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7승 3패 7세이브를 기록 중인 신인왕 후보 LG 임찬규는 승수와 세이브 숫자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이지만 그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첫째, 올 시즌 개막 엔트리에 포함된 후 단 한 번도 2군에 내려간 적이 없는 유일한 신인이며, 둘째 56.1이닝을 소화하고도 2.88의 수준급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이기 때문입니다.

아직 제구가 가다듬어지지 않아 삼진(40개)보다 볼넷(42개)의 개수가 많고 구속도 140km/h 중반을 넘는 일이 드물어 보다 향상시켜야 하지만 만 18세로 아직 육체적 성장이 진행 중이니 제구와 구속 모두 개선의 여지가 충분합니다. 무엇보다 강인한 승부 근성과 당당한 자신감이 임찬규의 가장 큰 무기입니다. 투수력이 최대 약점이었으며 대형 신인이 입단해도 좀처럼 잠재력을 꽃피우지 못한 채 사라졌던 LG의 팀 컬러를 감안하면 임찬규는 가뭄에 단비와 같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최근 임찬규의 등판이 지나치게 잦아 우려스럽습니다. 지난 7월 31일 트레이드로 영입된 송신영이 마무리로 자리 잡은 뒤, 이전까지 실질적인 마무리였던 임찬규는 특별한 보직 없이 불펜에서 시도 때도 없이 등판하고 있습니다.

▲ 8월 7일 잠실 한화전에서 3회초 2사 후 김경언에게 만루 홈런을 허용한 뒤 강판되는 임찬규
임찬규는 8월 5일 잠실 한화전 이후 8월 18일 잠실 두산전까지 LG가 치른 최근 9경기 중 8경기에 등판했습니다. 8월 10일 광주 기아전을 제외하고 모든 경기에 등판한 것입니다. 임찬규는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2경기,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6경기에 등판했습니다. 8월 5일 잠실 한화전에서는 8점차로 앞서고 있는 9회초에 등판한 반면, 8월 18일 잠실 두산전에서는 4점차로 뒤진 4회말에 등판했습니다. 즉 승패 및 점수차와 무관하게 원칙 없이 등판했다는 의미입니다.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임창용이 삼성 시절 아무 때나 마운드로 불려나와 모기업의 휴대 전화 이름에서 따온 ‘애니콜’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바 있었는데 현재 임찬규가 바로 ‘애니콜’인 셈입니다.

임찬규가 8경기에서 소화한 이닝은 10이닝으로 경기 당 1이닝이 훌쩍 넘습니다. 우완 정통파 투수인 임찬규가 원 포인트 릴리프로 기용되고 있는 것도 아니고 패전 처리나 추격조도 아니며 그렇다고 필승 계투진도 아닌 불분명한 보직으로 마구잡이로 등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 투수가 등판을 위해 불펜에서 적지 않은 연습 투구를 거치고 나온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임찬규의 혹사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2008년에 LG에 입단한 정찬헌은 2년 동안 선발과 중간, 마무리를 원칙 없이 오가며 혹사당한 여파로 2010년 1군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2010 시즌 종료 후 박종훈 감독은 미국 플로리다 마무리 훈련에 정찬헌을 참가시켰습니다. 올 시즌을 앞두고 투수진 구상에서 정찬헌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찬헌은 부상이 재발해 재수술을 거쳐 공익 근무 요원으로 입대했습니다.

정찬헌을 전혀 활용하지 못한 박종훈 감독은 2년 간 정찬헌을 혹사시킨 전임 김재박 감독을 내심 원망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박종훈 감독 역시 남을 탓할 입장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임기 첫해인 작년 이동현을 혹사시키는 바람에 스프링 캠프에서 제대로 훈련도 시키지 못했고 올 시즌 개막 이후 현재까지 구속과 제구 모두 극도의 난조를 보이며 사실상 전력 외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발 등판 간격을 4일로 앞당겨 고정시키는 바람에 어깨 부상으로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2군에 내려간 에이스 박현준 역시 박종훈 감독의 과욕과 조급증이 부른 화입니다. 8월 18일 잠실 두산전 종료 후 LG팬들이 원정 출발하는 박종훈 감독을 막아서는 소위 ‘청문회’를 요구한 이유로는 무기력한 패배와 부진한 성적 탓도 있지만 임찬규 혹사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박종훈 감독의 구상대로 올 시즌 정찬헌, 이동현이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필승 계투진에서 제 역할을 했다면 마무리로 등 떠밀린 고졸 신인 임찬규가 볼넷을 남발해 팀을 무너뜨린 6월 17일 잠실 SK전과 같은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역투하는 임찬규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임찬규의 신인왕 수상을 위한 배려라는 주장도 있지만 투수의 선수 생명을 갉아먹는 혹사를 통한 개인 타이틀 수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올 시즌 가능성을 보인 임찬규의 등판 간격을 조정해 관리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선발 투수로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김경문 감독이 두산을 상위권으로 올려놓고도 결국 우승에 실패해 자진 사퇴해야 했던 이유 중 하나가 선발 투수를 육성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만일 임찬규가 재작년의 정찬헌과 작년의 이동현의 전철을 밟아 혹사의 여파로 인해 내년 시즌에 제대로 활용될 수 없다면 박종훈 감독의 3년차, 혹은 신임 감독의 첫해는 또 다시 아쉬움 속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박종훈 감독이 임기 첫해인 작년 6위를 기록했으니 2년차인 올해 한 계단 순위가 상승한 5위로 마무리하는 체면치레를 위해 임찬규를 혹사시키는 것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LG는 이미 4위 롯데와 4.5 게임차로 벌어져 남은 37경기 동안 순위를 역전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사실상 가을 야구가 물 건너간 이 시점에서 박종훈 감독의 냉정하고도 슬기로운 판단이 요구됩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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