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을 둘러싼 논쟁은 수십 년 째 제자리다. 학교의 위기는 깊어가고 위기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 학교에서의 생활지도는 최근까지도 윗사람에 대한 공경, 아랫사람에 대한 자애 등 전통적인 윤리규범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고 사랑의 매는 이를 보조하는 수단으로써 일정부분 허용되어 왔다. 우리사회가, 특히 학교가 의존했던 전통적인 윤리규범은 이미 사라지고 있다. 교육적 처방과 폭력이라는 양날의 칼 ‘체벌의 가능성’이 간신히 유지해 오던 학교 규범은 ‘체벌의 가능성’을 제거하자 혼돈의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전통적인 윤리규범이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다면 현재 사회에 맞는 합리적인 제도가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이제 학교 위기에 대한 논의의 핵심은 그 합리적인 제도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로 이동해야 한다.

학교 위기의 현실 진단과 대안 모색을 위한 현직 교사의 제언을 총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느끼는 고통은 다차원적 - 다차원적 대응이 필요하다

현재 학교는 여러 모로 아이들이 그리고 한편으로 교사 또한 행복하지 못한 공간이다. 학교는 왜 존재하는지 그리고 교사에게, 학생에게 지금 학교란 어떤 곳인지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느끼고 있는 고통을 세 차원에서 생각해 보았다.

차원1. 학교는 겨울에 춥고 여름엔 덥고, 컴퓨터는 느리고 잘 고장 나고, 냉온풍기에 먼지가 수북한 곳이다

교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학생과 교사 누구나 느끼는 고통이라 할 수 있다. 학생들은 생각한다. 자신의 집, 학원, 도서관, 동사무소 어디를 가도 학교보다 열악한 곳이 없는 것 같다. 집이나 학원보다 낙후한 학교 시설은 학교가 가져야 할 권위를 약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느린 컴퓨터, 자주 고장 나는 멀티시스템-학교는 이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직원이 없다. 정보부에 속한 컴퓨터 과목 교사들이 수업 외 시간에 점검하거나 직접 업체에 서비스를 부탁해야 한다. 인내심의 한계를 넘나들게 만드는 교실 냉난방 온도1) 등은 학교에서 일차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학생들이 아니라 더 중요한 다른 데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이다.

학생의 쾌적한 학습권을 보장해주지 않으면서 교칙만을 강요할 때, 대다수 학생들에게 학교에 대해 그리고 교사들에 대해 불신을 키워 교육에 필요한 최소한의 권위가 형성되는 데 어려움을 야기하게 된다. 학교의 모든 자원은 학생들이 정규 학습시간에 쾌적하게 그리고 순조롭게 학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데 가장 일차적으로 쓰여야 한다. 현재 방과 후 수업이나 수업 외의 특별한 학교 사업에 쏠려있는 자원 지원을 정규 학습시간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 또한 학생회가 형식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합리적인 요구사항들이 수렴돼 반영될 수 있는 구조로 정착되어야 한다.

차원2. 내가 입는 옷 그리고 내 몸과 머리를 내 뜻대로 꾸미는 데 있어 통제가 심하다

용의복장 규정과 관련하여 우리나라 규정을 보면 ‘학생다운’ 모습을 갖추도록 요구한다. 하지만 ‘학생다움’의 기준이 모호하여 과도한 통제 위주의 복장 규정이 적용되는 경향이 있다. 머리 길이 등을 구체적으로 제한하기도 하고, 하복 착용 시기나 동복 착용 시기를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정해 강제함으로써 학생 개인이 자신의 몸 상태에 의해서 선택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독일의 학교생활규정2)을 보면 복장규정은 찾아보기 어렵고 대부분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다른 구성원들과의 관계와 관련한 규칙들이다. 미국의 학교3)에는 복장규정이 있는데 허용되지 않는 복장의 예를 보면 과도한 노출, 폭력의 갱단을 상징하는 옷차림, 저속어나 차별, 폭력을 정당화하는 문구가 들어 있는 옷 등이다. 우리나라는 허용범위가 매우 좁고, 미국의 경우 규제범위가 매우 좁다고 볼 수 있다.

