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드라마 촬영에 불참한 뒤 미국으로 떠난 배우 한예슬 씨가 출국 이틀만인 1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찌되었건, 한 차례 ‘파문’은 끝이 났다. “잔혹대본”이라는 후속타로 높아진 클릭 수만은 어떻게든 이어가려는 낚시 기사들이 씁쓸한 뒷맛을 남기지만 말이다. 한예슬 파문(?)처럼 관계자나 관심자 모두 한 마디 씩은 던진 일이 한바탕 휩쓸고 가면 그 뒷정리를 맡는 이들은 별로 없다. 하기야 당사자가 촬영장 복귀라는 투항선언을 한 마당에 막판 변죽을 울려서야 무슨 소용이겠나. 그럼에도 냉정한 분석은 이렇게 파문이 진정되어 갈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감정 섞인 비난조의 형용사들, “한예슬” 만이 주어가 되는 숱한 문장들, ‘내 그럴 줄 알았다’는 예언 따윈 잠시 제쳐두고 조금은 추상적인 이야기로 시작하자. 그리고 다시 한예슬 파문이라는 구체로 돌아가자. 이게 그나마 분석이란 모양새를 갖추는 방법일 듯하다.

문화산업 공장의 기계: 스타

드라마에서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의 거의 모든 콘텐츠는 일반적인 상품과 달리 ‘인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개인을 스타라 부르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자기 신체의 일부나 노동을 통해 대중의 주목(attention)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때문이다. 대중의 주목은 시청률, 음원의 다운로드 수, 관객 동원력 등 계량된 수치로 환산되며 이러한 수치들의 예측가능성이 문화 콘텐츠의 투자와 기획에서 있어 리스크의 부담을 덜어준다. 이렇게 본다면 문화 콘텐츠 상품의 생산과정에서 스타란 일정 기간 동안 주목을 끌 수 있는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가치를 다양한 콘텐츠들― 드라마, 예능, CF, 음원 등 ―에 점진적으로 이전시키는 ‘가동연한’을 가진 기계와 같다.

앞서 감정적 형용사 따윈 쓰지 않겠다고 했으니 좀 더 냉정하게 가보자. 생산라인에서 기계는 일정 기간 동안 자신을 만들 때 투여된 가치를 조금씩 상품 한 단위 각각에 이전시키면서 그 수명을 다하는 ‘고정자본(fixed capital)’이다.1) 스타 역시 자신의 연습과 숙련만으로는 부족하며 기획사를 비롯한 다양한 집단과 사람들의 노동력이 투입되어 만들어지는 기계와 같다. 마치 하나의 기계가 몇 년 동안 공장 안에 머물며 상품을 생산하다 그 수명을 다하듯, 고정자본으로서의 스타 역시 문화산업이라는 공장의 생산라인들을 오가다 감가상각비와 같이 자신의 가치 손실을 보충할 무엇이 없다면 그곳을 떠나야 한다. 이런 퇴출을 흔히 보험회사에서는 ‘가동연한 만료’, 우리는 ‘은퇴’라고 부른다. 결국 스타란 상품이긴 상품이되, 일정한 숙련(연습) 기간 동안 쌓아온 노동력이 소모된 결과인 드라마, 영화 등의 문화 콘텐츠가 상품이며, 스타 자신은 그런 상품을 만들기 위해 문화산업이라는 공장의 여러 생산라인을 옮겨 다니는 기계와 같은 생산재일 뿐이다.

“스타를 임대해 드립니다”

문화상품의 생산에서 스타의 속성이 본질적으로 고정자본이라면, 또 다른 문제는 이 고정자본을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만드는가로 이어진다. 드라마 배우들로만 범위를 좁혀보자.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연기자들은 각 방송사들의 공채로 뽑힌 ‘전속 계약’ 배우들이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특히 SBS의 개국 이후 방송사간 연기자들의 교차 출연이 시작되더니 1990년대 중반에 이르면 대부분의 배우들은 방송사가 아니라 기획사에 의해 발굴되고 그곳에서 숙련을 거쳐 계약을 맺게 되는 소위 ‘에이전트 시스템’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채널 간 경쟁이 심해지자 방송사에겐 드라마의 소재나 횟수에 따라 유연성이 필요함에도 전속계약이라는 이유로 자사 배우들을 계속 캐스팅한다는 것은 너무 높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 그 때 그 때 필요한 배우들을 적당한 가격에 ‘임대’해 주겠다는 기획사들의 출현은 방송사로선 반가운 일이었다. 게다가 장기간의 연습과 숙련과정 뿐 아니라 복잡한 사생활 정리까지 맡아준다니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의 문화산업에서 이런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에이전트 시스템이란 스타라는 고정자본의 생산과 임대를 전문으로 하는 곳(기획사)과 이를 빌려 콘텐츠를 만드는 생산라인(방송사, 제작사)의 구분을 낳고, 그 문화산업의 지형이 어떠한가에 따라 이 양자 간 협상력의 기울기를 달라지게 하기 때문이다.

