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하승수 칼럼]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끝없이 무력감을 느끼는 과정이다.

아무리 문제를 제기해도,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은 듣지 않는다. 변화는 없거나 너무 더디다. 촛불이라도 들어야 기득권자들이 긴장을 하지만, 그 긴장감이 오래 가는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매번 촛불을 들 수도 없는 일이고, 코로나19 때문에 이제는 모이는 것도 쉽지 않다.

그 어떤 문제가 드러나도, ‘쏟아지는 비만 피하면’ 그만이다. 국회의원들이 채용 비리에 연루되거나 각종 부정, 예산낭비를 저지른 사실이 보도가 되어도 그때뿐이다. 시간이 좀 지나면, 그 국회의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들고 활보한다.

부동산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아침에 눈떠서 집값이 올랐다는 뉴스를 보는 것이 익숙해진 만큼, 무력감도 크다. 이번 정부 들어서서도 21번의 부동산대책을 내놓았지만, 소용이 없다. 대통령이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고 약속해도 믿을 수가 없다. ‘또 안 될 것’이라는 체념이 경험 법칙처럼 자리잡고 있다. 부동산에서 창출되는 엄청난 규모의 지대를 추구하는 욕망의 대열에 합류할 수 없거나, 합류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분노와 박탈감을 느낄 뿐이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이다. 코로나19가 진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데, 살기가 힘든 사람들은 너무 많아지고 있다. 정부는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다지만, 그것이 정말 요긴하게 쓰이는지 의문이다. 한국판 뉴딜을 한다지만, 그것이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이 와중에도 토건사업을 공약하고 다니는 정치인들이 있는가 하면, 국회에서 3차 추경을 심사할 때에 엉뚱한 사업을 끼워 넣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사진 출처 환경운동연합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이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코로나19와도 관련이 있는 기후위기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코로나19 관련 보도에 가려서 잘 드러나고 있지 못하지만, 올해 5월 하와이 마우나로아 산에서 측정된 이산화탄소 농도는 417.1ppm에 달했다. 작년 5월의 414.7ppm보다 2.4ppm올랐다. 과학자들이 마지노선이라는 450ppm에 도달할 날이 멀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인류의 생존이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는 기후위기에 대해 느끼는 무력감은 부동산, 코로나19로 인한 것보다 크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만 느끼는 무력감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무력감이다. 내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다고 해서, 내가 사는 나라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축적되어가는 온실가스는 바이러스와는 달리 백신도, 치료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년 10~12월 갤럽에서 전 세계 40개국의 시민들을 상대로 조사했을 때, ‘기후변화를 막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응답이 46%에 달했다. 이미 지구 시민 중 절반 정도는 너무 늦었다는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40개국 평균보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 그리고 무력감의 정도가 높았다. 대한민국 시민 중 93%가 ‘지구 온난화는 인류에게 심각한 위협이다’에 동의했고, ‘기후변화를 막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주장에도 66%가 동의했다.

그렇다면 이 무력감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고, 느끼는 정도도 다르니 누구에게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다만,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 중에 무력감의 바다에서 일어나 ‘뭐라도 해보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모여서 얘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국에서는 올해부터 무작위로 뽑힌 108명의 시민들이 ‘기후위기 시민의회(Climate Assembly UK)’를 구성해서 공부도 하고 토론도 하고 있다. 영국 국가차원에서 진행하는 일이다.

그리고 얼마 전인 6월에 중간보고서를 냈다. 시민들이 토론한 결과, 정부가 코로나19로부터 경제회복을 하려고 할 때에 반드시 온실가스 배출 제로(넷제로, net zero)를 달성할 수 있도록 계획해야 한다는 것에 42%가 강하게 동의했고, 37%가 동의했다. 즉 79%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극복하는 과정에 온실가스 감축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이 학습하고 토론한 결과이다. 또한 정부, 기업 등은 넷제로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수 있도록 촉진해야 한다는 것에도 54%가 강하게 동의했고, 39%가 동의했다.

그래도 같이 학습하고 같이 토의한 결과,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가닥은 잡힌 셈이다. 비록 108명이 내린 결론이지만, 영국 시민 중에 무작위 추출로 뽑힌 사람들이니, 전체 영국 시민들도 동일한 정보를 얻고 토론하면 비슷한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시민의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래도 무기력의 바닥에서 조금은 일어설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 본다. 혼자 생각하면,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지만, 그래도 함께 고민하면 방향이라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시도를 해 봐야 하지 않을까? 부동산 시민의회도 하고, 코로나19 시민의회, 기후위기 시민의회를 대한민국에서도 해 봐야 하지 않을까?정치인, 전문가, 관료들이 못 푼 문제들을 이제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풀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가능하다면, 무력감의 바다에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 본다.

이런 직접‧숙의민주주의 시도를 대한민국에서도 해 보자. ‘시민의회 법’이라도 만들려는 시도를 해 보자. 그것이 지금처럼 사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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