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 배우 김여진의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출연이 결국 저지되었다. 김여진은 격주로 출연할 계획이어서 기존 고정출연 제한 사항에 해당되지 않았지만 MBC는 이사회를 열어 심의조항을 바꾸는 무리수를 동원했다. 그 결과 기존 ‘주 1회 이상 출연자를 고정 출연자로 정의한다’는 단서가 삭제되어 격주 출연도 고정 출연자로 분류되어 출연이 저지된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MBC가 얼마나 엉망진창인가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고정제한 출연자의 자격 부분이었다.

MBC 심의조항의 의하면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대립한 사안에 대해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지지 또는 반대하는 발언이나 행위를 한 사람은 고정출연이 제한되다. 결국 MBC에 고정 출연할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회적 쟁점에 대해서 입 닫고 복지부동한 인물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마네킹이나 되면 모를까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면 MBC에는 고정출연할 수는 없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시사프로에 토론자로 출연할 사람이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부화뇌동만 한다면 굳이 토론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반대도 안 되고 지지도 안 된다면 도대체 토론프로에서 MC와 토론자는 무슨 대화를 할 수 있을지 백번을 생각해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손석희가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처럼 오프닝 멘트 후 출연자들과 손 꼭 붙잡고 끝날 때까지 묵념이나 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차라리 묵념이 낫지 애먼 말 해봐야 코미디도 못 되는 촌극이 벌어질 뿐 아니겠는가.

김여진 후임으로 누가 내정될지는 모르지만 그는 해탈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본 중의 근본이며, 초등학생도 모를 일 없는 내용이다. 때문에 정권에 반대했다거나 혹은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방송 출연이나 의견 제시에 불이익을 당한다면 그 사회는 더 이상 민주주의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MBC는 그렇게 현재 한국에 민주주의가 없음을 혹은 없어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 배우 김여진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국등록금네트워크와 한국대학생연합과 함께 '반값 등록금' 촉구 릴레이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여진이 제2의 노무현이라도 될까 두려운 것인가? MBC는 도대체 김여진의 무엇이 두려워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조항을 만들어서 역사의 오명을 남기고자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심의 조항은 또한 ‘고정출연 예정자의 언행으로 인해 회사의 공정성이나 명예와 위신이 손상되지 않도록 고정출연의 적합성을 가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이 추가되었는데, 진짜 회사의 명예와 위신을 누가 손상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아무래도 모르는 것이 분명하다. 지금 MBC의 명예와 위신을 손상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국민들을 대단히 불쾌하게 만드는 장본인은 김여진이 아니라 마네킹이나 다름없는 사람만 출연할 수 있도록 시사프로그램의 출연자 자격을 제한하는 기괴한 발상을 가진 사람들이다.

민주주의는 말을 먹고 자란다고 했다. 편식이 건강에 좋지 않듯이 정부에 대해서 지지와 찬양만 하는 말이 당장 입에 달아도 민주주의의 건강을 해치는 법이다. 방송 및 언론사의 말문이 하나의 방향으로 강제되면 그것을 조장한 사람의 눈에는 평화롭겠지만 그것은 단지 일시적 고요이며 더 큰 후폭풍을 예비하는 것이라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왔다.

아무리 정치에 무관심한 사회가 돼버렸고, 시민의 탈정치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지만 정치는 바꿔 말하면 경제이다. 지금 한국의 경제는 기초생활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소득층이 수백만에 달하는 위기의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자녀들은 일 년을 꼬박 벌어도 만들기 빠듯한 액수인 천만 원의 등록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이렇게 뒤틀린 경제상황은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을 정치 의식화하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몇몇 사람의 입을 틀어막는다고 해서 그 불만과 억울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 시사전문가나 교수들은 말을 하도 에둘러 하는 탓에 알아듣기도 어렵고 당연히 공감도 되지 않는다. 그럴 때 눈에 익은 연예인이 쉬운 말로 많은 사람의 답답한 속이라도 풀어준다면 그것보다 고마운 일이 없다. 배우에 불과한 김여진이 소셜테이너의 지위를 얻게 된 것은 그녀가 가만있는 사람을 선동하는 재주가 있어서가 아니라 당연한 말을 할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민초들의 분노와 절망은 극에 달해 있어 누가 따로 선동하지 않아도 스스로 터질 지경이다. 그런 민초들의 정서와 맞닿아 있는 김여진 같은 연예인에 대한 MBC의 치졸한 방해공작은 오히려 민초들을 자극하는 역선동이다. 김지하와 김민기가 처음부터 유신시대의 투사는 아니었다. 괜한 금서와 금지곡의 남발로 그들은 저항의 불꽃이 되었다. 김여진도 그렇게 만들 것인가?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