뉴스
2회초 선두 타자 이병규가 볼 카운트 2-0으로 몰린 상황에서 침착하게 볼넷으로 골라 출루하며 비롯된 무사 1, 3루에서 정성훈의 번트 아웃은 납득하기 어려운 플레이였습니다. 하지만 정성훈에 뒤이은 김태완이 초구에 희생 플라이를 기록하며 분위기를 SK에 넘겨주지 않았습니다. 지난 주말 한화전에서 2경기 연속 타점을 기록한 김태완은 오늘도 중요한 선취 타점이자 결승 타점을 기록했습니다.

5회초에는 선두 타자 심광호의 절묘한 기습 번트 안타로 시작된 무사 1, 2루 기회에서 서동욱이 번트 자세에서 강공으로 전환해 우익선상으로 빠지는 싹쓸이 2타점 2루타로 3:0 리드를 만들었습니다. 희생 번트를 시도할 경우 상대 내야수가 압박 수비해 2루 주자를 3루에서 포스 아웃시킬 수 있기에 무사 1, 2루 상황은 감독의 입장에서는 가장 작전을 구사하기 어려운데 서동욱은 번트 자세에서 강공으로 전환되는 고난이도의 작전을 기대 이상으로 성공시켜 LG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것은 어제 경기 후 인터뷰에서 송신영이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고백한 것인데 오늘 경기에서도 9회말 등판한 송신영의 컨디션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두 타자 박정권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준 뒤 2사 1루에서 경기를 마무리지어야할 김연훈을 상대로 몸에 맞는 공을 내줘 2사 1, 2루가 되며 상위 타선으로 넘어가는 장면에서는 자칫 블론 세이브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구속보다는 제구력으로 승부하는 송신영이 한 이닝에 두 개의 사사구를 내주는 것은 드문 일이기도 합니다. 최악의 경우 김강민에게 홈런을 허용하면 동점이 되며 만일 김강민이 출루하고 조동화까지 살아나가면 최소 3:1로 SK가 추격해온 상황에서 타격감이 좋은 최정과 승부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풀 카운트 끝에 김강민을 헛스윙 삼진 처리하며 승리를 지켰지만 가급적 내일 경기는 송신영이 등판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며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완봉패로 SK는 5연패에 빠졌습니다. 실질적인 1, 2선발인 고든과 엄정욱이 등판한 경기에서도 패한 것인데 엄정욱과 이승호가 경기 도중 부상으로 강판된 것 또한 SK로서는 적지 않은 타격입니다. 타자들의 배트 스피드도 현저히 떨어져 LG와의 2연전에서 SK는 득점권에서 적시타가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5회말 2실점의 단초를 제공한 이대형 번트 타구에 대한 정상호의 야수 선택은 사실상의 실책입니다. 어제에 이어 SK답지 않은 실책이 발목을 잡은 것입니다.

선발 출장한 안치용과 최동수를 경기 초중반 박재상과 박정권으로 교체한 것에서 SK 이만수 감독 대행의 조급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박재상과 박정권은 각각 볼넷 1개씩을 얻었을 뿐 도합 4타수 무안타에 그쳤습니다. 안치용과 최동수가 초중반에 교체되고 박재상과 박정권이 일찍 투입되는 바람에 경기 중반 이후 SK에서 대타로 나올 선수가 마땅치 않아 LG는 비교적 편안히 투수진을 운용할 수 있었습니다.

4연승을 거둔 LG이지만 내일 경기에서 만일 SK에 패하면 다시 4.5게임차로 벌어지기에 반드시 승리해야만 오늘까지의 4연승이 의미를 지닐 수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 선발 김광삼의 분발이 필요합니다. 지난 6월 21일 잠실 넥센전 이후 두 달이 넘도록 승리를 챙기지 못했으며 홈 경기보다 원정 경기에 약한 김광삼이 해줘야만 합니다. SK 타선이 침체라는 점을 파고들어야 할 것입니다. LG 타선에 강했던 내일 선발 큰 이승호를 어떻게 공략하느냐 역시 관건입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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