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EBS <다큐프라임>은 지난 6월 8일부터 10일까지 3부작 <혼돈 시대의 중앙은행> 편을 방영했다. 왜 ‘중앙은행’이었을까?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마르코가 엄마를 찾아 삼만리 여행을 떠났던 곳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고대 경제학과 김진일 교수와 명지대 특임교수 박정호 교수가 찾았다.

이탈리아에 살던 마르코의 엄마가 돈을 벌기 위해 갔던 아르헨티나. 넓은 국토와 풍부한 자연 자원, 당시 유럽 사람들에게 아르헨티나는 뉴욕만큼 꿈의 땅이었다. 그러던 아르헨티나가 한 해 54%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물가 상승률을 기록하며 국가 부도 선언만 8차례나 한 위기의 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통화량 조절에 실패한 ‘중앙은행’이 있다.

중앙은행이 뭐길래?

EBS 다큐프라임 3부작 ‘혼돈시대의 중앙은행’ 편

중앙은행이 왜 중요한 것일까? 바로 물가, 그리고 그 물가를 조절할 수 있는 돈의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기 때문이다. 미연방 준비위원회가 만든 '금리 게임', 금리를 소수점 아래로 약간의 변화를 주기만 해도 실업률과 물가 상승률이 요동친다. 즉, 중앙은행이 어떤 금리 정책을 취하는가에 따라 한 나라의 경제가 좌지우지되는 것이다. 특히 이 시기 중앙은행의 역할이 다시금 주목되는 건 바로 글로벌 경제위기 때보다 심각하다는, 코로나19로 인한 세계 경제의 위기 때문이다.

평소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던 뉴욕 타임스퀘어가 유령 도시처럼 조용하다. 당연히 경기는 급격하게 냉각되었고, 실업률이 대공황 수준보다 심각하다. 미국만이 아니다. 강력한 도시 봉쇄 정책을 펼친 중국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하루 3, 4천 위안을 팔던 가게가 하루 몇백 위안의 장사를 하기도 쉽지 않다. 심리적 공포로 소비가 위축되고, 8천만 개에 달하던 법인 회사 중 10%에 달하는 8백만 개가 치명적인 위기에 빠졌다. 하나의 법인에 3만여 명의 사람들이 고용되었다 했을 때 1600~2000만 명의 실업자가 거리로 쏟아져 나올 판이다.

일본의 경우 47개 현이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장기간 경기 침체로 인한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진 일본. 엎친 데 덮친 격,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성장률이 마이너스 6%에 달했다. 가계 부채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임시직들에게 더욱 심각한 고용 충격을 안기며 불안한 가계를 흔든다. 학습지 교사와 같은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경우 가계 지출이 어려워질 때 제일 먼저 끊는 현실에, 수수료를 내는 고용의 특수한 형태로 인해 경제 위기를 고스란히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EBS 다큐프라임 3부작 ‘혼돈시대의 중앙은행’ 편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IMF 이후 가장 높아진 상황. 이런 불안감은 0.1%라는 역대 최저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초래했고,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 0.2%를 기록했다. 저성장 저물가의 길고 긴 터널이 예견되는 상황, 이에 한국은행은 앞서 기준 금리를 0.75%로, 다시 0.5%로 인하했다. 이렇게 기준 금리가 낮아진 상황에서 더이상 금리 인하를 통한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되자 국고채 매입 등 다양한 자산을 사들여 시중에 통화를 늘리는 '양적완화' 카드도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양적완화는 주요 각국의 주된 경제 정책이다. 역대 최저 이자율을 기록하고 있는 미국은 역사상 규모가 가장 큰 2조 2천억을 쏟아부으며 경기 부양의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있다. 또한 총량만 정해놓고 높은 금리를 받았던 환매조건부 채권(RP) 매입에 12조 이상을 쏟아부으며 경기회생을 노리고 있다. 일본의 경우 국채, 은행채, 주식까지 중앙은행이 나서서 매입하며 양적완화에 앞서고 있다.

그간 미국의 경우 기축 통화인 달러를 찍어내며 공격적으로 자국의 경기 침체에 대응해 왔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의 달러 정책은 달러 의존도가 높은 나라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고, 그 대표적인 국가가 앞서 살인적인 인플레에 시달리는 아르헨티나이다.

