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최시중씨가 내정되면서 언론계가 요동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고문중의 고문, 정신적 멘토(mentor·정신적 후견인)로 불리는 '대통령의 사람'인 최씨가 가뜩이나 대통령직속 기구로 설치돼 정치적 독립성 훼손이 우려되는 방통위 '수장'으로 내정됐으니 언론계의 반대는 불보듯 뻔한 일이다.

우선 방송통신위원회가 무엇인가.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로 나눠졌던 방송·통신 관련 기능을 통합해 지난 2월 29일 출범한 신생 기구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에는 그 목적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및 공익성을 높이고 방송·통신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며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함으로써 국민의 권익보호와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 최시중 방통위원장 내정자
최씨의 '자격' 문제가 불거지는 이유는 바로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한다"는 대목에 있다.

최씨는 동아일보 정치부장, 논설위원 출신으로 94년부터 여론조사회사인 한국갤럽 회장을 지냈다. 고향도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경북 포항이며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 부의장과 절친한 사이로 통한다. 대선 시기와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각각 상임고문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고, 이 대통령의 정치자문그룹 '6인회'의 멤버로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정신적 후견인으로 불릴 만큼 '가까운' 사이다.

최씨는 자신의 방통위원장 내정에 대해 방송의 독립성 침해라는 지적이 쏟아지자 지난 2일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생명을 걸 정도로 노력한 것은 사실이나 그 때문에 위원회 운영을 편파적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들은 대통령의 측근이고 동지적 의식이 중요하다"며 "저 역시 대통령과 호흡을 함께 하는 많은 동지적 멤버의 한 사람으로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사람'으로 오랜 시간 손발과 머리를 맞춰온 최측근이 대통령의 의사와 무관하게 '정치적으로' 소신껏 방통위의 독립적 운영을 해낼 수 있다고 순진하게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최씨 스스로도 대통령과의 '동지적 의식'이 중요하다고 말했으니 방송통신의 수많은 정책들이 '정치적 교감'을 통해 요리될 가능성만 드러낸 꼴이다.

하지만 앞 뒤 따질 것 없이, 과거 자신들이 어떤 말을 내뱉었는지 돌아볼 생각 없이 "최씨가 방송 독립을 지켜낼 적임자"라고 주장하는 곳이 있다. 바로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지난 4일 국회 브리핑에서 이렇게 밝혔다.

"최 내정자와 대통령의 친소관계를 야당이 트집잡고 있는데 최 내정자야말로 방송의 독립성을 지켜낼 적임자다. 오히려 최 내정자가 대통령과 매우 가깝기에 직언을 할 수 있다."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고 발뺌할 수 없는 한나라당은 오히려 이를 '직언할 수 있는 사이'로 애둘러 포장하더니 그것을 방송의 독립성으로 오도하고 나선 것이다.

▲ 2003년 3월 25일 '서동구 사장 임명 반대'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 비상총회 ⓒKBS본부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5년 전으로 시계 바늘을 돌려보자.

5년 전 언론계에는 이번 '최시중 사태'와 유사한 파문이 벌어져 한바탕 소용돌이를 겪어야 했다. 바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자신의 언론고문을 지냈던 서동구 전 언론재단 부이사장(현 스카이라이프 사장)을 KBS 사장에 내정하면서 방송의 독립성 확보 투쟁이 정점에 달한 시기였다.

2003년 당시 KBS 노조와 언론시민단체들이 서씨를 반대한 이유는 바로 '정치적 독립성' 때문이었다.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 없이 정치권에 의해 임의로 내정된 것도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무엇보다 대선 기간에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의 언론특보와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부대변인으로 활동했던 전력이 문제가 됐다. '자질'에 앞서 '절차'와 '자격'이 합당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서동구 임명제청 반대를 위한 철야농성'에 돌입하며 격렬한 반대 투쟁에 나섰고 시민사회단체들도 서씨의 용퇴와 청와대의 결단을 촉구하며 반발했지만 노 대통령은 서씨를 사장으로 임명했다. KBS 신임 사장으로 임명된 서씨는 2003년 3월 28일, 임명 사흘만에 노조원들의 출근 저지를 뚫고 강제 진입을 시도하는 등 파문을 키웠으나 결국 9일만에 낙마했다. 서씨의 사퇴에 대해서는 노조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의 거센 반발과 악화된 여론으로 느꼈을 각종 부담과 함께 "노 대통령이 서씨에게 방송을 맡아 달라고 했다"는 조선일보 기사(2003년 4월 2일자)가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그렇다면 2003년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공영방송을 어용방송으로 만들기 위한 폭거다. 밀실에서 제청된 측근인사의 임명은 대통령의 언론관은 물론 공영방송의 공정성마저 의심케 한다. 우리 당은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을 지키기 위해 모든 양심세력과 연대, 당력을 모아 강력 투쟁할 것이다." (한나라당 박종희 대변인 2003년 3월 25일)

