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기아와의 주중 원정 3연전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LG에 비보가 날아들었습니다. 에이스 박현준이 어깨 부상으로 오늘부로 엔트리에서 제외된다는 것입니다.

박현준의 부상은 일찌감치 예견된 것입니다. 박종훈 감독이 박현준의 무리한 선발 등판 일정을 고수했기 때문입니다. 시즌 개막 후 박현준이 3승 1패의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자 박종훈 감독은 박현준의 등판을 4일 휴식 후 5일 만에 등판으로 고정했습니다. 주중 첫 경기인 화요일에 등판하는 투수가 4일 휴식 후 주말 마지막 경기인 일요일에 등판하는 경우는 있으나 박현준은 5월 중순부터 요일과 무관하게 5일 등판 로테이션에 고정되었습니다. LG의 다른 어떤 선발 투수도 박현준과 같은 무리한 로테이션을 적용받지는 않았습니다. 5월 13일 목동 넥센전부터 6월 19일 잠실 SK전까지 박현준이 등판한 8경기 중 5일 로테이션 경기는 6경기나 되었고 2승 4패에 그쳤습니다.

올 시즌 박현준의 기록을 비교하면 차이는 확연합니다. 5일 로테이션으로 10경기에 선발 등판해 2승 6패 평균 자책점 5.47에 그쳤으나 6일 로테이션으로 6경기에 선발 등판해서는 4승 1패 4.68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했습니다. 승패와 평균 자책점 모두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숨 가쁜 순위 싸움을 벌이는 시즌 막바지도 아닌 5월 중순에 박현준이 5일 로테이션으로 고정된 것에 대해 혹사 우려가 제기되었으나 박종훈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휴식보다 패턴 유지로 이겨내야 한다’며 강한 정신력을 요구했고 최계훈 투수 코치도 ‘아직 젊다’며 혹사가 아님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급기야 박종훈 감독은 박현준을 선발에서 불펜으로 전환시킵니다. 7월 2일 잠실 두산전에서 133개의 투수구로 완투와 다름없는 9이닝을 소화한 박현준을 3일 휴식 후 4일째인 7월 6일 대전 한화전에 구원 등판시킨 것입니다. 불펜 투구를 실전에서 대신한다는 것이 명목이었습니다.

4:4로 맞선 6회말 2사 후 등판한 박현준은 8회말 강동우에게 솔로 홈런을 허용해 패전의 위기에 몰렸지만 9회초 이병규의 역전 만루 홈런으로 승리 투수가 됩니다. 9회초 6득점으로 10:5로 벌어졌으니 다음 선발 등판을 위해 박현준을 9회말에는 등판시키지 않는 것이 바람직했으나 9회말에도 올라 2실점하며 투구수는 불어났습니다. 박현준은 이날 3.1이닝을 소화하며 44개의 투구수를 기록했습니다.

박종훈 감독이 부진에 빠진 팀 분위기를 전환시키며 박현준을 보다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시키기 위함인지 알 수 없으나 44개의 투구수는 일반적인 불펜 투수들의 한 경기 투구수 30개보다 50% 가까이 늘어난 부담스런 숫자입니다. 그리고 박현준은 3일 뒤인 7월 9일 기아와의 홈 경기에 다시 선발 등판합니다. 1주일 동안 세 경기에 등판해 자그마치 18.1이닝을 소화한 것입니다.

6월 이후 LG의 부진이 깊어지며 박현준을 불펜으로 전환시킨 것은 고육지책이라고 변명할 수 있으나 애당초 5월 중순부터 박현준의 선발 등판 간격을 앞당기지만 않았어도 LG의 부진은 그처럼 심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LG의 부진과 박현준의 불펜 전환은 선발 에이스 박현준을 5일 등판으로 고정한,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것과 다름없는 무리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무리수가 무리수를 부른 것입니다.

▲ 8월 7일 잠실 한화전에서 1.1이닝 5피안타 1볼넷 4실점으로 조기 강판되는 박현준. 박현준은 이번 주말 잠실 롯데전 선발 등판을 앞두고 어깨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될 예정입니다.
풀타임 첫 해를 기록 중인 젊은 투수가 자주 경기에 등판하기를 원해도 만류하고 관리해야 할 감독과 투수 코치의 발언과 태도로는 매우 부적절한 것이었음을 박현준의 기록과 어깨 부상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혹사에는 장사가 없으며 투수의 어깨는 (쓰면 쓸수록 닳아 없어지는) 지우개와 같다’는 야구 속설은 예외가 없으나 조급증에 사로잡힌 박종훈 감독만 몰랐던 듯합니다.

박현준의 부상과 엔트리 제외 소식이 전해진 직후 벌어진 어제 기아전에서 LG는 또 다시 타선이 침묵하며 기아에 역전패했습니다. 그제 한 이닝 12득점의 타선 폭발은 신기루처럼 사라졌습니다. 경기 전 선수단에 날아든 에이스의 부상 이탈 소식이 경기에 어떤 심리적 영향을 주었는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LG는 이날 패배로 4위 롯데와 2.5게임차로 벌어지며 포스트 시즌 진출에 더욱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습니다. 당장 잠실에서 벌어지는 롯데와의 주말 3연전에 박현준의 이탈로 선발 로테이션에 공백이 발생했습니다.

현재 박현준의 정확한 병명과 부상 정도, 그리고 언제쯤 복귀가 가능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기적처럼 열흘 만에 복귀해 4월처럼 강속구를 뿌려대며 LG를 구원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LG 관계자의 인터뷰처럼 ‘5일 정도 휴식 후 등판 가능’한 가벼운 부상이었다면 4강행의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 있는 다급한 상황에서 박현준을 1군 엔트리에서 제외하지 않고 선발 로테이션을 한 번 거르는 수준에서 마무리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군 엔트리에서 제외해 최소 열흘 동안 제외된다는 것 자체가 부상 정도가 가볍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박현준의 부상과 더불어 LG도 4강에서 탈락한다면 박종훈 감독이 져야 할 응분의 책임은 매우 무거울 것입니다. 더욱 두려운 것은 단지 9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만으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전임 김재박 감독의 혹사 끝에 수술을 받고 1군에서 사라진 정재복과 공익 입대한 정찬헌의 전철(정찬헌 뒤늦은 입대, LG의 허술한 선수 관리 )을 박현준이 밟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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