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계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지금까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자신에게 제기된 각종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최씨는 지난 9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비서실' 명의로 된 보도자료를 내고 땅 투기, 위장 전입, 아들 병역, 여론조사 유출, 88년 당시 대통령 의회해산권 개헌 지지 등 9가지 의혹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 한겨레 3월 8일자 1면
"나와 배우자의 토지, 불법소유·투기 아니다"

최씨는 우선 토지 소유 관련 투기 의혹에 대해 "후보자와 배우자의 토지는 당시 관련 법률 규정에 따라 적법하게 취득했고 대부분 경제적 가치가 높지 않으며 10~20년 전 매입 후 지금까지 장기간 소유하고 있어 투기 목적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위장전입 논란에 대해서는 "89년 9월 여의도동에서 서초동으로 전입했다가 1개월 후 다시 직전 주소지로 이전한 일이 있다"며 "당시 아들이 징병 신검일을 놓쳐 아직 신검이 끝나지 않은 서초구로 잠시 주소를 옮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아들이 당시 대입 재수를 하고 있어 병역법 규정에 따라 신체검사를 연기할 수 없었다"며 "주민등록법을 잠시 위반한 것에 대해서는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결과적으로 병역 면제 판정을 받기는 했지만 이는 헌법상 병역의무 이행을 위해 부득이했다는 점을 양해해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어 아들 병역 문제에 대해서도 "후보자의 아들은 89년 9월 29일 징병 신체검사에서 신장 179cm, 체중 114kg으로 당시 면제기준을 훨씬 초과해 제2 국민역 판정을 받았다"며 "현재도 비슷한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97년 스티븐 보스워스 주한 미 대사를 만나 대선관련 여론조사 내용을 유출했다는 KBS 보도에 대해서는 "10년 전의 오래된 일이라 그 시점에 미 대사를 만났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면서 "설사 보스워스 대사에게 여론조사 결과를 알려줬다고 하더라도 이는 공직선거법에서 금하는 '공표'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본다"고 밝혔다.

"주민등록법 위반은 송구…아들 병역의무 이행 위해 부득이했다"

그 이유에 대해 최씨는 "공표라 함은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그 내용을 알리는 것"이라며 "공직선거법상 공표의 대상인 불특정 또는 다수인은 국내 유권자로 한정해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최씨가 지난 88년 동아일보 정치부장 시절, 대통령에게 의회해산권을 주는 개헌 발언을 한 김용갑 당시 총무처 장관을 찾아가 지지발언을 하고, 또 비슷한 시기에 후배 기자와 함께 전두환 전 대통령과 골프 회동을 가져 물의를 빚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는 "사건의 진실을 왜곡한 일방적 보도"라고 반박했다.

"보스워스 대사 만났는지 기억 안나…그래도 국내 유권자 아니니 '공표' 아니다"

그는 "당시 김용갑 전 총무처 장관에게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전혀 없다"며 "87년 개헌이 된 후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또 개헌을 하자는 발언을 지지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또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의 갈등이 본격화되던 시기였고, 회사에 정식으로 보고를 하고 취재 차원에서 골프 요청에 응했다"며 "이를 문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1988년 8월26일자 기자협회보 1면(노컷뉴스 www.cbs.co.kr/nocut/)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활동했던 88년부터 93년 사이에 양비·양시론적인 칼럼으로 일관성이 부재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논설의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지 않고 필요한 해당 문구만 단순 대비시켜 사실을 왜곡시켰다"며 "후보자는 당시 여야 어느 한쪽에 기울어짐 없이 언론인으로서 중심을 잡고 국민의 입장에서 불편부당하게 대통령을 포함한 여야 모두의 분발을 촉구, 그들이 국민을 위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정치부장 시절, 20년 전 일이라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아울러 동아일보 정치부장 시절에 문화공보부 직원을 만나 회사 내부사정과 보도계획 등 '동향보고'를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최씨는 "당시의 일은 20여년 전의 오래된 일이라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당시 문공부 담당 직원이 대학 동기여서 사적으로 만나 허물없이 이야기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당시 대화 내용을 기록한 별도의 보고서가 존재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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