EBS 다큐프라임 3부작 ‘혼돈시대의 중앙은행’ 편

'빵 좀 사줄 수 있나요?’ 이제 거지들이 돈 대신 빵을 사달라고 한다는, 한때 복지국가 반열에 올랐던 아르헨티나. 원자재 붐으로 국가 재정이 넉넉해졌지만, 인프라를 늘리는 대신 공무원을 늘리고, 에너지 가스 등에 보조금을 늘리는 선심성 정책으로 재정 적자가 늘어났다. 그를 상쇄하기 위해 들여온 외채는 결국 페소 가치의 하락을 불러왔고, 높은 인플레로 국민 3명 중 1명 꼴인 340만이 빈곤층이 되어버린 국가 부도의 현실을 맞이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김포에서 수출입 장난감 업체를 하는 지훈 씨. 한때는 자체 생산 공장을 가졌지만 이젠 가격 경쟁력 때문에 중국 현지에 생산 공장을 운영하는 지훈 씨는 달러로 거래를 하기에 환율의 폭격을 고스란히 맞고 있다. 1200원에서 1290원만 되어도 90원의 손실분을 떠안아야 하는 수출입 업체의 현실. 그럼에도 가격 경쟁력 때문에 함부로 가격을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 바로 글로벌시대의 현장이다.

그렇다면 위기의 시대, 중앙은행들은 양적완화 외에 또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을까?

중국의 중앙은행은 금 매입에 나서고 있다. 달러를 대신할 대표 안정적 자산으로 여겨지는 금. 그래서 경기가 침체되면 사람들을 금 매입에 나선다. 중국만이 아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금 매입량을 늘리고 있는 중이다.

위기가 곧 기회

EBS 다큐프라임 3부작 ‘혼돈시대의 중앙은행’ 편

또 다른 방식으로 중국은 위안화와 1:1 호환되는 디지털 위안화를 추진 중이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중앙집중식 금융 시스템에 반발하여 등장한 분산 원장(블록체인) 기술인 비트코인. 하지만 1분 만에도 가격이 등락하는 엄청난 변동성으로 인해 신뢰성 있는 대안화폐가 되고 있지 못하다. 이런 비트코인의 불안정성을 보완하여, 현재 유통되는 화폐와 동일한 가치를 지닌 디지털 화폐 발행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런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정책은 다양한 포석을 지니고 있다. DCEP(Digital Currency Electronic Payment), 즉 디지털화폐전자결제 시스템은 국가가 돈의 흐름을 들여다볼 수 있어 금융시장의 중앙 통제가 용이한 방식이다. 거기에 위안화를 디지털 기축 통화의 선두주자로 하여 글로벌 기축 통화인 달러에 대응하고자 하는 야심 또한 내포되어 있다.

중국과는 또 다른 이유에서 디지털 화폐를 시도하고 있는 국가가 있다. 유가 폭락으로 인한 물가상승으로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베네수엘라다. 화폐가치 몰락으로 학교에서 선생님이 떠나가는 상황.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미 신뢰성을 잃어버린 현실 화폐 대신, 공무원이나 은퇴 공무원들에게 '페트로'라는 디지털 화폐를 나눠주어 새로운 DCEP 시스템을 시험해 보고 있다.

EBS 다큐프라임 3부작 ‘혼돈시대의 중앙은행’ 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위기. 이에 중앙은행들은 양적완화 카드를 내밀며 침체에 빠진 경제를 구해내는 정책을 쓰는 한편, 또 다른 한편에서 그 위기 상황을 미래에 대한 포석으로 삼기 위해 디지털화폐전자결제 시스템 도입 등의 신기술을 시험해 보고 있다.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미국 대공황과 일본의 장기불황의 뒤에는 중앙은행의 '실수'가 있다고 단언한다. 금리를 내려도 불확실한 판에 미연방 준비위원회는 금리를 인상하는 등 긴축정책을 펼치는 한편, 은행들의 파산을 방치하며 위기를 증폭시켰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산시장 버블이 붕괴되던 90년대 초반 일본 중앙은행이 금리를 즉각 인하했다면, 일본 경제가 그토록 긴 불황의 늪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결국 통화정책의 키를 쥐고 있는 중앙은행이 한 나라의 경제를 살릴 수도,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위기상황일수록 그 '키맨'의 역할은 더욱 부각된다.

하지만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또 한 가지 있다. 아르헨티나 사태, 베네수엘라의 위기 상황에서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바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다. 2009년 정부의 화폐 발행에 반대하던 중앙은행장을 해고해버린 아르헨티나는 결국 국가 부도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종종 미국 대통령도 어쩌지 못하는 미연방 준비위원회 의장의 '권위'가 바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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