지나친 통제위주의 규정은 학생들에게 반발심만 키우고 오히려 정작 필요한 규칙에 대한 권위를 약화시킨다. 학교가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학생의 용의 복장에 대한 지나친 통제보다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제대로 지키도록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학교 규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을 참여시켜 학생들의 자율성을 성장시킬 수 있는 교육의 기회로 삼고 권리와 책임의 주체로서 인식하도록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 서울시교육감 첫 주민 직선선거를 앞두고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21세기청소년공동체희망, 청소년다함께 등 청소년 단체들이 '학교자율화 반대, 미국산쇠고기급식반대, 두발규제 체벌금지, 교육감청소년 선거권 찬성' 등 청소년들이 바라는 후보상을 내세우고 있다. ⓒ연합뉴스

차원3. 교실공동체는 살아 있지 않고 군중심리가 작동하며 악동이 교실 분위기를 지배한다

현재 우리나라 학교의 모든 교실이 이렇지는 않다. 또한 학교에서 심각한 악동의 수는 대다수 일반학생들에 비해 수적으로는 매우 적다. 그러나 그들이 미치는 파장은 너무도 크다. 교사들의 수업을 방해하고 그럼으로써 다른 학생들의 수업권을 방해하고 나머지 학생들에게 인성적으로 미치는 영향도 너무 크다.

부모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매여 아이들의 생활태도를 어릴 때부터 잡아주지 못했거나, 경제력에 크게 문제가 없어도 양육태도에 문제가 있는 경우, 가족 관계에 문제가 있는 경우 아이들의 생활태도나 인성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이러한 악동들의 행동과 인성은 인성 형성에 결정적인 시기 등을 거치면서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몇 번의 상담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학업성적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풍토와 물질적 이해관계로만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풍토가 맞물리면서 사람으로서 서로를 배려하고 돕는 공동체 문화가 교실내에서도 파괴되고 있다.

악동들의 행동을 또래들의 관계를 통해 규제할 수 있는 건강한 공동체가 살아 있지 못하고 악동에 지배되거나 악동이 한 반에 여러 명일 경우 군중심리가 작동하여 더 나쁜 행동들이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정작 남에게 심한 욕을 할 수 없는 아이들, 바른 태도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막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주위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악동들의 행동에 대해 ‘그래서는 안 된다’라고 말할 수도 없는 분위기에서 말없이 고통을 삭이고 있을 뿐이다. 이런 학생들과 그 부모들은 그래서 악동들의 행동을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느끼는 고통의 세 차원 외에 학습과 관련된 부분은 여기서 다루지 않았다. 2000년 초 교실붕괴와 관련하여 그 원인을 묻는 질문에 학생들은 ‘주입식 교육관행(40.0%)’을 가장 큰 원인으로 보았다. 또한 교과내용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학생들은 ‘교과의 교육적 필요성에 대하여 71.6%가 부정적’4)이었다. 학생들이 학교 교육의 내용을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심리적인 동의를 보내고 있지 못하다면 교육에 필요한 권위가 서기 힘들다. 최근 초등학교 교사들이 펴낸 <교과서를 믿지 마라>는 현재의 교육과정과 이에 따라 만들어진 교과서가 어떤 고통들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아이들이 즐거울 수 있는 수업으로 변하려면 수업의 내용과 형태를 규정하는 교과서, 교과서를 규정하는 교육과정, 수업내용을 역으로 규정하게 되는 평가의 방법을 동시적으로 바꿔가야 한다. 학교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교과서-수업-평가 부분에 대한 대안도 다른 나라와의 비교 검토를 통해 중장기적 계획을 통해 마련되어야 한다.


1) 공공기관에 일괄적으로 적용 중인 에너지 10%절약 운동은 학교 교실 공간의 면적 대비 학생 수가 35~40명에 이를 정도로 밀집해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보통 사무실에서 학교 교실 공간 정도에는 7~8명도의 인원이 근무하게 된다. ‘일선 학교에 한하여 학교장의 재량으로 냉·난방기 가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라는 공문(재정과-8259<2010.06.22>)이 다시 내려오긴 하였으나 공문 제목은 ‘공공기관 에너지 절약 협조’이고 공문내용을 보면 ‘에너지 10%절약은 차질 없이 달성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할 것’을 요청하고 있어 공문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며 여전히 대다수의 학생들과 교사들이 수업시간에 찌는 더위와 씨름을 하고 있다.
2) 서울특별시교육청(2007), 외국의 생활규정 들여다 보기
3) 서울특별시교육청(2007), 위의 책
4) 전교조(2000), 학교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p7, p31

서울시흥중교사. 전국사회교사모임 회장. 학교가 학생이나 교사에게 행복한 곳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실현하고자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는 사회교사다. 100억 규모 교육연구재단을 만들겠다는 야무진 꿈도 함께 가지고 있다.
<주제가 있는 사회교실>(돌베개,2004), <사회선생님이 뽑은 우리사회를 움직인 판결>(휴머니스트, 2007) 공동저자. <공정무역 왜 필요할까>(내인생의 책,2010) 공역 출간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