금융자본이 알려 준 학습효과

시청률과 흥행이 보장된 스타라는 기계를 소유함으로써 방송사와 제작사에 비해 우월한 지위의 확보를 노리던 대형 기획사들은 2000년대 중반에 이르면 아예 스스로 제작에 뛰어들어 소위 ‘종합엔터테인먼트사’라는 회사를 차리게 된다.2) 지극히 한국적 상황일 수 있지만, 이 종합엔터테인먼트사들은 스타에 대한 소유권과 제작역량을 담보로 독특한 방식의 수익창출 경로를 창안해 냈다. 어차피 방송사나 제작사 모두 ‘겨울연가’ 정도의 판매 실적이 없다면 드라마 한 편을 제작해서 남는 수익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여기에는 도대체 누가 갑이고 을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제작사와 방송사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지만, 종합엔터테인먼트사들은 이런 구조를 쇄신하기보다 더 손쉬운 이익창출의 방법을 찾아냈다. 몇 편의 드라마들로 괜찮은 실적을 쌓은 후 국내외 금융자본들의 투자를 받아 주식시장에 우회상장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2005년을 전후하여 공모를 통한 정상적인 시장 진입이 아니라 이미 상장되어 있는 기업 중 대주주의 지분율이 낮고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과 인수합병을 거쳐 뒷문상장(back door listing)을 하는 대형 제작사들이 늘어났다. 인수합병의 대상은 제조업, 건설업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행해졌는데, 특히 2000년 전후 벤처열풍을 등에 업고 코스닥에 상장되었으나 적자에 허덕이던 IT업체들이 주 대상이 되었다.3)

대표적인 드라마 제작사인 초록뱀미디어를 보자. 처음 초록뱀앰엔씨라는 드라마 제작 프로덕션으로 시작했던 이 회사는 2005년에 부직포 제조업체였던 (주)코닉테크라는 코스닥 상장 업체를 인수합병, 지금의 초록뱀미디어를 우회상장하고 제작사인 초록뱀앰엔씨를 자회사로 둔다. 이후 초록뱀미디어는 2007년 초록뱀SA라는 방송아카데미와 연예기획사인 초록뱀매니지먼트를 자회사로 설립하여 지금의 종합엔터테인먼트사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런 식으로 상장된 종합엔터테인먼트사들은 실제 방송 콘텐츠의 시청률과 이후 판권 수익에 상관없이, 기대되는 프로그램의 외주를 맡았다는 소식만으로도 주가가 상승한다. 여기에 좀 한다는 ‘외부세력’들의 우회상장이나 인수합병이란 풍문만으로도 주가가 급등하는 이상현상도 한몫 한다. 초록뱀미디어는 올해 초 한 종편채널에 <하이킥3>의 외주를 맡는다는 소식과 신인연기자 매니지먼트사를 설립하여 수익을 올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마자 주가가 올랐다. 그러나 곧이어 소니가 약 10%의 지분투자를 하겠다는 소식에 거래차익을 노린 주주들의 대량 매도 주문으로 다시 주가가 하락한 일이 있었다. 이 와중에 초록뱀미디어 최대주주의 특별관계인인 엔에이치피홀딩스는 주가 하락 직전, 보유주식을 전량 매도하여 23억 원의 차익을 남기는 순발력을 발휘했다.

수익의 담보물, 스타와 스탭

이러한 종합엔터테인먼트사들의 수익전략의 핵심에 스타라는 고정자본이 중요한 역할을 함은 물론이다. 실제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이들은 기계와 같은 고정자본이지만, 주식거래가 오가는 시장에서는 그 기계가 투입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주가를 올려주는 신호(signal)가 된다. 이런 수익창출 경로야 말로 신자유주의 축적체제의 특징인 금융자본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식이나 펀드와 같은 투자가 블랙박스와 같이 알 수도 없는 증식과정을 거쳐 수익을 내는, 소위 ‘고용없는 성장’이란 드라마 제작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적어도 제조업에서는 생산라인에 좋은 기계를 들여놨다고 해서 그토록 높은 주가 상승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종합엔터테인먼트사들은 예외다. 지상파 방송사의 한 드라마에 스타라는 기계를 임대(출연)한다는 소식만으로도 이들의 주가는 올라가며, 이로 인해 얻는 수익의 증식과정에서 실제 제작현장의 스탭들과 다른 연기자들의 노동은 철저히 은폐되거나 간과되어 버린다. 결국 이 과정에서 문 닫는 드라마 제작사들은 속출하지만, 이와 같은 금융자본의 증식경로를 잘 알고 있는 큰 손들에겐 그 폐업으로 인한 수많은 실직자들과 임금체불 따위는 알 바가 아니다. 물론 이 큰 손을 부여잡고 2,3대 주주가 된 스타 PD나 작가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부 스타들의 경우, 아예 자신들 스스로가 기획사나 제작사의 주식을 증여받아 ‘우리사주’가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우리가 남이가” 정신으로 그 주주들과 한 배를 타고 죽어도 같이 죽겠다는 도원결의급 맹약에 가깝다. 하긴 이것도 헛된 약속이기 일쑤지만.

