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내가 자주 가는 카페에 책상이 있다. 덩치가 큰 롤 톱 실린더 데스크로 가정집에 놓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크다. 그런 이유로 책상은 카페에 놓였다. 카페 사장님은 고가구, 소품, 조각품, 그림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카페 곳곳에 오래된 가구와 그림, 이국적인 민속 공예품, 조각품을 공간에 잘 스며들도록 배치했다. 책상도 고가구 중 하나로 카페 공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책상은 카페 입구 쪽에 -지금은 별채에- 놓여 있었다. 카페를 찾아 커피를 마시러 오는 사람 중 책상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책상이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니었지만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책상 위에 살짝만 건드려도 깨질 것 같은 여린 찻잔이 놓여 있었다. 지나가다 걸음을 멈춘 사람 중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예쁜 찻잔을 보며 감탄사를 뱉어내도 덩치 큰 책상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갈 때마다 책상 앞에 서서 조심스럽게 책상을 만지곤 했다. 백 년이란 시간을 쉼 없이 걸어 여정을 끝내고 잠시 길가에 앉아 쉬는 노파의 뒤꿈치처럼 닳고 닳은 거친 책상 모서리를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쓰다듬었다. 지난 비밀스럽고 고단한 시간이 묵직하게 손끝을 타고 심장에 전해졌다.

책상은 미국에서 건너왔으며 백 년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카페 사장님이 말했다. 책상 주인은 이미 오래전에 무화되었지만 책상은 남아 낯선 땅, 카페에 놓이게 되었다. 모서리가 닳고, 군데군데 칠이 벗겨졌지만, 책상은 건재했다.

참고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둥근 뚜껑이 있는 책상은 사용하지 않을 때는 비밀 유지를 위해 뚜껑을 닫고 열쇠를 잠글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책상에는 수십 개의 서랍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열쇠로 잠글 수 있게 된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서랍이었다. 책상은 크고 작은 서른여덟 개의 서랍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 책상 앞에 서서 서랍 개수를 세면 개수가 달라졌다. 개수를 셀 때마다 서랍이 늘어났고, 작은 또 다른 서랍이 발견되었다. 책상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서른여덟 개에서 서른아홉 개로, 마흔 개로 증식되었다.

어릴 적 나에게도 비밀은 담는 책상이 있었다. 나는 언니, 할머니와 같이 방을 썼다. 방에는 자그마한 앉은뱅이책상이 있었다. 앉은뱅이책상을 언니와 함께 썼다. 주로 내가 사용했다.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편지를 썼다. 나는 앉은뱅이책상을 좋아했다. 중학생이 되어 새로운 책상이 생겼지만, 다리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일기를 썼다. 앉은뱅이 작은 책상에는 열쇠로 잠글 수 있도록 만든 서랍이 하나 있었다. 서랍에 일기와 편지를 보관했다. 앉은뱅이책상을 좋아했던 이유는 이 서랍 때문이었다.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내밀한 이야기를 열심히 서랍에 담았다. 카페에 있는 책상도 누군가의 은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상의 주인은 Q-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Q는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책상에 앉아 열정을 담은 편지와 식지 않는 마음을 일기에 쓰고 있다. 당신이 문을 열고 들어오던 순간, 그날의 떨림, 비스듬히 누운 햇살 속으로 사라지던 뒷모습. 당신의 향한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편지를 서랍에 간직한다.

그리고 Q는 죽었다. 전하지 못한 말을 책상 서랍에 남긴 채. 가족은 Q의 유품을 정리한다. Q와 함께 생활했던 책상은 가족에게 큰 골칫거리다. 쓸데없이 자리만 많이 차지하고 볼품없이 낡아버렸다. 책상은 Q의 여러 유품과 함께 정리되었다. 책상은 문필가의 서재에 놓였다, 가정집 거실에 장식용으로 놓였다. 책상은 고가구 전시장을 떠돌다 유럽식 롤 톱 실린더 데스크에 관심이 많은 한국인의 눈에 띄어 낯선 땅에 오게 되었다. 책상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있었지만 덩치와 무게감 때문에 선택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랜 시간 고가구 전시장에서 있어야 했다. 봄은 여름으로, 여름은 가을로 계절이 바뀌었다. Q와 지냈던 시간, Q를 보내고 지냈던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전시장에서 보내야만 할 것 같았다. Q에 대한 기억이 모두 소멸할 때까지 책상은 선택받지 못할 것 같았다.

지금 책상은 카페에 놓여 있다. 카페에 간다면 혹 책상을 발견하게 된다면 조심히 다가가야 한다. 가구점에 가구를 보러 온 것처럼 서랍을 거칠게 여닫는 무례한 행동은 삼가야 한다. 책상을 발견한다면 당신의 사연을 알고 있다고 노인의 뒤꿈치처럼 닳은 모서리를 조심스럽게 매만져야 한다. 그리고 그 내밀한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면 서랍을 열어라.

어쩌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서랍이 있을지 모른다. Q의 비밀이 담겨 있는 서랍으로, 서랍 바닥에 혹은 책상 서랍 상단에 당신의 향한 연서와 함께 가는 실반지가 있을 수 있다.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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