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을 둘러싼 논쟁은 수십 년 째 제자리다. 학교의 위기는 깊어가고 위기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 학교에서의 생활지도는 최근까지도 윗사람에 대한 공경, 아랫사람에 대한 자애 등 전통적인 윤리규범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고 사랑의 매는 이를 보조하는 수단으로써 일정부분 허용되어 왔다. 우리사회가, 특히 학교가 의존했던 전통적인 윤리규범은 이미 사라지고 있다. 교육적 처방과 폭력이라는 양날의 칼 ‘체벌의 가능성’이 간신히 유지해 오던 학교 규범은 ‘체벌의 가능성’을 제거하자 혼돈의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전통적인 윤리규범이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다면 현재 사회에 맞는 합리적인 제도가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이제 학교 위기에 대한 논의의 핵심은 그 합리적인 제도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로 이동해야 한다.

학교 위기의 현실 진단과 대안 모색을 위한 현직 교사의 제언을 총 5회에 걸쳐 연재한다.


체벌을 대체하는 합리적이고 실효성 있는 지도 규정이 필요하다

천부인권의 이론은 원래 사회보다 선행하는 개인을 상정한다. 이러한 개인에게 자유는 한계가 없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사회집단에 속해 살아가며 그가 속한 사회집단의 목표에 따라 일정하게 행위에 제한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 ‘제한’의 내용이 인권침해로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인가 혹은 그 사회집단과 그 집단이 속한 지금의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부분은 끊임없이 논의 가능한 것이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재설정되어야 하지만, 그 ‘제한’을 모두 없애는 것이 사회집단 구성원 모두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교사 1인과 학생 1인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교육이 아닌 공교육제도에서의 교육이라는 특수성을 우리 사회가 받아들여야 한다면 1인의 무한자유보장이 다른 다수의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 정상적인 교수활동에 미치는 영향이 존재하고, 따라서 1인의 무한자유는 그가 속한 사회집단에서 합의될 수 있는 기준에 의해 일정하게 제한할 수밖에 없다. 또한 교육행위를 하기 위한 권리제한의 정도를 학교 구성원들이 교칙으로 합의할 경우 이를 어겼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도 명확하게 규정되고 학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그 규정이 실효성을 가져야 한다.

합리적 ‘제한(규제)’을 어기는 행위를 반복해도 이를 저지할 강력한 유인이 존재하지 않으면 사실상 방임상태라고밖에 할 수 없다. 현재 학교에서 교사들이 요구하는 것은 바로 그 합리적 ‘제한’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학생들과 함께’ ‘공부를 목적’으로 하는 ‘학교라는 특수한 환경’속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교육활동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비합리적인 행위를 지속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자유의 실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학생의 행동에 ‘제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학교에서 다른 약한 학생들에 대한 인권보장도 어렵고, 교실에 민주주의적 문제해결의 문화도 자리잡기 어렵고, 수업을 하기 위해 필요한 교사의 교권도 지켜지기 어렵다. 과거에는 그 ‘제한’의 장치로 교육적 체벌을 허용했다면, 이제 그것은 인권의 요청에 맞게 그리고 정의의 요구에 맞게 합리적인 제도로 재설정되고 실효성을 가져야 한다.

▲ 경기도 P고등학교는 생활인권교육부서를 만들어 학생을 체벌 없이 선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교육에 대한 국가적 투자 없이 교육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법 단원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교사들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직업병이 무엇일까라고 물었다. 목을 많이 쓰고 서서 일하는 직종의 특성상 성대결절과 하지 정맥류를 염두에 두고 물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반에 상관없이 ‘스트레스’와 ‘화병’을 언급했다. 교사가 받는 압력의 요인들로는 시간에 쫓기고 행정적 지원이 별로 없으며, 아이들은 더 극성스러워지고, 교육자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과 기대이다.1)

1980년대 초 영국에서는 은퇴시기에 가까운 남성교사의 사망률이 70년대보다 2배로 증가했으며, 교사의 조기 은퇴율이 3배로 증가하였고 교사들의 평균수명은 국가 평균보다 4년이 낮다는 보도가 있다.2) 1980년대 후반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교사의 파업이 있었다. 요구조건은 봉급을 올려달라거나 근무시간을 줄여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이혼율의 증가와 거칠어진 아이들로 교사가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학급이 되어 버리자 교사가 수업거부를 한 것이다. 그들은 주당 20시간에 학급당 20명을 요구했으며, 이를 20/20비전이라고 하였다.3)

학교에서 문제행동을 일으키면서 다른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아이들은 이미 가정에서 양육과정의 문제 등의 상처를 안고 있어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들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체벌로 해결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학생들의 문제행동에 학교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교육적으로도 해답이 될 수도 없다.

지도와 관련하여 필요하다면 법도 개정하고 학생지도와 관련하여 이제 국가적으로 필요한 재원을 제대로 투입해야 한다. 학교에서 지도가 어려운 학생들을 교육청과 연계하여 지도할 시스템 마련, 심리치료와 상담이 병행될 수 있는 지원과 함께 학교규모와 학급당 학생수의 축소, 교사의 행정업무 축소 등을 통해 학생과 교사가 인간적인 상호작용을 나눌 수 있는 여건 조성 등이 필요하다. 돈 들이지 않고 고뇌하지 않고 값싸게 교사들에게 ‘막대기’하나 쥐어주고 학교에 닥친 위기 상황을 온몸으로 막아내라고 하는 건 교사와 학생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다.

1) 이연섭(2000), 「자라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학교가 무너지면 미래는 없다』, 교육과학사
2) 위의 책, 위의 자료 p222
3) 위의 책, 위의 자료 p223에서 재인용


서울시흥중교사. 전국사회교사모임 회장. 학교가 학생이나 교사에게 행복한 곳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실현하고자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는 사회교사다. 100억 규모 교육연구재단을 만들겠다는 야무진 꿈도 함께 가지고 있다.
<주제가 있는 사회교실>(돌베개,2004), <사회선생님이 뽑은 우리사회를 움직인 판결>(휴머니스트, 2007) 공동저자. <공정무역 왜 필요할까>(내인생의 책,2010) 공역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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