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선민 칼럼] 올해 6월 보건복지부가 청소년을 타깃으로 한 금연광고 시리즈를 선보였다. 광고에서 ‘남녀’ 청소년들은 토론왕, 얼리어댑터, 뷰투버(뷰티 유튜버), ‘딸 바보’ 아버지의 딸 등으로 나와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예상대로, 토론왕과 얼리어댑터는 남학생의 몫이고, 여학생들에게 남은 정체성이 부여된다. 여성의 화장에 대한 불편하고 복잡한 시선(‘화장할 시간에 책 한 줄 더 봐라’는 고전적 비난과 화장하지 않은 성인 여성을 게으르거나 ‘여성’이길 ‘포기’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분위기)과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여성을 설명하는 방식(‘딸바보’ 아버지의 딸)은 ‘토론왕’ ‘얼리어댑터’ 남성과 여러모로 대비된다. 청소년의 설정은 다양해졌을지 모르지만 ‘남성 토론왕, 여성 뷰튜버’라는 낡은 성별 설정은 10‧20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열광하는 오늘날까지도 바뀌지 않고 있다. 보수성향의 언론에서조차 지적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안타깝게도 또래 청소년 설득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세상사에 관심 많은 남성과 꾸미기에 몰두하는 여성’이라는 광고의 성별 구도만이 아니다. 여고생 뷰투버가 등장하는 광고의 내러티브 또한 ‘공익’광고가 지향하는 ‘공공의 이익’이 무엇인지 묻게 만든다. 여고생이 학교에서 화장을 시연하고, 유튜브 라이브방송을 하는 상황이 나온다. 라이브방송에서 채팅 참여자는 여고생 뷰투버를 향해 아무렇지 않게 “근데 담배 피울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그러자 여고생은 “(잠시 숨을 고르고) 아니요. 저는 담배는 피지 않습니다”라 답한다. 광고는 “담배는 노답. 나는 노담”으로 산뜻하게 끝을 맺는다. 이 광고에는 다른 시리즈에는 없는 나름의 반전과 극적 요소가 있다. ‘담배를 피울 것 같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는 여성’이라는.

광고 내러티브의 중요한 축인 ‘담배 피울 것 같다’는 표현은 성별 중립적인 표현이 아니다. 여성의 흡연이 금기시된 사회에서 흡연도 문제지만, ‘담배 피울 것 같다’는 말은 그 자체가 대상에 대한 부정적 진단과 평가를 담고 있다. 담배를 피우든 안 피우든, 그 말을 듣는 대상은 이미 문제가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뷰투버 광고에서 ‘담배 피울 것 같은’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유는 아마 광고 속 인물이 화장하는 10대 여성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광고는 뷰투버로 다양하고 평범한 청소년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는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화장하는” 10대 여성은 문제가 있다는 (기성세대의) ‘폭력적인’ 시선을 따라갈 뿐이다(담배 피울 것 같아요). 그리고 여고생 또한 이 논리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은 채(담배 피울 것 같은 게 무슨 얘기죠? 라고 묻지 않는다), “아니요. 담배를 피지 않는다”며 그 논리 속에 갇히고 만다. 애초 이 공익광고가 구축한 세계에서 10대 여성은 토론왕도 될 수 없고, 뷰튜버로도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다.

'담배 피울 것 같은’ 여성들과 담배를 피우는 여성들을 향한 불편한 시선은 길거리 담배연기만큼 흔하다. ‘GIRLS CAN DO ANYTHING’이라는 패션 브랜드 슬로건이 적힌 휴대폰 케이스를 들고 셀피를 찍은 ‘성인’ 여성 연예인은 <‘GIRLS CAN DO ANYTHING’…손나은, 한 장의 사진이 빚은 페미니스트·담배>(한국경제, 2018.2.13) <‘페미’ 논란에 삭제된 손나은 SNS…사실은 담배 때문?>(KBS) <손나은 논란, 이번엔 담배 “뉴욕 스태프 것” 해명>(enews24) 등의 ‘일베’ 논란급의 ‘페미니스트’ 논란과 ‘담배’ 논란을 겪었다. 일부 남성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페미니즘은 보편성을 띤 사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논란’으로 치부되고, 남성의 전유물이자 허락받지 못한 대상인 담배와 만나 그 사상의 불온성은 더욱 커진다. 여성 연예인이 페미니스트인지, 담배를 피우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기사는 어차피 미성년, 성년 여성 연예인에게 일종의 사상검증을 강요하며(이미 정답은 정해져 있다), 페미니즘도, 기사 속에서 페미니즘의 친구로 소환되는 담배도 멀리하라는 경고와 단속을 하는 것이니까.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 연예인을 향해 냄새, 재떨이, 라이터 등 각종 담배 드립이 그들만의 웃음 버튼으로 작동하는 사회이기에 <“담배에 타투까지” 한소희, ‘부부의 세계’ 흥행→‘반전 과거’ 재조명...>(헤럴드POP, 2020.4.8.)류의 기사가 생산되고,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은 이런 기사에 의해 확산‧강화된다.

‘담배 피울 것 같지만 피우지 않는 여고생’은 ‘노담’(NO 담배)을 자랑스러워하며 광고는 훈훈하게 끝이 난다. 그렇다면 담배를 피우는 10대 여성의 실사판은 어떨까.

“A씨는 지난해 4월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 골목길에서 B(18)양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고 “그러다 기형아 낳는다, 당장 담배 끄라”며 훈계했다. 이에 B양이 따지자 A씨는 “여자가 어디서 담배를 피우냐”는 욕설과 함께 B양의 머리, 가슴 등을 폭행해 재판에 넘겨졌다” (“여자가 어디서 담배를..” 여학생 폭행한 70대 '벌금 70만원, 연합뉴스, 2020.7.7.)

* 이선민 언론인권센터 미디어이용자권익본부장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868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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