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연대를 성사시켜 대선에서 한나라당과 1:1 구도를 만들기 위해 '혁신과 통합'이라는 조직이 출범한 모양이다.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을 보니 추억과 향수가 아련하다. 참여정부 초창기 진보진영과 격렬하게 대립했던 친노인사들의 이름이 새삼스럽다.

이들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민주당 내부에서 지금까지 짜여졌던 구도를 잠시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 민주당의 소위 빅3는 손학규, 정동영, 정세균이며 크게 이들을 중심으로 계파가 형성되어 있다.

손학규계는 김근태계 일부와 486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수도권에서의 경쟁력과 중도층 공략에서의 경쟁우위를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정동영계는 천정배계와 구 동교동계를 비롯한 당내 비주류들이 뭉쳐있는 상황이며 정동영 의원은 2007년의 패배 이후 '담대한 진보'로 요약되는 좌클릭 행보로 활로를 찾고 있다. 친노와 486 일부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정세균계는 그동안 입장이 불명확하다가 얼마 전 '남부민주벨트'등의 이슈를 꺼내며 'PK의 수복'으로 요약될 수 있는 '87년 체제 재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 민주당 빅3로 불리는 손학규(좌), 정동영(가운데), 정세균(우)
이제 출범한 '혁신과 통합'의 행보에 대해 예단하는 것은 성급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민주당 내의 구도에 이것이 어떤 영향으로 작용하리라는 예상을 해보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어떻게 될까?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이 모임에 결국 친노진영의 구심점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민주당 내의 친노그룹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이다. 그동안 민주당 내 친노는 입장을 하나로 정리하지 않고 손학규계와 정세균계에 느슨하게 발을 나눠 걸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자체는 판이 지금처럼 이어지는 한 아마 끝까지 정리되지 않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광재 전 지사가 "친노는 하나의 정파로서 행동하면 안 된다"고 자꾸 말하는 것에도 이러한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12월로 예정된 당권 경쟁에서 여전히 친노그룹이 어떤 집단적 선택을 해야 하는 국면이 닥쳐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바로 이 모임의 출범이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한 상황을 추측해보기 위해서는 이해찬 전 총리의 말을 직접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해찬 전 총리는 8월 8일자 한겨레신문을 통해 보도된 인터뷰에서 '전당대회가 본격화하기 전에 전당대회 준비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통합을 위한 적당한 수사로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정치인의 말이 언제나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말에 '당권투쟁을 준비하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것은 정세균 전 대표의 '야권통합을 위한 안을 지금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렇게 보면 친노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정치인으로서 그가 하는 말은 어느 정도 친노의 의지가 담겨있다고 판단해도 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친노그룹이 12월 전당대회에서 승리하기 위해 지금부터 본격적인 당권경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제를 이야기하면 당연히 그 상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적으로 민주당이 세 가지 정파로 쪼개져 있는 이상 친노그룹이 당권을 도모하는 것은 사실상 당권경쟁이 삼파전으로 흘러갈 것임을 예측하게 하기 때문이다. 친노그룹과 손학규계와의 대결은 지금 국면에서 손학규냐 문재인이냐의 전선으로 이해될 수 있고 이들을 두고 벌어질 대선 후보 경선 구도에서 공정한 경쟁과 결과의 승복을 매개로 후보단일화를 도모할 수 있는 그림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외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당 내부의 질서라는 점에 있어서는 조기과열 구도가 짜여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문제는 정동영계와의 갈등인데,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 경선 이후 친노그룹이 정동영계에 갖게 된 뿌리 깊은 악감정은 이후의 상황을 우려할만한 것으로 보이게 하기 충분하다. 물론 이러한 예상은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지만 문제는 이것이 진보진영이 추진하고 있는 진보대통합 프로젝트에 일정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 '혁신과 통합' 출범과 야권연합의 진행 상황을 알린 18일자 한겨레 5면 보도
핀트를 진보진영의 입장에 맞추어 놓고 다시 상황을 정리해보자. 진보대통합이라는 문제에서 최근의 민감한 이슈는 국민참여당 합류의 인정 여부이다.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민주당과의 통합 협상 가능성은 제로'라고 말하며 거듭 진보진영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바라고 있고 진보신당은 이에 반대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가 계속해서 연출된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태도가 다른 핵심적인 이유는 대선전술의 차이에 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적극적인 선거연합과 이를 통한 정권교체에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반면 진보신당의 태도는 민주노동당에 비해 '조건부'로 요약할 수 있는 여지가 큰 것으로 보인다. 국민참여당의 합류는 당연히 2012년 대선을 범-민주당 세력에게 양보하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므로 이러한 입장 차이가 생기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은 진보진영의 경우 보수정치세력과는 달리 이슈에 대한 입장과 명분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즉, 진보진영을 통합의 대상으로 삼으려면 그들에게 명분을 줄 수 있어야 하고 이것을 위한 민주당의 좌클릭 행보가 관건이다. 그것을 아는 민주당은 최소한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행보가 당권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도 이어질 수 있을까?

주목해야 할 것은 최근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발언이다. 안희정 지사의 최근 '민주당에게는 한미FTA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 '정치인이 희망버스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발언을 통해 최근 이어지는 민주당의 좌클릭 경향에 이의를 제기했다. 쉽게 판단할 수 있듯이 이러한 발언은 진보정당을 대상으로 한 야권연대에 장애가 된다. 그는 야권연대를 파탄내기 위해 이러한 발언을 한 것일까?

오히려 이 발언은 친노세력과 정동영 의원의 관계를 통해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민주당 내에서 좌클릭을 가장 열심히 하는 사람은 정동영 의원이다. 그는 한미FTA를 반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펴고 있고, 최근에는 진보진영이 좋아하는 투쟁현장에 수차례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물론 희망버스에도 참여했다. 이렇게 보면 안희정 지사의 발언은 친노 핵심 중 한 사람으로서 정동영계와 경쟁하기 위한 포석의 일부였던 것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이야기를 이렇게 풀면 자연스럽게 그림이 그려진다. 좌클릭에 열중하는 정동영계와 당권경쟁을 하려면 전선이 좌클릭을 중심으로 그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친노그룹을 중심으로 통합 가능한 대상은 참여정부의 핵심 정책을 지지하는 국민참여당 정도만 남는다. 아마 이 그림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이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정세균 대표의 전 '선도통합론'도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에 방점이 찍혀 있다. 국민참여당더러 민주노동당을 데리고 오든지 그게 아니면 혼자라도 빨리 오라는 것이다.

이해찬 전 총리가 복원하고 싶어하는 '87년 체제'는 그들에게는 PK가 민주세력의 일원이던 시절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진보진영에게는 시기상조였던 개혁과 완수하지 못한 혁명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아마 2012년에 재래할 87년 체제에는 전통적인 민주노동당 지지세력과 진보신당을 위한 자리는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8월 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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