드라마 제작이라는 복마전

<스파이 명월> 제작파행을 단순히 한 연기자의 투정과 이미지에 맞지 않는 발언의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처럼 복마전에 가까운 드라마 제작 구조 때문이다. 종종 제작현장의 고충을 공식 석상에서 이야기하는 연기자들은 있었지만, 그들의 발언조차 기계라는 고정자본에 가상의 인격을 부여하는 이미지 메이킹이 되기 십상이었다(그래서 문근영은 역시 착했던 것이다!). 이미지 메이킹이 아니라 파문급으로 발언이 나왔을 때, 팬들이나 시청자들의 반응보다 우선하는 건 자신들이 스타라는 고정자본을 만들어 냈다고 주장하는 기획사, 이들을 임대받아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사, 그 드라마로 시청률을 올려야 하는 방송사들의 시선이다. 이들의 시선이야 말로 냉정하기 그지없다. 말썽을 일으킬 연기자들의 발언이란 기계의 발언,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혹성탈출>의 유인원이 “NO”라고 외칠 때 느끼는 놀라움보다 약간 덜한 당혹스러움일 뿐이다. 그래서 <스파이 명월>의 제작파행은 “한예슬이 아닌 기계의 반란”이자, 기계의 “가동연한 만료”에만 신경 쓰는 기획사, 한탕을 노리는 천박한 금융자본, 그리고 갑과 을의 자리를 놓고 다툼을 벌이는 제작사와 방송사들의 손익계산이 충돌한 순간이다. 어떻게 보면 한 때 ‘한류’의 선봉이었으며, 지금은 글로벌 콘텐츠 경쟁력을 갖춰야 할 한국 드라마의 환상이 걷히고 진실이 드러날 순간이었던 셈이다.

하기야 이런 진실의 순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특정 연예인과 제작진의 불화, 제작사와의 출연료 분쟁, 스탭들의 대규모 임금체불 등 숱한 문제제기들은 잊혀질 만하면 고개를 들어왔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기계로서의 스타는 고정자본 이상의 역할을 해 주었다. 투자자, 제작사, 방송사 어느 쪽이든 스타라는 기계를 담보로 머니게임을 벌이다가 잠행하던 구조적 모순이 불거지면, 그 드라마의 주인공은 분쟁의 주인공으로 순식간에 탈바꿈시킬 수 있다. 이런 충돌의 보도에서 언론이 어김없이 발휘하는 스타 중심의 냄비근성 또한 단지 근성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언론 또한 그런 복마전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이해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좀 어려운 오프닝은 접고 본편으로 들어가야 하겠는데, 이 오프닝이 너무 길었다. 예고편이 늘어지면 본편 관객동원도 힘들지만, 어쩌랴. 이미 시작은 했으니 본편은 다음 글로 넘긴다.

1) 경제학자인 이채언은 고정자본으로서의 연예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밤무대 가수를 예로 들자. 그녀가 무대에 나가기 전에 연습하고 배우는 노동은 그녀의 노동력을 생산하는데 투하된 간접노동이지, 직접노동이 아니다. 직접노동은 최종 생산물에 한꺼번에 투여되는 노동이어야 하는데 이 가수가 연습하고 배우는데 지출되는 노동은 마치 고정자본에 대한 투자처럼 오랜 기간에 걸쳐 가수의 노동력 생산에 기여할 것이다.” 문제는 ‘무대에 나가기 전에 연습하고 배우는 노동’이 스타 스스로가 아니라 기획사나 방송사에 의해 행해질 경우, 스타는 그 자체로 다른 이들의 노동이 투하된 고정자본이 된다. 이채언(1995), “맑스의 추상노동에 대한 재해석,” 한국사회경제학회 엮음, 가치이론 논쟁, 서울: 풀빛.

2) 아마도 이러한 한국적 스타 시스템의 선봉은 SM엔터테인먼트일 것이다.

3) 2005년 코스닥 시장에서 이뤄진 67건의 우회상장 중 전년대비 증가한 37건의 대부분은 바로 이러한 종합엔터테인먼트사에 의한 것이었다. 김정섭(2007), 한국 방송 엔터테인먼트 산업 리포트,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Modus Vivendi(모두스 비벤디)란 양식 혹은 방식을 뜻하는 라틴어 Modus와 삶을 뜻하는 Vivendi의 합성어로 “생활양식”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 용어는 어떻게 해서든 살아가기 위해 서로 경합하는 이들 사이의 ‘잠정적인’ 적응이나 타협을 숨은 의미로 담고 있습니다. 삶의 잠정성이란 달리 보면 불안함이기도 합니다. 국가권력, 자본, 그리고 미디어와 같은 완고한 대상과 우리의 삶이 맺어지는 방식 또한 사실은 언제나 이렇게 불안하지 않을까요?

이 코너에서는 바로 그런 불안함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해보려 합니다. 모든 완고한 것들의 불안함을 드러내는 작업이야 말로 비판의 목표이며 희망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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