"서 사장은 전문성과 중립성, 도덕성 등 공직인사 3대 요소에 모두 중대하자가 있는 무자격.무자질이다. 측근 인사를 밀실에서 뽑아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하려는 속내를 모를 국민은 아무도 없다." (한나라당 박종희 대변인 2003년 3월 26일)

"서 사장 선임 배경으로 현 정권 실세의 개입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방송을 정권의 홍위병으로 삼아 포퓰리즘 정치를 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반민주적, 시대착오적 폭거다. 국민이 주인인 공영방송사 사장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과 코드가 맞고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추고 있으면서 방송중립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 2003년 3월 26일)

야당 시절에는 서씨의 KBS 사장 임명을 문제 삼으며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과 코드가 맞고 방송중립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입바른 소리를 하더니 지금 여당의 위치로 바뀌자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최씨의 방통위원장 내정을 감싸고 도는 형국이다.

5년 전 한나라당이 스스로 말한 것처럼 "측근 인사의 임명은 대통령의 언론관은 물론 방송의 공정성마저 의심"하게 만들 뿐이고, "측근 인사를 뽑아 방송과 통신을 좌지우지하려는 속내를 모를 국민"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무색해진다.

▲ 2003년 3월 28일 강제진입을 시도한 서동구 당시 KBS 사장의 차 위로 김영삼 당시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장이 탑승해 저지하는 모습 ⓒKBS본부
2003년에서 다시 5년 전으로 더 되돌려보자.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10년 전인 지난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설 때도 DJ 홍보특보 출신인 황규환 전 스카이라이프 사장이 KBS 부사장으로 내정됐다가 역시 '정치적 독립성' 훼손을 이유로 무산된 사례가 있다.

98년 4월 10일 발간된 KBS 노보는 황씨의 부사장 내정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15대 대선 전에 국민회의에 입당해 DJ의 홍보특보로 일한 그가 부사장으로 오는 것은 정권 창출에 대한 논공행상으로 마땅히 거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황씨는 현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그가 부사장으로 올 경우 KBS의 정치적 독립이 저해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아무리 개혁적이고 뛰어난 방송 전문성을 갖춰다고 해도, 정치권에 들어가 정권 탄생에 기여하고 정권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은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지켜낼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원칙은 지난 수십년 동안 방송민주화 투쟁을 거치면서 '방송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핵심 개혁 과제다. 2008년 현재 방송통신 구조 개편과 그로 인해 줄줄이 이어질 방송계 인선을 앞두고 되새겨야 할 교훈이기도 하다.

5년 전 KBS 사장에서 낙마한 서동구씨, 그리고 10년 전 KBS 부사장으로 내정됐다가 무산된 황규환씨 사태를 떠올리면 이번 최시중씨의 방통위원장 임명이 어떻게 역사를 거스르고 있는지 확연해진다.

2003년 당시 '서동구 사장 반대 투쟁'을 벌였던 KBS의 한 PD는 2003년과 2008년을 비교하면서 "이대로 간다면 방통위와 KBS에 희망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명박 정권은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시중씨를 방통위원장으로 내정해 5년 전으로 논의를 다시 되돌리고 있다. 보수나 진보나 자기 사람을 심고 싶어하는 욕심은 끝이 없다. 그렇다고 잘못된 역사를 또다시 되풀이할 것인가. 당시 방송의 민주화와 정치적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것이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면 과거의 경험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렇다면 방송통신위원회도 KBS도 희망이 없다. 이번에 최시중씨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향후 KBS 사장도 정치적 독립성을 상실한 인물이 오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당시 입바른 소리를 하던 야당은 여당이 되어 안면몰수를 하고 있고,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며 '서동구 사장 임명'을 비판했던 보수 언론도 짐짓 모른 척을 하고 있다. 왜 아니겠는가. 신문법 폐지와 그로 인한 신문방송 겸영 허용을 염원하는 신문사들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계산부터 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최씨가 방송과 통신 업무를 관장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유리한지 뻔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2003년 4월 2일 '서동구 사장 반대'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 총회 ⓒKBS본부
언론노조와 언론연대 등 시민단체와 현업단체들은 곧 최씨의 방송통신위원장 임명금지 가처분 소송을 낼 예정이다. 방송법 1조에 명시된 '방송의 자유와 독립' 원칙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명시한 4조, 방송의 공적책임을 명시한 5조,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명시한 6조 등에 모두 부합하지 않는 부적격자라는 비판이다.

방통위 설치법 또한 운영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방송·정보통신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최씨가 방송과 정보통신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췄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지적이다. 결국 '자격'도 '자질'도 모두 논란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최시중씨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방송 개혁의 역사를 10년 전으로 후퇴시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면 그 피해와 부담이 결국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지 대답해 보길 바란다. 미디어의 정치적 독립과 공공성이 중요한 것은 바로 국민의 눈과 귀이기 때문이다. '국민을 섬긴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다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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