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팍도사 주병진 2탄은 전편과 달리 무거운 분위기가 더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참 잘 나가던 MC이자 사업가였던 그를 곤두박질치게 한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웃고 장난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주병진의 14년 전 사건으로 두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됐는데, 하나는 이성미, 이경실, 박미선 세 후배 개그맨들의 신뢰와 헌신적인 지지였다. 이 세 명의 여자 개그맨은 지금까지도 우애 좋기로 소문난 사람들인데, 배우나 가수와 달리 공동체 의식이 강한 개그맨들의 끈끈한 관계를 엿볼 수 있어 가슴이 훈훈해지게 했다.

그런 눈물겨운 동료애가 있는 한편 거짓 고소한 소송 상대자보다는 실질적인 주병진 죽이기의 주범인 언론의 책임지지 않는 태도 또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주병진 사건이 처음 사건이 알려질 때는 1면 대서특필이 됐어도 2년의 기나긴 소송 끝에 무죄판결을 받았을 때에 언론은 그 사실을 알리는 데 대단히 소극적이었다. 주병진을 수렁에 밀어넣은 책임감 때문에라도 그의 명예회복에 적극적이었어야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 결과 최전성기의 예능 MC가 방송에서 모습을 감추었으니 억울하고 원통하기로는 주병진의 심정을 헤아릴 길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14년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주병진은 방송 마지막에 방송 복귀의 조심스런 뜻을 내비쳤다. 그 순간 화면을 지켜보던 많은 시청자들이 환호를 질렀을 것이다. 아직도 그의 빼어난 재치와 상황 대처 능력은 예전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요즘 들어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는 당대 최고의 MC인 강호동이었지만 주병진은 전혀 휘둘리지 않고 쇼를 이끌어갔다. 적어도 주병진이 나온 무릎팍도사는 MC 대 게스트가 아니라 MC 대 MC의 쇼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이런 기이한 현상은 주병진이 보통의 게스트를 뛰어넘는 예능 대제로서의 기발함이 여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강호동의 적극적인 조율도 한 몫 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강호동의 특기이기도 하고 때로는 비호감스럽기도 한 과한 리액션은 주병진으로 하여금 14년의 공백을 잊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로 작용했다. 무뤂팍도사는 방청객이 없는 토크쇼이기 때문에 강호동, 건도 유세윤 그리고 올밴이 MC인 동시에 방청객이어야 한다. 강호동이 스스로 엎어지고 환호하는 모습이 주병진에게 큰 힘이 됐을 것이다.

14년 만에 방송사로 향하는 주병진의 머릿속에는 그의 감각이 현재의 웃음코드와 맞을까 하는 두려움 반 걱정 반의 생각이 가득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은 이미 전편을 통해서 시청자 모두가 확인했고, 그 이전에 녹화 당시 주변의 반응으로 주병진 스스로 알았을 것이다. 그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강호동과 주병진은 이번 토크쇼의 핵심주제에 대해서 말할 분위기가 무르익었음을 이심전심으로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싶다.

주병진이 무릎팍도사에 나온 것은 사업가로서도 아니고, 14년 전 그에게 억울한 누명과 동시에 마녀사냥에 쫓겼던 상처에 대해서 하소연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주병진에게 삶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방송활동에 대한 타진이 근본 목적이 될 수밖에 없다. 14년 간 묵혀두었던 그의 천재적이라 할 수밖에 없는 타고난 재치와 끼는 여전했고 주병진은 전설에서 돌아와 위기의 한국 예능에 새롭고도 익숙한 수혈을 기대케 했다. 그런 그와의 찰떡궁합이 되어 전설의 재구성을 만들 파트너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

그때 자연스럽게 떠오른 사람은 쌀집아저씨 김영희PD다. MBC 일밤은 오랜 침체에서 건져낼 나가수를 만들었으면서도 그 열매를 맛보지도 못하고 사측의 일방적인 처사에 밀려나야했던 쌀집아저씨는 얼마 전 인터뷰를 통해 나가수를 뛰어넘는 새로운 포맷을 희망했다. 그러나 대박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좋은 작가도 필요하고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을 이끌어갈 좋은 MC가 필수적이다.

너무 당연하고도 쉬운 발상일 수도 있겠지만 서로 간의 명성에 비추어 한쪽에 쏠리지 않은 무게감을 가진 김영희PD와 주병진의 결합은 최강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고, 두 사람 모두에게 모양은 달라도 다시 성공해야 할 동기 또한 있기에 더할 나위 없는 파트너가 될 것이다. 나가수 재도전 논란만 없었다면 주병진이 돌아올 자리에 쌀집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병진의 14년, 김영희 PD의 상처가 모두 전화위복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우연찮게 마련된 것이다.

요즘 예능은 서바이벌의 충격에 중독된 상태이다. 서바이벌이 무조건 잘될 거라 맹신했던 방송사들은 앞 다퉈 프로그램을 내놓았지만 최악의 경우인 신입사원도 있었지만 그밖에도 크게 재미 보는 것도 없다.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슈퍼스타K와 위대한 탄생이 노래라는 한국인 최대 오락요소를 통해 성공을 거둔 정도다. 이렇게 수많은 프로그램이 한두 가지의 경향에 빠지는 것은 결코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 이렇게 경직된 예능판에 예능의 조상 주병진과 그에 견주어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김PD의 의기투합은 또 다른 전설을 만들 거란 기대와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두 전설의 조우를 기대하게 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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