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일부 언론이 사실과 다른 보도로 성추행 의혹 사건과 한국 페미니즘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고발뉴스'는 지난 19일 기사<[단독]김재련 ‘해바라기센터’ 비밀이 풀렸다>를 통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 피해자의 법률대리인 김재련 변호사를 '성의 국정원장', '국성(性)원장'이라고 지칭한 이상호 기자의 주장을 보도했다.

이상호 기자는 18일 유튜브 '고발뉴스TV'에서 김 변호사가 '박근혜 정권이 만든' 성폭력피해통합지원센터인 해바라기센터에서 운영위원을 맡으면서 성범죄 사건 정보를 모두 자신에게 집결하게 하는 행정적 구조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행정적 구조란 김 변호사가 박근혜 정부에서 여성가족부 권익증진국장을 역임하고 화해치유재단 이사를 맡았던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토대로 현 여권 인사들의 성폭력 사건만을 선별적으로 공개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고발뉴스 9월 19일 <[단독]김재련 '해바라기센터' 비밀이 풀렸다> 기사 갈무리

그는 "여가부 재직 시절 해바라기 센터를 구축한 담당자가 당시 김재련 권익증진국장이었다"며 "자신이 만든 조직에 퇴임 직후, 운영위원으로 참여한 뒤 5년 동안이나 운영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서울시 젠더특보가 보내온 4월 사건 피해자의 사건을 수임했다면 당연히 이해충돌 의혹이 제기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바라기센터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4년 설립됐다. 2003년 6월 아동 성폭력 전담기구 설치를 위한 방안이 검토됐고 같은 해 11월 해바라기센터 설립을 위한 추진기획단이 구성됐다. 2004년 6월 서울해바라기 아동센터가 처음 개소됐다. 이후 전국에서 해바라기센터가 개소함에 따라 2015년 1월 1일부터 여가부와 광역시·도, 지방경찰청, 병원 등 4자 협약으로 '해바라기센터'라는 이름으로 통합운영되기 시작했다. 김 변호사가 운영위원으로 있는 서울해바라기센터는 2011년 개소했다. 김 변호사는 2011년 개소 때부터 센터의 자문위원을 맡아왔다.

이와 같은 주장과 관련해 경향신문은 20일 "운영위원인 김 변호사가 센터에 접수되는 성폭력 사건의 내용을 알 수 없다는 사실도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박혜영 서울해바라기센터 부소장은 "운영위원은 사건을 알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보도 내용은)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김 변호사는 유능한 성폭력 전문 변호사다. 사건을 선택적으로 공론화한 적도 전혀 없다"고 경향신문과 인터뷰했다. 또한 김재련 변호사는 "운영위원은 개별 사건과 연결되지 않고 센터 운영 전반에 대해 의견을 내는 자리"라며 "이상호 기자의 발언은 해바라기센터를 이용하고자 하는 수많은 피해자들에게도 잘못된 정보를 줄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런가 하면 한 유튜브채널은 2019년 박 전 시장 생일날 촬영됐다는 영상을 공개하며 영상 속 여성을 지목했다. 영상에서는 박 전 시장과 여성의 친근한 모습이 강조됐다. 해당 영상에 "과연 저 모습이 4년간 지속적 성 괴롭힘을 당한 사람이라 볼 수 있는가"라는 자막이 달렸다. 이 영상은 현재까지 45만 이상 조회수를 기록 중이며 3400여개의 댓글이 달린 상태다. 이상호 기자는 고발뉴스 유트브채널을 통해 해당 영상을 공유하고 있다.

한겨레 9월 22일 사설 <도 넘은 ‘박원순 사건’ 피해자 2차 가해, 용납 안돼>

한겨레는 22일 사설 <도 넘은 ‘박원순 사건’ 피해자 2차 가해, 용납 안된다>에서 "해바라기센터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성폭력특별법 제정 10년을 맞아 아동·청소년 성폭력 피해에 대한 종합 지원을 위해 정부 위탁기관으로 첫발을 뗐다. 인터넷 검색 한두번만 해도 확인할 수 있는 가짜뉴스"라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유튜브채널의 영상 공개에 대해서도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추궁하는 악의적인 2차 가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실체적 진실의 규명과는 무관한 공격이 이어지면서 피해자의 안전마저 우려되는 실정"이라며 "누리꾼들의 가해 행위를 자제시켜야 할 언론인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행태도 개탄스럽기 이를 데 없다. 2차 가해를 엄중 조처하겠다고 했던 경찰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

다른 한편에선 중앙일보 오병상 칼럼니스트의 20일 칼럼 <한국 페미니즘, 긴즈버그 배워야한다>는 한국 페미니즘의 역사와 의미를 축소·왜곡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오 칼럼니스트는 "우리나라의 경우 페미니즘의 역사가 길지 않다"고 했다. 그는 "2015년 웹사이트 메갈리아가 남성을 공격하면서 페미니즘이 본격 확산됐고, 2016년 '여자가 미워서 죽였다'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분노의 불길을 댕겼다"며 "최근 이어지는 미투까지..사건의 연속이다. 와중에 디지털을 통해 급속히 확산되다보니 자극적이고 대립적인 양상이 심각하다"고 썼다. 이어 오 칼럼니스트는 "긴즈버그는 50년간 늙은 남자 대법관들을 하나씩 설득해 법을 바꿈으로써 실질적인 여성의 지위향상을 확보했다. 제도를 바꾸는 페미니즘은 느리지만 가장 확실하다"고 했다.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는 1927년 창립된 조선 최초의 여성운동 조직 '근우회'로부터 시작된다. 근우회의 강령은 여성의 공고한 단결과 지위향상이었고, 운동 목표는 봉건적 굴레와 일제침략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1983년 한국여성의전화 설립 이후 반성폭력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1987년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설립돼 전국적 조직이 형성되었다. 반성폭력운동은 1994년 성폭력특별법 제정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1998년에는 중앙행정기관으로서 여성특별위원회가 발족했다. 여성단체들의 군가산점 폐지 운동은 1999년 헌법재판소는 군가산점제 위헌결정으로 이어졌다.

호주제 폐지 역시 한국 여성운동 역사에서 빼놓 수 없는 사건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 변호사는 1952년부터 호주제에 대한 위헌 심판과 헌법 소원을 청구했다. 1975년, 1986년, 1988년에 호주제도를 폐지하는 민법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됐으나 모두 폐기됐다. 1999년 여성단체연합 주도로 호주제폐지운동본부가 발족했고, 2000년 호주제폐지를 위한 시민연대가 발족했다. 2003년 참여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호주제 폐지를 국정과제로 선정, 같은 해 9월 법무부는 호주제 폐지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헌법재판소는 2005년 2월 3일 5차에 걸친 공개변론 끝에 호주제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같은 해 3월 2일 호주제 폐지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