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SNS에서 논쟁과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나는 SNS에서 이루어지는 논쟁에 대해 회의적이다. SNS에서 이루어지는 논쟁을 보면 문제와 사건의 원인에 접근하기보다 폄하와 비방으로 난상토론이 되는 경우가 많다. 논쟁은 쟁점에서 벗어나 일방적인 찬양으로 끝나거나 일방적인 비방으로 끝난다.

한동안 이것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SNS에서 친구라고 해보았자 거기서 거기, 한 다리 건너면 친구의 친구로 연결되어 있었다. 친구 혹은 친구의 친구인 사람들이 비방과 비난의 주인공이거나 적대적 관계에 있는 두 인물이 되는 때가 있었다. SNS에 로그인하면 이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입에 칼을 물고 상대를 난도질하는 데 열중했다. 처음에는 문제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해 논쟁을 벌이다가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결국 사생활을 파헤치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이들의 토론은 알맹이 없는 싸움질로 번졌다. 싸움을 멈출 줄 모르고, 매번 비아냥과 험담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들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였다. 고민 끝에 선택했다. 결국 적대적 관계에 있는 두 사람 모두 친구 관계를 끊는 것으로 평화를 되찾았다.

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SNS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그저 그런 지식 배틀처럼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이만큼 알고 있어. 네가 이만큼 알고 있다고. 나도 이만큼은 알아. 나는 이만큼, 이~이만큼 알고 있어. 이런 유치한 배틀 방식은 유치원생 입씨름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입씨름을 보면 자랑이 허풍으로 이어졌다. 우리 집에 아이스크림 백 개 있다. 우리 집에는 아이스크림 천 개 있어. 아, 우리 집에는 아이스크림 만 개 있어. 자랑과 허풍으로 시작한 입씨름은 밑도 끝도 없이 인신공격으로 이어졌다. 너, 머리 겁나 커, 니네 엄마, 못생겼어, 뭐라고. 입씨름은 싸움으로 번지고, 코피가 터져야 끝났다.

SNS에서 벌어지는 논쟁도 마찬가지이다. 싸움으로 번지는 데에는 그들의 팬덤이 한 몫이 아니라 두 몫 했다. 주르르 엮여 있는 찬양자들이 말릴 생각은 하지 않고 잘한다, 잘한다, 부추긴 결과였다. 상대의 SNS를 엿보고 온 찬양자는 글을 복사해서 나르고, 글을 본 대상은 순화되었지만 정제되지 않은 많은 말을 쏟아냈다. 이 과정에서 사실과-진실까지는 아니더라도- 멀어지고 왜곡되는 경우가 많았다.

SNS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이면을 보면 편 가르기가 자리 잡고 있다. 물론 당사자들은 편을 가르려고 한 것이 아니며 의견을 개진하는 과정에서 뜻이 통하는 친구들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팔로우가 많고, 친구가 많은 사람일수록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친구가 많다고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페이스북을 하다 보니 대체로 페친이 되는 경우-추천인으로 뜨는 경우가 대부분- 같은 생각하는 사람들이거나 나에게 우호적인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내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 글을 쓰는 사람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친구가 되고 소통하게 된다. 이들 중에 팬덤을 이룰 정도로 많은 사람의 지지와 사랑을 받는 사람이 생긴다. 이들 중 많은 사람이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비난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이때 개인적 논쟁이 패싸움처럼 번지고, 싸움의 전개 과정은 진흙탕 싸움과 같아진다. 싸움의 끝은 정신적 황폐함을 견디지 못한 쪽이 사과하거나 그것도 되지 않으면 계정을 폐쇄, 삭제하고 사라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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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은 오독으로-아니면 필력이 부족한 경우- 벌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읽는 사람의 글에 대한 오해. 나는 아, 라는 의미로 썼는데 읽는 사람은 ‘어, 어? 어어!! 어어~~, 어라’로 해석하여 벌어지는 경우로 논쟁이 아닌 인신공격이 많았다. 필력이 부족한 나의 경우에는 이 두 가지 모두에 포함되었다. 필력이 부족하고, 곡해한다면 최악의 경우가 된다. 나는 최악의 상황에 속한다. 가끔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게 어려운 단어의 연속과 문장으로 이루어진 글을 보면 필력과 독해가 부족한 나는 무지를 자책하며 비탄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후배 중에 항상 책에 나오는 내용을, 문장을 인용하여 이야기하는 후배가 있었다. 그 후배에게 나는 네 이야기를 하라고, 네 이야기를 해, 하고 말했다. 후배는 프로이트, 라캉, 푸코 등을 자신의 이야기 속에 넣지 않으면 이야기하지 못했다. 대화는 항상 비약과 생략의 연속이며, 은유와 유추로 이어졌다. 단어와 단어 사이, 들숨과 날숨 사이를 유추하고 이해하느라 애썼다. 애써도 사이와 사이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고, 오해가 발생했다. 언성을 높이며 싸움을 하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SNS라는 세상은 내 안에 숨겨진 욕망이 분출되는 곳이다. SNS에서 내 세계를 구축하고, 타인과 소통하고 싶다면 내가 만든 세계가 온전한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 생각이, 내가 쓰는 언어가, 내가 쓰는 글이, 내 주변의 친구가 괜찮은지 수시로 되돌아보아야 한다. 내 세계가 온전하다면 그때 타인의 응접실에 들어가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눠도 된다.

김은희, 소설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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