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부캐 전성시대다. 어지간히 유명한 사람들은 모두 하나씩 부캐를 만들고 있다. 일반인도 마찬가지다. 부캐의 유행에는 사회적 맥락도 있다. 정신과의사 하지현은 ‘사회적 정체성 속의 삶이 답답할수록 부캐에 대한 욕구가 커진다‘고 말한다. 부캐 대중화에 앞장선 유재석과 이효리의 사례를 보자.

오랜 세월 연예인으로 활동해온 둘에게 대중이 원하는(혹은 그렇게 봐주길 바라는) 모습은 둘의 사회적 정체성을 꾸준히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각각 바른생활의 교본, 상업광고를 거부하는 채식주의자라는 강력한 본캐에 갇혀 운신의 폭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부캐를 통해 본캐에 메어있는 동안 충족시키지 못한 욕구들이 자연스레 해소됐고, 해방을 통해 나온 자유로움에 예민한 대중이 더 크게 호응을 했을 것이다.

다만 부캐의 성공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본캐가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유재석과 이효리는 ‘일인자’와 ‘슈퍼스타’라는 탄탄한 본캐가 있었다. 신인 트로트가수, 교포 헤어 디자이너(?)라는 외유를 하더라도 언제든 원점으로 돌아와 방향성을 잃지 않을 수 있던 것이다. 그럼 본캐가 흔들릴 때 부캐 활동은 어떤 양상을 띨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셧>은 전면에 등장한 부캐 때문에 흔들리는 본캐의 심리를 치밀하게 그려낸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

부캐로 떠나는 한밤의 오디세이

뉴욕의 잘 나가는 의사 빌 하포드(톰 크루즈)와 그의 부인 앨리스 하포드(니콜 키드먼)는 백만장자 지글러(시드니 폴락)가 주최한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를 받고 생각지 못한 사건에 휘말린다. 지글러의 주치의이기도 한 빌은 파티에서 처음 만난 여자 둘과 잡담을 나누던 중 지글러의 호출을 받는다. 지글러의 내연녀가 마약 과다복용으로 정신을 잃은 탓이다. 빌이 그녀를 치료하러 간 사이 혼자 남은 앨리스에게 헝가리 남자가 춤을 권하고 끈적하고 지독한 구애를 한다. 다행히 내연녀는 정신을 차리고, 앨리스는 구애를 뿌리친다.

문제는 다음날이다. 부부는 파티에서 있었던 일을 서로에게 묻는다. 앨리스는 빌에게 두 여자와 관계했냐고 묻는다. 빌은 아니라고 말하며 앨리스에게 함께 춤을 추던 남자와의 일을 되묻는다. 앨리스는 구애를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대답한다. 이번에는 앨리스 차례. 두 여자에게 욕정이 생기지 않았냐고 묻고, 빌은 다른 남자들은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자신은 유부남이라 그런 욕망이 없다고 응수한다. 빌의 대답에 앨리스는 웃음을 터트리며 ‘욕망 자체가 없다는 건 거짓말’이라며 몰아 부치고 놀라운 비밀을 털어놓는다. 지난 여름 휴가지에서 스치고 지나간 해군장교에게 마음을 뺏겼으며,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떠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충격을 받은 빌의 이성이 돌아오기도 전에 전화벨이 울린다. 자신의 환자가 사망했다는 전화다. 빌은 급히 집을 나서지만 앨리스의 고백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이상한 일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사망한 환자의 결혼을 앞둔 딸에게 갑작스레 사랑고백을 받고, 평소라면 그럴 리 없던 길거리 여자의 유혹에 넘어간다. 여자의 집에서 관계를 맺으려는 순간 앨리스의 전화를 받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다 우연히 만난 옛 친구 닉에게서는 이상한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이 밤마다 눈을 가리고 피아노연주를 하는 곳이 있는데, 모두들 가면을 쓰고 이상한 모임을 한다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

