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재열 시사인 기자 ⓒ미디어스
풍경 하나. 리처드 기어가 방한했다. 사진전도 열었고 조계사도 찾았다. 그리고 기자들과도 만났다. 온갖 소소한 질문이 쏟아졌다. 그 질문을 묵묵히 받아내던 리처드 기어가 되물었다. “왜 나에게 이런 질문만 하느냐? 정치적인 질문을 하라”라고. 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같은 기자로서 부끄러웠다.

풍경 둘. 소셜테이너(사회참여 연예인) 관련 라디오 토론회에 나갔다. 반대편 패널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가 나왔다. 그는 소셜테이너들의 활동에 반대 입장이었다. 그리고 미국의 사례를 들었다. 미국 연예인들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문제에 대해서 제기하고 한 가지 문제에 집중한다는 것이었다.

풍경 셋. 소셜테이너 관련 대학생 토론회의 심사위원을 맡았다. 반대 입장인 학생들의 논리는 ‘비전문가가 여론을 선동할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 문제의 본질도 모르면서 당사자도 아닌 사람이 매스미디어에서 떠들면 문제를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소셜테이너를 선동가로 몰았다.

이 세 가지 풍경에서 ‘소셜테이너’ 논쟁에 담긴 사대주의가 읽히지 않는가? 외국 연예인들의 활동은 고귀한데 반해 우리 연예인의 활동은 선전선동이라는… 중국도 아닌데 티벳독립이라는 가장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리처드 기어에게 일언반구 질문도 못하는… 소셜테이너 논쟁은 경박의 극치다.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에 대하여 특정인이나 특정단체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지지 또는 반대하거나 유리 또는 불리하게 하는 자의 출연을 금할 수 있다”라는 MBC의 소셜테이너 출연금지 규정, 일명 김여진법에 항의해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는 MBC 앞에서 ‘삼보일퍽’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리고 많은 문화예술인들이이 규정에 항의해 MBC 출연 거부 선언에 동참했다. 소설가 공지영, 영화제작자 김조광수, 문화평론가 김규항,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 조국 서울대 교수, 음악평론가 김작가, 김광수경제연구소 선대인 부소장, 영화감독 여균동, 문화콘텐츠기획자 탁현민, 시사평론가 김용민, 작가 지승호, 제정임 세명대 교수 등이 그들이다.

소셜테이너 논쟁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서 ‘국산 연예인을 애용하자’라고 주장하고 싶다. 제발 국산품 애용하자. 지금 여기, 오늘 우리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우리 연예인의 목소리에 주목하자. 그들에게 보편타당한 문제에 대해서 무난한 방식으로 말하라는 것은, 하나마나한 얘기를 하나마나한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소리밖에 아니다.

외국 연예인들의 사회참여 활동과 비교하면서 반전이나 빈민구호 활동처럼 보편적인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주장은 괜찮다고 말한다. 그러나 반전 구호도 처음 등장할 당시에는 논쟁적인 구호였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 성자라고 칭찬하면서 그들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꾸자고 말하면 왜 빨갱이라고 비난하는 것인가?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왜 비전문가인 연예인이 떠드냐고 비판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이 안 떠드니까 이들이 떠드는 것이다. 이들이 떠들어서 사회적 이슈가 되면 전문가들이 떠들고, 정치적 이슈가 되면 정치인이 떠드니까, 먼저 떠드는 것이다.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에 마이크가 되는 그들은 막장으로 가는 우리 사회의 카나리아라고 할 수 있다.

왜 외국 연예인처럼 한 이슈에 집중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이슈가 너무 많은 나라라 그런 것이다. 김여진이 홍대 청소노동자들을 도와서 해고자들이 복귀되는 모습을 보고 여기저기서 도움 요청이 온다. 김여진은 그들을 뿌리치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기 위해 현장에 간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댄다, 티낸다’며 그녀를 손가락질 한다.

죄 없는 언론이 그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 언론이 그들의 소외된 목소리에 주목했다면 그들은 김여진에게까지 손을 내밀지 않았을 것이고, 김여진도 연기 연습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했을 것이다. 저널리즘이 잠든 그곳에서 김여진의 사회참여는 깨어났다. 언론이 비판해야 할 부분이 아니라 반성해야 할 지점이다.

소셜테이너도 국산품 애용하자. 외국 연예인의 활동도 지지하자. 하지만 그들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우리의 문제에 뛰어들어 만수산 드렁칡처럼 뒤엉켜서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우리 소셜테이너들을 지켜주자. 이들이 마음가는 대로 몸 가는 대로 편히 갈 수 있도록만 뒤를 받쳐주자.

소셜테이너 금지법이 화제가 될 무렵 트위터에 @tonightweflye라는 이용자가 이런 글을 올렸다.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라는 생각에 그대로 옮긴다.

“미안합니다 밥딜런 MBC출연정지 되셨습니다. 미안합니다 숀펜 미안합니다 브란젤리나 미안합니다 보노 미안합니다 리처드기어 미안합니다 수잔새런든 미안합니다 조지클루니 미안합니다 시네드오코너 미안합니다 오프라윈프리 지면상 담지 못한 지구촌 ‘정치적’ 연예인님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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