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현실일까 꿈일까, 사실일까 아닐까, 헷갈리고 서있지마”

<인셉션>을 본 뒤 가장 먼저 생각나는 노래가사는 남진의 <둥지>가 아닐까. 팽이가 힘겹게 돌아가는 마지막 장면은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꿈이다, 아니다. 관객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긴 엔딩씬에 대한 해석은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도록 논란 중인 문제에 대한 해답이 드디어 공개됐다. 정답 발표자는 코브의 장인 마일즈 역을 맡은 마이클 케인이다.

영화촬영 당시, 혼란스러운 대본을 읽은 대배우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게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가?' 라고 물었고, 놀란 감독은 '당신이 등장하면 현실'이라고 답했다는 인터뷰를 남긴 것이다. 물론 영화의 의미는 해석하는 이의 몫이지만, 총지휘자인 감독은 현실이라는 설정 아래 그 장면을 촬영했다는 정도의 가이드라인 정도로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영화 '인셉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보증수표

놀란 감독의 최고 작품으로 꼽히는 건 대체로 <다크나이트>지만, 커리어 전체를 본다면 절묘한 플롯의 활용없이 우직하게 스토리를 밀고나간 변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과거와 현재에 정확히 22개씩 씬을 치밀하게 배분해 천재감독의 등장을 알린 <메멘토>. 일주일, 하루, 1시간이라는 3개의 타임라인을 절묘하게 교차시키며 전쟁영화의 새로운 틀을 제시한 <덩케르크>처럼 복잡한 플롯을 홍보의 전면에 내세웠다면 보증수표가 발행됐다고 판단해도 틀리지 않다.

<인셉션> 역시 ‘꿈 속의 꿈’을 모티브로 놀란 감독의 특기인 복잡한 플롯 활용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영화사가 100년이 넘어가니 ‘꿈 속의 꿈’이라는 소재를 다룬 영화도 수없이 많고, 1억 달러 이상 제작비가 들어간 블록버스터는 세어보기도 어렵지만 꿈 속의 꿈을 전면에 내세워 해당년도 전 세계 흥행 10위 안에 들고, 평단의 아낌없는 찬사를 들은 블록버스터는 <인셉션>이 유일할 것이다.

<인셉션>은 무려 5단계에 이르는 무의식 탐험이라는 복잡한 플롯을 정교하게 다룬 것을 넘어, 영화로 체험할 수 있는 최대치의 몰입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는 데 더 큰 방점을 찍어야 한다. 영화가 끝나고 INCEPTION이라는 제목이 뜨는 동시에 그렇게 큰 허탈한 한숨 소리가 극장을 채운 적은 본 일이 없고, 영화 안에 단서들을 찾아내 자기 만의 스토리로 엮어보려는 수많은 2차 창작자들이 지금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보편화 된 CG를 비롯해 관객의 몰입을 돕는 4DX, VR 등 체험형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뜻밖에도 CG 대신 현장의 아이디어로 놀라운 특수효과를 성공시키는 놀란 감독이 최고의 체험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미디어가 갖고 있는 기본에 충실할 때 온전한 몰입에 도달할 수 있다는 증거이자 제작진의 피, 땀, 눈물을 지켜보는 총지휘관의 뚝심이기도 하다.

영화 '인셉션'

허나 옥에도 티가 있듯, 몰아치는 여운을 뒤로하고 곰곰히 살펴보면 <인셉션>에도 아쉬운 부분은 있다. 꾸준하게 놀란 감독의 약점으로 지목되는 정서적 감흥의 부족이다. 한껏 활성화된 두뇌활동으로 지적충만함을 채울 수는 있지만, 극장문을 나서며 가슴이 벅차오르는 경험을 하기는 어렵다. 로버트(킬리언 머피)에게 어떤 생각을 주입시켜야 한다는 메인플롯과 함께 코브와 멜(마리온 꼬띠아르)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이 서브플롯으로 전개되지만, 이 역시 난해한 방탈출 게임의 성공을 위한 중간과제 중 하나로 보일 뿐이다.

배우들의 활용도 아쉽다. 조셉 고든 래빗(아서 역), 엘렌 페이지(아리아드네 역)톰 하디(임스 역), 톰 베린저(브라우닝 역), 와타나베 켄(사이토 역) 등 영화계의 내로라하는 명배우들이 총출동했지만, 개념 설명을 위한 가이드 혹은 미션해결을 위한 카드로 소모 되고 만다. 물 흐르듯 영화를 진행시키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오죽하면 포털 영화소개 최상단에 올라가 있는 명대사가 ‘팽이 돌아가는 소리’라고 전해듣는다면 출연 배우들이 만족감을 느끼기는 어려울 듯 하다.

영화 '인셉션' 주연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놀란이 새겨놓은 인셉션을 기대하며

그러나 이런 단점은 90점 맞는 학생에게 100점을 기대할 때 보이는 흠일 뿐. 스티븐 스필버그, 제임스 카메론 정도에게만 허락된 전면편집권을 얻어내며, 현장에서 더 인정 받는 놀란 감독이 만들어 온 영화가 누구에게나 거리낌 없이 추천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오락영화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기에 다음 주 개봉을 앞둔 신작 <테넷(TENET)>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읽어도 테넷, 거꾸로 읽어도 테넷’인 이 신작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다. 다만 시간을 소재로 삼았고, 배우들마저 뭘 찍었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하고, 비행기 격납고를 실제로 폭파시켰다고 한다. 놀란의 전매특허 3가지를 내세운 코로나 시대의 최고 기대작. 게다가 촬영분 모두를 1:43대 1 비율의 아이맥스 카메라로 찍었다는 이야기에 포맷을 온전히 상영할 수 있는 극장예매를 서두르는 것도 어쩌면 놀란이 10년 전에 새겨놓은 인셉션은 아닐까하는 합리적 의심이 생긴다. 팽이를 돌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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