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가 한국갤럽 회장으로 있던 지난 97년 대선 때 여론조사 결과를 주한 미 대사에게 전달한 정황이 드러났다. KBS는 지난 5일 저녁 메인뉴스인 '뉴스9'에서 이를 단독보도하면서 당시는 여론조사 공표금지기간이어서 사규는 물론 실정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최시중씨, 97년 12월 12일 주한 미 대사에게 정보 전달

▲ 3월5일 KBS '뉴스9'
KBS는 15대 대선 직전인 지난 97년 12월 15일 주한 미 대사관이 미 국무부로 보낸 3급 비밀문서(최근 비밀해제)를 제시하며 "당시 주한 미 대사이던 보스워스가 대선 일주일 전인 97년 12월12일 당시 한국갤럽 회장이던 최시중씨 등과 오찬 회동을 하면서 나눈 얘기가 상세하게 기재돼 있다"고 설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보스워스 대사는 직접 작성한 이 보고서에 최시중 갤럽 회장이 회동 이틀 전인 12월 10일 실시한 한국의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를 자신에게 알려줬다고 기록했다.

당시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10% 가량의 큰 차이로 이기고 있다는 내용으로 최시중씨는 이회창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가 김대중 후보의 선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까지 내놓은 것으로 적혀있다.

KBS는 "지난 97년 대선 때는 선거일 22일 전인 11월 26일부터 선거일인 12월 18일까지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기간이었는데,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자는 금지기간인 12월 12일 여론조사 결과를 외부에 유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직선거법에는 여론조사의 공표 금지 기간에 그 경위와 결과를 공표하거나 인용·보도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4백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해 최시중 내정자는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주한 외교사절들과는 종종 만나서 한국의 전반적인 정치 상황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고 밝혔다"고 KBS는 전했다.

'면피'만 하는 MBC·SBS…검증보도 안하나, 못하나

이날 KBS의 보도는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에 대한 첫 검증보도라는 점에서 반갑지만 늦은 감도 없지 않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가 언론계를 발칵 뒤집어놓았지만 KBS는 최씨 내정 이후 지난 일주일 동안 방송의 독립성 침해에 대한 우려를 단신 처리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 3월5일 MBC '뉴스데스크'
MBC의 경우 지난달 28일 '뉴스데스크' 별도 꼭지로 최시중 내정자의 전문성 등 자격 문제를 지적하고 방송통신위원회 구성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이후 이렇다 할 검증 보도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최씨 내정이 공식 발표된 지난 2일 <인선배경은?>과 3일 <좁혀진 인사공방>에서 다른 인사들과 함께 논란을 다뤘다. MBC는 지난 5일에는 언론단체들이 최시중 내정자에 대한 임명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다고 단신으로 보도했다.

SBS 역시 지난 2일 <청문회 험난 예고>와 4일 <"지명철회" 요구>에서 언론단체의 반발과 함께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공방을 전하고 있으나 역시 논란 수준에 그치고 있다. KBS와 MBC가 단신으로라도 언론단체의 기자회견을 보도한 지난달 28일과 지난 5일에도 SBS는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방송의 독립성 훼손을 우려하는 언론·시민단체는 오늘도 언론노동자 비상행동 돌입을 선언하는 등 여론의 관심을 호소하고 있지만 정작 방송사 메인뉴스는 거리두기와 소극적 보도 태도로 눈총을 사고 있는 모습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