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 '희망의 버스' 참가자들이 지난달 9일 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로 가려다 차로를 완전 봉쇄한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3시간 넘게 대치하는 가운데 10일 경찰이 물대포를 쏘며 진압에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뭐가 이렇게 어려운 문제인지 모르겠다.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고 있는 김진숙씨 얼굴 한번 보겠다는 건데. 그게 이렇게 국가 공권력을 총 동원해 부산 영도구 전체를 마비시켜가며 막아야 하는 일인지 정말 모르겠다.

왜 공권력이 한진중 경비부대처럼 행동하나

희망버스 기획단은 2차 때도 그렇고, 3차 때도 그렇고 한진중공업 담장을 넘을 계획이 없다고 거듭 밝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1차 때와 달리 한진중공업 노조가 파업을 끝냈다. 이 때문에 시민들은 노조 사무실을 방문할 이유도 없어졌다. 그런데도 경찰은 무조건 한진중공업 근처에 오는 것조차도 안된댄다. 왜 경찰이 한진중공업 경비부대처럼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경찰은 과잉행동을 하고 있다. 불법행동이 명백히 예상될 때에만 경찰은 집회를 금지해야 한다. 그런데 경찰은 무조건 희망버스 집회를 금지한다. 행진도 안되고, 모이는 것도 안되고, 김진숙씨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고 가는 것조차도 안된다. 헌법21조는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경찰은 사실상 집시법을 허가제처럼 운용하고 있다. 수십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해야 하는 공권력의 남용이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자주 일어나도 되는 걸까.

경찰 무리한 작전으로 부산 시민 큰 피해

경찰 입장에서 생각해보았다. 1차 때 분명 담을 넘었던 사람들이니 이번에도 담을 넘을지 모른다고. 그래서 막아야 한다고. 이런 생각을 할 법도 하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검거하면 될 일 아닌가. 같은 범죄를 반복한다면 주동자를 신속히 구속하면 될 일 아닌가. 왜 한진중공업 조선소 인근 수 킬로미터 전방에까지 시민들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하는가.

노동자들은 엄연히 노동조합 사무실을 출입할 권한이 있었는데 회사가 용역들을 대동해 이를 막았다. 1차 희망버스 때 시민들이 엄연히 담을 넘을 수 밖에 없는 명백한 사유가 존재했던 셈이다. 게다가 국가 중요 시설에 대한 훼손도 없었다. 시민들에게 건조물 침입죄를 물을 수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공권력이 총 동원되어 이렇게까지 시민들을 잡도리 해야 할만한 큰 중죄는 아니라는 말이다.

경찰의 무리한 작전으로 부산 영도구 주민들의 교통 피해는 막심하다. 주민들은 희망버스 시위가 있는 날이면 버스 노선이 완전히 끊긴다. 수 킬로미터를 걸어들어가야 한다. 주민들과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대화를 해봤다면 경찰이 이런 작전을 펴서는 안된다. 차벽을 세워놓고 시위대를 계속 도로에 묶어 놓으니까 교통체증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 경찰이 교통불편을 조장해 시민들이 희망버스를 비난하도록 유도하는 건 아니길 바란다.

서울경찰청의 유연한 변화 참조해야

부산경찰청은 최근 변화하는 서울경찰청의 집회 대응 방식을 참조해보았으면 좋겠다. 서울경찰청은 불법 거리 행진이라 하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해 도심에서의 교통체증을 획기적으로 막은 적 있다. 반값등록금과 같은 사회적 이슈에 유연하게 대처하자는 내부 반성이 터져나온 뒤에 벌어진 변화였다.

6월 17일 서울 도심에서 반값 등록금 집회가 열린 뒤 학생들은 도심으로 불법 거리행진을 벌였다. 을지로와 명동, 남대문을 지나 서울의 핵심인 서울시청까지 학생들은 불법으로 차도를 점거해 거리 시위를 벌였다. 비록 경찰이 거리행진 허가를 내주지 않아 벌어진 불법시위였지만 이날 경찰은 무조건 막으려하기보다 중앙선에 질서유지선을 친 뒤 학생들이 빨리빨리 행진해 가도록 유도했다.

