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최선욱 칼럼] 최근 넷플릭스의 국내 이용자 급증과 KT의 넷플릭스 제휴를 둘러싸고 미디어 정책, 시장, 산업 내 다양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 부처는 넷플릭스 같은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법·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 연구반들을 발족시켰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자기 부처의 소관 업무범위나 영역 강화라는 복선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 와중에 산업 내 주요 행위자들은 자사의 유·불리를 고려한 입장들을 직접 표명하거나 관련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언론에 노출시키고 있다. 그 논란의 중심에는 시장과 산업이 있다.

해외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가 우리사회 논쟁의 중심에 있을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이 미디어라는 점이다. 한 사회에서 미디어가 중요한 이유는 사회 구성원들이 갖게 되는 경험의 구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우리는 좋든 싫든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자극을 받고, 위로와 재미를 느끼며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심지어 미래의 소비경향에도 영향을 받는다. 게다가 미디어가 가장 중요하게 기능하는 곳은 바로 일상이다. 일상생활의 행위를 판단하고 우리의 상식을 형성하거나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준이나 준거를 제공한다. 그래서 콘텐츠는 플랫폼보다 규제를 더 받아왔다.

(사진=KT)

그런 측면에서 국내 유료방송 가입자 1위인 KT의 넷플릭스 제휴는 상당히 상징적이다. 첫째, 넷플릭스의 잠재적 시장지배력 강화를 위한 뒷문을 국내 1위 유료방송 사업자가 열어주었다는 점이다. 넷플릭스는 2016년 딜라이브, 2018년 LG유플러스에 이어 KT와 제휴를 하면서 지난 8월 3일부터 국내 방송사들과는 달리 별다른 내용규제 없이 국내 유료방송 가입자 수 약 3,300만의 과반 이상에게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둘째, 지난 6월 22일 정세균 총리 주재 제12차 정보통신전략위원회에서 의결한 ‘범부처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이 지향하는 정책목표가 한 번에 무색해졌다는 점이다. 정부는 해당 발전방안을 토대로 플랫폼이 혁신해나갈 수 있도록 규제 최소화, 유료방송 가입자의 3분의 1로 제한하는 시장점유율 규제 폐지, 국내 글로벌 플랫폼 기업 최소 5개를 목표로 지원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조건 없는 규제완화로 뒷문은 커졌고 한국형 영상스트리밍 서비스의 성장은 요원해졌다.

셋째, KT가 IPTV 가입자 유지나 확대라는 플랫폼 산업 내 경쟁을 위해 선택했겠지만 그 영향은 이제 플랫폼 산업을 넘어 국내 콘텐츠 제작 산업에 매우 좋지 않은 신호로 작동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많은 제작자들이 더 큰 예산과 창작의 제한을 피하기 위해 넷플릭스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로 인한 긍정적인 영향마저 부인하자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멋진 외식이 일상의 삼시세끼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킹덤>이나 <인간수업>과 같은 드라마들이 화제가 될 수 있지만 국가의 산업 재원규모가 한 기업의 투자비용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서 시장의 자극이나 해외 거대기업에 뒷문을 열어주는 규제완화만이 능사는 아니다.

2018년 9월 전 세계 가장 큰 규모의 공영방송사인 BBC를 이끄는 토니 홀 사장조차 왕립 텔레비전 협회(Royal Television Society)가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영국의 미디어 산업이 한 손을 등 뒤로 묶인 채 글로벌 거물들과 경쟁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밝힌 바 있다.

국내 방송사나 미디어 기업들은 경쟁 규칙, 콘텐츠 규제, 편성 비율, 거래 조건, 과세, 기금출연, 심의, 광고 등에서 일정한 규칙을 적용받지만, 해외 거대기업들은 그 규칙을 거의 적용받지 않는 상황에서 좋은 콘텐츠를 통해 경쟁만 하라는 것이 제대로 된 논의방향인지 모르겠다.

* 해당 칼럼은 개인 SNS에 게재된 것으로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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