빌은 ‘무지개 패션‘이라는 코스튬 숍에서 망토와 가면을 빌려서 ‘피델리오’라는 암호를 말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비밀모임에 참여한다. 교외의 웅장한 저택에서 진행되는 비밀모임의 정체는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나체의 여성과 기사 복장의 남성들이 함께 모여 춤을 추고 단체로 관계를 하는 퇴폐적인 무도회였던 것이다. 그러나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었던 빌은 얼마 안가 정체가 들통 나고 회원들 앞에서 모든 옷을 벗으라는 강요를 당한다. 그 순간. 미지의 여인이 나타나 자신이 대신 죄를 받겠다며 빌을 풀어달라고 말한다. 사실 그 여인은 빌이 파티에 참석했을 때부터 위험한 곳이니 빨리 나가라며 경고를 하던 여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집으로 돌아온 빌을 보고 앨리스는 악몽을 꾸었다고 말한다. 꿈에서 앨리스는 나체 모임에 참석했고 자신이 수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맺으며 빌을 비웃고 있었다는 것이다. 날이 밝자 빌은 간밤의 저택을 찾아가지만 더 이상 이 일을 파헤치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경고장을 받는다. 실마리를 되짚기 위해 닉이 머무는 호텔을 찾아가지만 데스크 직원에게서 새벽에 닉이 정체불명의 남자들에게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낙담한 채 무지개패션에 의상을 반납하러 가지만 마스크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며칠 전 파티에서 빌이 목숨을 살려준 지글러의 내연녀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혼란스러운 순간. 지글러에게서 연락이 온다. 집에 와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지글러의 집에 찾아간 빌은 놀라운 사실을 듣는다. 지글러는 본인도 어제 그 모임에 있었다며, 더 이상 관심을 갖지 말라는 것이었다. 모임에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알게 되면 아마 잠을 못 이룰 거라며.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온 빌은 잃어버린 줄 알았던 마스크가 침대 베개 위에 놓여있는 걸 발견하고는 울음을 터트리고 앨리스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

과감하게 꿈과 현실의 경계를 지우는 큐브릭

큐브릭 감독은 본캐와 부캐-꿈과 현실-를 넘나드는 복잡한 이야기에 영화적 장치들을 여럿 덧대어 현실적인 부피감을 채우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불어넣는다. 눈에 띄는 장치는 ‘반복’이다. 지글러의 집, 창녀의 집, 무지개패션, 비밀의 저택까지. 빌은 간밤에 찾았던 장소를 낮에 다시 한 번 방문하며 자신이 겪은 사건이 꿈이 아니라 현실임을 사무치게 깨닫게 된다. 동시에 각각의 장소에서 이어지는 묘한 연결고리들은 빌을 둘러싼 관계들의 비밀성을 강화한다.

대사의 반복도 빼놓을 수 없다. 유럽 귀족들의 형식적인 대화를 살린 <배리 린든>, 실제 군대를 떠올리게 하는 <풀 메탈 자켓>처럼 작품마다 스타일리시한 대사를 선보였던 큐브릭답지 않게 <아이즈 와이드 셧>의 등장인물들은 현학적이거나 재치 있는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그러나 스타일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영화의 스타일은 다음과 같이 반복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빌: 그가 무얼 원했지? / 앨리스: 그가 무얼 원했냐구? 오...그가 무얼 원했지?
도미노: 나와 같이 안으로 들어갈까요? / 빌: 당신과 같이 안으로 들어가자구요?

이처럼 되물음으로 반복되는 대사는 장소의 반복과 맞물려 묘한 기시감과 환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

큐브릭 감독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꿈(영화)과 현실을 섞어 버린다. 영화가 시작되며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 ‘Waltz No. 2‘이 배경에 깔린다. 고풍스럽고 도발적인 왈츠 음악 위로 파티에 참석할 준비를 하는 부부의 모습이 그려진다. 몇 마디 대사가 오가고 빌이 거실에 있는 오디오를 끄자 배경음악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영화 밖에서 삽입된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음악이 사실은 영화 내에서 틀어진 음악이었던 것이다. 큐브릭 감독은 시작부터 꿈과 현실의 경계를 과감히, 영화적으로 지워버린다.

