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벌을 둘러싼 논쟁은 수십 년 째 제자리다. 학교의 위기는 깊어가고 위기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 학교에서의 생활지도는 최근까지도 윗사람에 대한 공경, 아랫사람에 대한 자애 등 전통적인 윤리규범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고 사랑의 매는 이를 보조하는 수단으로써 일정부분 허용되어 왔다. 우리사회가, 특히 학교가 의존했던 전통적인 윤리규범은 이미 사라지고 있다. 교육적 처방과 폭력이라는 양날의 칼 ‘체벌의 가능성’이 간신히 유지해 오던 학교 규범은 ‘체벌의 가능성’을 제거하자 혼돈의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전통적인 윤리규범이 더 이상 작동되지 않는다면 현재 사회에 맞는 합리적인 제도가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이제 학교 위기에 대한 논의의 핵심은 그 합리적인 제도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로 이동해야 한다.

학교 위기의 현실 진단과 대안 모색을 위한 현직 교사의 제언을 총 5회에 걸쳐 연재한다.

사토 마나부 교수1)는 그의 강연에서 현재 일본이나 우리나라 교사들이 처한 상황을 ‘저글링 묘기를 하는 교사’로 묘사한 적이 있다. 교육 정책 입안자들은 선진국에서 좋다고 하는 정책(저글링 공)을 가져와 교사에게 이것도 돌려야 한다고 던져 준다. 그것이 좋은 정책이라는 것을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교사가 돌리고 있던 저글링 공을 빼주지는 않으면서 계속 공을 더 던져주기만 하는 정책입안자들에게 교사들은 공을 제대로 돌릴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라고 불만을 토로한다. 이제 더 이상 우린 감당하기 힘들다고 호소하는 교사들을 정책담당자들은 교육에 필요한 정책을 거부하는 교육 마인드가 부족한 사람으로 취급하며 비난한다.

결국 저글링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제반 여건은 마련되지 않은 채 저글링 공을 떨어뜨릴 경우 교육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난이 교사가 감당해야 하는 몫으로 떨어진다. 정책입안자는 개혁을 거부하는 교사를 비난하고 교사들은 정책 입안자를 비난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향한다.

체벌금지 또한 과거부터 그래왔듯이 위로부터 지시되었다.
목적은 좋지만 학교에 꽂히는 다른 정책이 그러했듯이
그것을 이루기 위한 준비와 실질적 투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해와 투입 없이 빨리 핀란드가 되라고 다그쳤다.
보수성향의 교육감와 진보적 교육감의 차이가 무엇인가
결국 행태는 같고 원하는 것만 달라진 것이 아닌가 교사들은 생각하게 되었다.
교사들은 그 행태가 못마땅해 입이 나와 있었지만
인권강사는 교사들이 인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교사들이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2)

체벌금지가 자의적 체벌행사를 통해 일어날 수 있었던 인권침해를 일시에 중단시키는 효과는 있었다. 그러나 이미 체벌이 과거와 달리 많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 그리고 교사에 의한 체벌 이외에 학생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가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심각한 형태로 접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균형 있게 대응할 수 있는 정책이 적절하게 따라주지 못했다. 구성원간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교한 정책집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반발이 커지고 학교에서 일어나는 체벌 이외의 인권침해와 관련하여 오히려 ‘체벌금지정책’자체가 원인으로 지목받는 사태까지 일어나고 있다.

▲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연합뉴스
실제로 학교에서 수업방해 행위 등을 하는 소수 학생들에게 ‘체벌금지’의 메시지는 ‘자신이 어떻게 하든 선생님이 나를 혼낼 수 없다’라는 식으로 해석되어 문제행동을 강화시켜 수업자체가 더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2000년대 초 자신의 교실을 공개하며 학교가 겪고 있는 위기를 사회적으로 풀어보고자 했던 교사들은 교실붕괴를 교사 개인의 자질문제로 환원하는 분위기 속에서 혼자 혹은 동료교사들과의 속앓이로 품어 버렸던 문제들을 다시 표면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교실위기의 원인을 교사 개인의 자질이 아닌 체벌금지정책으로 돌리고 있는 분위기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2000년 초부터 학교의 위기 문제는 심각한 상태였으며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 학교가 겪는 위기의 원인을 체벌금지정책으로 환원시킬 수 없다. 말하자면 체벌을 다시 허용한다고 해서 학교의 위기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스스로 주체가 되어 근본적인 해결책들을 고민하고 구체적인 대안들을 하나 하나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도록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체벌금지정책을 실시한 교육감에게 돌리고 있다. 기존에 학교의 위기를 ‘교사의 자질’문제로 환원했던 사고습관과 다를 게 없다.

교육감만 바뀌면, 체벌만 허용하면 문제가 다 해결되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교사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교사들은 그동안 위로부터의 명령만 받는 힘없는 수동적 존재라는 체념을 안고 살아왔다. 여기에 익숙해진 교사들은 위에 누군가 교육의 문제를 일시에 풀어줄 영웅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한다.

학교의 신뢰를 떨어뜨린 많은 원인들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촌지’, ‘교사의 폭력’ 문제였다. 최근에 소수의 폭력적인 학생이 교실수업을 망치고 다른 학생이나 교사의 인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전체 학교에 미치는 악영향이 너무도 크듯이, 소수 촌지 교사와 폭력교사가 학교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려 교육을 망치는 데 미치는 악영향 역시 파괴적이다. 전교조 출범 당시 교사들이 주도가 되어 촌지반대운동을 벌인 것은 학부모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다.

교육 현장을 모르는 교육행정의 책임자가 ‘체벌금지’라는 명령을 내리기 전에 교육 현장을 잘 아는 교사라는 교육주체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안들을 함께 고민하고 정책을 요구할 수는 없었을까. 이제라도 교사들은 체벌금지냐 허용이냐의 논의 수준을 넘어서서 학교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들을 모색하고 요구해야 한다. 2000년대 초처럼 언론이나 정치권이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위기의 원인을 재단하도록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 이럴 경우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고통은 지속될 것이다. 교사들은 교사들이 말할 수 있는 여지가 주어진 이 틈을 확장시켜 교육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논의의 광장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1) 도쿄대 교수로『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등을 지었고 배움의 공동체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2) 장경주, 교육감님에게 보내는 전국사회교사모임 제안사항, 2011.2

서울시흥중교사. 전국사회교사모임 회장. 학교가 학생이나 교사에게 행복한 곳이 될 수 있다는 '꿈'을 실현하고자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는 사회교사다. 100억 규모 교육연구재단을 만들겠다는 야무진 꿈도 함께 가지고 있다.
<주제가 있는 사회교실>(돌베개,2004), <사회선생님이 뽑은 우리사회를 움직인 판결>(휴머니스트, 2007) 공동저자. <공정무역 왜 필요할까>(내인생의 책,2010) 공역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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