결과는? 학생들은 어떤 구역이든 십여분 내에 모두 통과했고 도심은 언제 시위가 있었냐는 듯 금새 평온을 되찾았다. 학생들도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고, 시민들도 교통체증을 겪지 않아 좋았고, 경찰도 일찍 퇴근할 수 있어 좋았다. 서로에게 좋았다.

부산경찰청에도 이런 유연한 대처를 권한다. 희망버스 시민들에게도 영도구 주민에게도 경찰에게도, 김진숙씨를 비롯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게도 모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만약 희망버스 시민들이 약속을 어긴다면? 이들은 도덕적 비난을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일 것이다.

우익폭력은 그 사회의 관용을 먹고 자란다

▲ 지난달 30일 오후 전국에서 모인 '3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부산역 광장에 모여 문화제를 가진 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진중공업으로 삼삼오오 이동하는 가운데 희망버스 행사를 반대하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영도로 향하는 시내버스를 세운 뒤 탑승객을 끌어내리고 있다. ⓒ 연합뉴스
3차 희망버스를 탄 시민들은 이번에도 김진숙씨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버이연합과 같은 과격한 우익단체가 함께 행동에 나섰다. 이들이 영도구에서 공권력을 자처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공권력이 제 기능을 못하니까 자신들이 나서야 한다’는 황당한 논리였다. 이들은 희망버스 참가자로 보이는 시민들을 폭행하고 마치 경찰처럼 시민들을 상대로 신분증 검사를 했다.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온갖 욕설과 폭력이 난무했다.

언론은 마치 이런 우익단체와 희망버스 시민들의 충돌을 기계적으로 ‘민민갈등’처럼 보도했다. 이건 잘못된 프레임이다. 평화적으로 시위를 벌인 시민들에 대한 우익테러에 가깝다. 언론이 제대로 프레임을 설정하지 못하면 문제는 곪는다. 언젠가는 고름이 터져 나온다. 우리 사회는 병든다.

어버이연합은 부산 영도구의 시민들이 아니다. 영도구 주민의 의견을 순수하게 담아낸 영도주민자치회 등 일부 영도구 시민의 항의도 있었지만 극소수에 그쳤다. 이 때문에 이날 현장에서 벌어진 충돌은 단순한 민민갈등이 아니라 언론이 혹독하게 비판해줘야 할 우익폭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존재해서는 안될 폭력이다.

우익들의 폭력은 그 사회의 관용을 먹고 자란다. 언론은 이런 우익 폭력에 조금의 관용도 보이지 않고 냉엄하게 꾸짖어주어야 한다.

경찰, 스스로 권위 무너뜨린다

공권력도 마찬가지다. 공권력을 자처하며 시민들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집단은 가차 없이 진압해야 한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경찰은 이날 사실상 어버이연합과 한편처럼 움직였다. 이들의 불법행위를 보고서도 한 차례도 해산명령을 하지 않았다.

▲ 지난달 30일 3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부산 영도다리 앞에서 경찰의 봉쇄작전에 막히자 인도에서 집회를 갖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이렇게 이중잣대를 들이대면 시민들은 공권력에 신뢰를 보내기 어렵다. 경찰이 공권력의 권위를 스스로 허물어뜨리는 과오를 더 이상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곧 4차 희망의 버스 행사가 열린다. 그전에 한진중공업 해고 문제가 잘 해결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이런 사회적 충돌은 또 반복될 수 밖에 없다. 경찰은 변해야 한다. 평화시위가 이렇게 탄압받는 나라는 OECD 국가중 우리가 유일할 거다.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역사의 시계가 굴러가고 있다.

현재 한겨레 방송부문 뉴스팀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다.
영상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함께 들고 현장을 누비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앞선 멀티형 기자가 돼려고 노력중이다.

우리 사회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사명을 놓는 그 순간, 기자가 아닌 단순 직장인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 그저 그런 기자가 되느니 문제적 기자가 되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하고 살기도 한다. 한겨레와 한겨레 독자들을 무지 사랑한다.

개인 블로그 http://blog.hani.co.kr/catalu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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