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서울신문 지면에 실린 칼럼이 온라인판에 게시되지 않았다. 편집국 구성원들의 내부 반발에서 비롯된 조치로, 내부에서는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 칼럼이 실려서는 안 된다는 성명이 나오고 있다.

서울신문 6일 자 31면에는 곽병찬 논설고문의 <광기, 미투를 ‘조롱’에 가두고 있다> 오피니언이 실렸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피해자 측 김재련 변호사의 발언들을 ‘1970년대 긴급조치’에 ‘국가보안법’ 등에 빗대어 비판했으며 변호사의 이력을 문제 삼는 내용이다.

서울신문 지면에 실린 곽병찬 논설고문의 <광기, 미투를 '조롱'에 가두고 있다>

곽 고문은 피해자 측의 증거공개가 어렵다는 말에 “그저 믿고 따르라니 1970년대 긴급조치가 부활했나?”라고 비유했다. 피해자 측의 “2차 가해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침묵하는 것도 2차 가해”라는 발언에는 “‘남한판 수령체제’를 옹위하던 국가보안법에도 그런 조항이 있다”며 “정파적 광기, 증오의 광기는 지금 수십년 동안 기대한 희생을 통해 쌓아 올린 민주적 제도와 헌법적 가치, 이성적 판단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고 했다.

곽 고문은 “반증이 오히려 설득력 있었음에도 재판부가 고소인의 주장을 받아들인 박재동 화백이나 고은 시인 사건은 좋은 경우”라며 “전 서울시향 대표 박현정, 영화배우 곽도원 등에 대한 기획 혹은 가짜 미투도 있었지만 미투에 대한 이런 특별한 예우는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이밖에 곽 고문은 김재련 변호사의 화해치유재단 이사 이력을 문제 삼는 동시에 고소인의 진정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문을 해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신문 내부 취재결과, 5일 저녁 가판을 통해 칼럼을 확인한 편집국은 해당 칼럼을 지면에 실을 수 없다고 항의했다. 하지만 논설실 및 편집인(사장)이 이를 거절, 칼럼은 소폭 수정된 채로 출고됐다. 이에 편집국은 온라인 출고를 거부하기로 해 서울신문 홈페이지에는 칼럼이 나가지 않았다.

서울신문 내부 게시판에는 칼럼을 비판하는 기자 성명이 올라왔다. 편집국 사회부 한 기자는 ‘곽병찬 칼럼에 이의 있다’는 글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를 정면으로 겨냥한 곽 고문의 이번 칼럼은 매우 실망스럽고 걱정스럽다”며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를 드러내놓고 공격하는 글이며 논리적인 결함이 다수 있고 사실 관계가 틀린 부분도 적지 않다”고 반박했다.

기자는 김 변호사의 말을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에 빗댄 것은 ‘비약’이라며 “독재정권과 성폭력 피해자를, 정권을 비판하는 행위와 성폭력 피해자의 주장을 의심하는 행위를, 시민들을 탄압한 폭정과 ‘2차 가해를 하지 말라’는 피해자 측 목소리를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질뿐더러 상식적이지도 않다”고 비판했다.

박재동 화백이나 고은 시인 사건을 예로 든 것에 대해서는 “사실과 거리가 먼 자의적 해석”이라며 법원의 패소판결에도 이들의 반박이 피해자 주장보다 설득력 있었다는 근거 없는 논리를 전개했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 공격에 대해 “근거가 빈약한 음모론일 뿐”이라고 지적했으며 고소장 문건을 누가 유포했는지 피해자가 직접 밝혀야 한다는 주장에는 “전제가 틀린 주장으로 박 전 시장에 대한 명예훼손이 아닌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반박했다.

기자는 “독자들이 곽 고문의 글을 서울신문이 박원순 사건을 보는 스탠스로 오해할까 두렵다”며 “아직 사실관계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증거를 근거로 피해자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기자는 서울신문이 편집국 부장단 회의를 거쳐 피해호소인, 고소인 대신 ‘피해자’라는 호칭을 쓰기로 하는 등 피해자 중심주의를 견지하기로 압묵적으로 합의했다고 본다며, 편집인 사장과 칼럼 운영 책임자인 논설실장에게 해당 글을 싣게 된 경위와 편집국의 삭제 및 수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밝혔다. 서울신문 내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해당 성명과 비슷한 취지의 성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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