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관심·논쟁·비전이 없다는 말까지 들은 여당 전당대회가 예상대로의 결과로 끝났다. ‘예상대로’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이낙연 대표의 압승과 박주민 의원의 선전이다. 상대적으로 김부겸 전 의원은 정치적으로 다소 손해를 보았다. 두 번째는 핵심 지지층이 선호하는 강경론에 기대지 않으면 지도부 입성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는 거다. 언론 노출도가 낮았던 후보들이 조직표를 확보했음에도 끝내 탈락한 최고위원 투표 결과는 이 점을 보여준다.

‘어대낙’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이낙연 대표의 탄생은 이미 기정사실이었다. 오히려 관심은 얼마나 압도적인 득표율로 대표가 되느냐에 모였다. 득표율이 얼마나 나오느냐에 따라서 이낙연 대표가 대권주자로서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는지 여부가 달라질 것이라고들 봤기 때문이다.

이낙연 대표는 상당기간 여론조사에서 안정적인 대권주자 1위의 지위를 지켜왔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가 하락하면서 이낙연 대표 지지율도 동반 하락했다. 여기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대법원 판결로 정치적 족쇄를 벗게 되면서 위기감이 고조됐고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역전을 허용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대표가 되더라도 대권주자로서 역할은 어려워질 수 있었다. 따라서 압도적 득표로 확고한 당내 지지 기반을 확인하는 게 필요했다.

이낙연 대표는 과거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지 않아 구민주당계로 분류됐고 정치적 색깔도 강성이라기 보다는 온건파에 가까워 여당 주요 지지층의 입맛에 딱 맞는 캐릭터로 보긴 어렵다. 그럼에도 전당대회에서 성과를 남긴 것은 문재인 정부의 국무총리로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사실도 있지만 호불호가 명확한 이재명 지사의 부상으로 지지층이 결집했다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

박주민 의원도 여당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본인의 정치적 체급을 상회하는 성과를 거둔 걸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관심사는 서울시장 재보선 출마로 모아지게 됐다. 박주민 의원이 출마를 공언한 일은 없으나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국면이다.

다만 박주민 의원 본인이 목표한 노선과 가치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키는 것은 실패했다. 이것은 코로나19와 홍수, 태풍 등의 재난 피해 때문에 공격적인 의제설정을 하지 못하게 된 면도 있지만, 본인이 크게 의지를 갖지 않았던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다. 연설의 기회마다 그나마 인상을 남긴 것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행정부의 뉴딜 비유 정도였고 나머지는 현안에 대해 강경론을 내건 다른 후보들과 비슷한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김부겸 전 의원은 이낙연 대표와 맞설 수 있는 대권주자로서 전당대회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기회 자체도 적었지만 메시지의 문제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가령 김부겸 전 의원이 가장 강조했던 것은 대표 임기 2년을 채우겠다는 거였는데, 이낙연 대표의 약점을 공략하기 위한 무기로는 인식될 수 있었지만 이게 김부겸 전 의원의 정치적 전망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다. 더군다나 마찬가지로 2년 임기를 채울 박주민 의원의 출마로 의미도 반감됐다. 재난지원금 등 쟁점에서 이낙연 대표와 차별화를 시도했으나 이마저도 이재명 지사에게 공간을 빼앗겼다. 이런 상황이 예측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전략전술의 부재가 뼈아프다.

김부겸 전 의원의 남은 선택지는 내년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해 사실상 대선을 접는 선택을 하거나 아니면 다른 기회를 노리다가 대권 도전으로 직행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선택하기 쉽지 않고 선택에 따른 성공을 장담할 수도 없다. 이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가 당분간은 고민거리가 될 듯 하다.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제4차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신임 당대표로 선출된 이낙연 의원이 자가격리로 인해 자택에서 당대표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 체제의 더불어민주당 앞에는 상당히 어려운 과제가 놓여 있다. 먼저 코로나19 재확산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어떤 경우든 보수야당과의 협력은 필수다. 상임위 재배분 등이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상황은 다행이다.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한 정책적 맥락에선 여야의 인식차가 크지 않은 만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합의를 도출해 빠른 대응을 가능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제대로 하려면 정권이 추진한 남은 개혁 과제들의 처리 전망에 대한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대통령 임기 내에 반드시 처리할 과제, 다음 정권으로 넘길 과제, 기약이 없더라도 일단은 내려놓을 과제 등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코로나19 대응을 고려하면 당장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는 ‘개혁 법안’의 선택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이낙연 정치’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를 결정하고 이를 토대로 내년 재보선의 큰 그림을 짜는 것까지가 이낙연 지도부의 1차적 임무다.

이 과정을 제대로 거치기 위해서는 청와대가 아니라 당이 정책의 전면에 나서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이른바 ‘당청관계’의 조정이다. 과거처럼 대통령과 당이 충돌하는 국면은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은 현재로선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이 청와대 참모들의 처신 논란으로 이어진 것에서 보듯 정권 말기가 가까워질 수록 청와대의 정책 추진 동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연스럽게 바톤을 넘겨 받는 것이 최선이다. 이 과정에서 엄중히 지켜보는 것에서 벗어나 대권주자로서 정치인 이낙연의 색깔을 보여줘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여당의 핵심지지층에게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다. 예를 들어 이낙연 지도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윤석열 검찰총장의 사퇴 등 정파적으로 비칠 수 있는 민감한 발언이 계속된다면 앞서의 과제들은 제대로 완수하기 어렵다. 개혁이 자기들끼리 좋자고 하는 일로 비춰져서는 성공할 수 없다. 그동안의 정치적 맥락 때문에 상당 부분은 이미 그렇게 됐지만, 이낙연 지도부에선 다를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개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할 준비가 돼 있다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강경론을 앞세워 지도부에 입성한 최고위원들도 이런 맥락에서 그동안의 태도를 유지할 것인지 심각한 고민을 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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