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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춘몽’ 돼버린 한반도 평화[김민하 칼럼] 군사 도발 카드까지 꺼낸 북한,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할 수 있나
김민하 / 저술가 | 승인 2020.06.15 09:34

[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연일 뉴스의 첫 머리를 북한 소식이 장식하고 있다. 이제 이런 날은 더 이상 없으리라 기대한 때도 있었지만 누군가 말하듯 다 ‘일장춘몽’이었던 모양이다.

북한의 의도는 분명해보인다. 겉으로는 대북전단 문제를 얘기하고 있지만, 여러 이유로 남북관계를 경색시켜 긴장을 조성하는 게 필요하다는 판단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국면에서 당분간 북미대화의 가시적 성과를 이뤄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야 할 필요도 있고, 코로나19로 인한 북중국경 폐쇄로 발생한 경제적 위기 극복을 위해 주민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자는 ‘내부적 수요’도 있다는 것이다.

앞서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긴장을 조성하는 데서 오는 손해가 크다고 봤다면 북한이 굳이 이런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나 긴장을 조성할 필요가 있는 데 비해 평화모드를 유지하는 걸로 얻을 것은 거의 없다. 남북관계를 좋게 가져가더라도 남한이 한미관계의 악화라는 부담을 감수하고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독자적 행보를 할 수도 없다는 게 반복해서 확인됐기 때문이다.

북한의 이런 판단에 어느 정도 무게가 실려있는지를 보려면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직접 전면에 나선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유에 대해 후계자 내정설부터 남북관계 개선의 당사자로서 결자해지설도 있지만, 김여정 제1부부장이 어떤 정책적 자율성을 보장받고 나서는 국면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대남정책은 지도자의 결단에 따라 온건파가 전면에 나섰다가 실패의 책임을 어떤 형태로든 지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능동적인 강약의 조절이 필요한 협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책임을 우려한 경직성보다 성과에 충실할 수 있는 유연성이 더 필요한 게 현실이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정책의 큰 변화나 실패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유연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로열패밀리’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이 나서는 것은 그런 차원으로 볼 수 있다. ‘무오류’의 지도자가 지난해 비핵화와 경제를 맞바꾸는 결단에 나섰음에도 성과를 내지 못했고, 그런 상태에서 올해 갑자기 긴장 조성에 나서기로 한 상황은 북한 체제에서도 합리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다. 따라서 ‘지난해’의 상황은 김정은 위원장의 것으로, ‘올해’의 새로운 상황은 당과 국가의 권한을 위임받은 김여정 제1부부장의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만일 긴장 조성이라는 새로운 행보가 뭔가 성과를 거둔다면 그것은 당연히 김정은 위원장의 공이 될 것이다. 반면 실패한다면 김여정 제1부부장의 책임이 되지만, 어쨌든 그도 ‘로열패밀리’라는 점에서 추궁은 어느 정도 면할 수 있다. 요컨대 북한식 리스크 관리인 셈이다. 북한이 여러 강경한 발언을 내놓고 있는 와중에도 “수뇌들의 개인적 친분”이란 표현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양종합병원건설장 노동자들이 선전물을 들고 비난집회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노동신문)

뒤집어 말하면 북한이 지금과 같은 긴장 조성에 나서는 것은 즉자적 대응이 아니라 전략적 차원이라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국회가 판문점 선언 비준에 이제라도 나서거나, 대북전단살포 방지를 위한 제도를 만들거나, 종전선언을 통한 평화협정 논의를 촉구하더라도 북한의 태도가 크게 변할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북한의 ‘속도’는 남한이 유화적 대응을 쌓아가는 것으로 자신들의 명분을 약화시키기 전에 군사적 대응까지 속전속결로 끝내자는 의도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응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인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어쨌든 북한이 실제적 행동에 나서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찾아야 하는 것이다. 남북 간 합의는 유지해야 하고 평화적 분위기를 이어 나가야 하지만, 군사적 도발에 대해서는 또 다른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가 전해져야 한다.

가장 우려되는 국면은 순식간에 북한과 미국이 정면충돌하는 국면을 빠져드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국내 문제에 대처하느라 중국 외의 대외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룰 여유가 없는 상황이다. 북한이 미국 정부의 ‘주요 문제’가 되려면 충격적 사건을 일으켜야 한다.

리선권 북한 외무상은 지난 12일 트럼프 행정부에 대가 없이 치적 선전 보따리를 주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까지 대북정책에 있어서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워 온 것은 북한이 더 이상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북한이 핵과 ICBM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레드라인’을 위협하면 어떻게 될까? 그렇잖아도 위기에 몰려있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대화를 통한 외교적 개입보다는 ‘화염과 분노’를 다시 말하게 될 수도 있다. 한반도는 화약고가 될 것이다.

정치권 전체가 이 선택지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미래통합당을 비롯한 보수야당은 대북 굴종이니 무능이니 한다. 하지만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을 비롯해서 그간 남북 간 합의를 지키는 일에 가장 앞장서서 반대해 북한에 빌미를 주는데 일조한 세력 또한 자신들이라는 점을 돌아봐야 한다.

정치권 전체를 설득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민적 여론을 다시 모아내는 일이다. 지금까지 정부 여당은 한반도 평화 그 자체보다는 북한 또는 접경지역 개발이나 금융시장 변동성 최소화, 선거에서의 정치적 이득 등을 중심에 놓고 이 문제를 설명해왔다. 그러나 이해관계로만 말하면 ‘주고 받는’ 조건이 형성되지 않는 한 모두가 평행선을 달리게 될 뿐이다. 일례로 평화를 말하면서도 각자 뒤로는 군비확충을 통한 실질적 전쟁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으로 누구를 설득할 수 있을까? 북한의 비핵화가 왜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을 근본적으로 다시 던져볼 수 있는 계기가 있으면 좋겠다.

김민하 / 저술가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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