캐스팅은 화룡점정이다. 큐브릭 감독은 당시 실제 부부이자 톱스타였던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 섭외에 공을 들였다. 영화의 실체적인 동력인 관객들의 관음증을 적극적으로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다. 물론 작가주의적이라는 편견과 달리 항상 흥행에 신경 쓰던 큐브릭 감독의 상업적 결정이 포함되기도 했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관객들은 실제 부부의 연기 같지 않은 연기라는 인식을 어쩔 수 없이 영화에 투영할 수밖에 없었고, 두 배우의 열연을 통해 현실과 꿈의 경계선에 발을 딛게 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

결혼의 묘미가 상대방을 속이는 것이라고?

하룻밤 동안 일어난 빌의 아슬아슬한 모험은 본캐라고 믿었던 앨리스의 모습. 헌신적이고 차분하며 정숙한 아내가 사실은 부캐였음을 알게 되며 시작된다. 울컥하는 심정에 밤거리로 나선 빌은 충동적으로 부캐를 만들지만 오히려 본캐의 정체성만 흔들리게 된다. 빌도, 앨리스도 본캐가 탄탄하지 않은 상황에서 욕망을 충실하고 건강하게 반영하지 못한 위태로운 부캐가 삶의 전면에 등장한 탓이다. 그렇다면 영화의 메시지는 큐브릭답지 않게 ‘부캐에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본캐를 만들어라’는 교훈적인 의미일까.

지글러의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헝가리 남자는 앨리스에게 끊임없는 추파를 던진다. 유부녀라고 선을 그었을 때조차 ‘결혼의 묘미는 상대방을 속이는 것 아니냐’는 말문이 턱 막히는 기묘한 대답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마냥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다. 제도적, 문화적으로 강한 결속력을 가진 ‘결혼제도’에서 필요한 건 상대방을 잘 속이는 것일지 모른다. 물론 속인다는 것이 불륜의 주인공이 된다거나, 배우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몰래 다른 일을 꾸미는 부도덕한 방법을 말하는 건 아니다. 헌신, 정숙, 책임감, 우정 등의 수많은 도덕적인 감정들로 만들어낸 부캐로도 우리는 배우자를 충분히 속일 수 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

이런 부캐가 나쁘지만도 않다. 김이나 작가는 <보통의 언어들>에서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내가 혼란스럽다는 고민에 ‘모든 곳에서 온전한 나로 존재한다는 건 이기적이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배려하기에, 사랑하기에, 책임이 있기에, 히스토리가 있기에 우리는 종종 다른 모습을 한다‘는 의미다. 앨리스는 본캐와 부캐의 무게중심을 아마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모양이다. 영화의 엔딩씬에서 방황을 마친 빌이 고해성사를 묵묵히 들은 앨리스는 일단 딸과 함께 쇼핑을 가자고 한다. 쇼핑몰에서 앨리스는 이런 말을 한다.

“이렇게 생각해봐요 감사해야 한다고 감사해야죠 / 우리의 온갖 모험을 무사히 극복할 수 있어..생시였든...꿈이었든 간에 /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지금 깨어 있다는 거죠 그리고 다행히도...아주 오랫동안요”

그리고 마지막에 함께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며 아주 도발적이고 충격적인 단어 하나를 우리의 삶에 툭 던져놓는다. 50년 간 영화계의 최전선에서 관객들과 함께 사유의 지평을 넓혀온 전설적인 감독이 유작에서 고른 마지막 단어가 각자의 삶에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사랑하는 사람과 서늘한 가을밤에 어울리는 이 영화를 본 뒤 판단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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