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여진 칼럼]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 미디어오늘과 한국리서치가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귀하께서는 ‘허위・조작 가짜뉴스’를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은 질문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81%(매우 찬성 63%, 다소 찬성 18%)로 나타났다.(6월 2일, 미디어오늘) 시민들의 언론에 대한 문제의식이 극에 달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주장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21대 국회 개원일에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국회에선 그 어느 때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punitive damages)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2004년부터 언론피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주장했던 언론인권센터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2005년 신문법과 언론피해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이 제정될 당시 언론인권센터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주장했다던 이유만으로 언론사뿐 아니라 언론인들에게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단체로 여겨졌을 수 있다.

언론보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현재의 언론중재법이나 민법의 범위에서 피해구제를 통해 언론의 책임을 묻는 것은 대단히 제한적이다. 2009년에서 2018년까지 언론관련 소송의 손해배상 판결금이 5백만원 이하인 것이 47.4%였다는 것만 봐도 실질적 피해구제와는 거리가 멀었다.(6월 2일, 미디어오늘) 뿐만 아니라 오보나 왜곡보도 등 언론의 행태는 바뀌지 않아 오히려 현행법이 언론의 책임을 반감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사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민사상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악의’를 가지고 불법행위를 한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그 ‘악의’나 ‘고의’를 증명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이 법은 실효성은 없고 상징적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사들은 이 제도 도입에 극렬히 반대하고 나섰다.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지나면서 ‘언론자유’가 위축되었고, 언론규제에 관한 법률안은 국민적 동의를 얻기 어려웠다. 그 사이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인터넷 언론을 포함 1만개가 넘는 매체가 등록되었다. 인터넷 포털 뉴스 환경에서 피해확산의 속도는 과거에 비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빨라져 피해자들에게는 치명적인 상태가 되었다. 지금이라도 언론에 제대로 책임을 묻는 법률안이 마련된다는 것은 ‘언론개혁’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데 이견을 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지금 논의 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2018년 말부터 정부 여당이 중심이 되어 발의한 ‘가짜뉴스방지법’과 궤를 같이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가짜뉴스와 허위왜곡 보도의 피해는 정말 심각하고, 다양한 방지책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는 모두가 동의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이미 모든 시민이 미디어를 생산하고,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환경에서 언론에 대한 책임을 지는 시작점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신중히 살펴봐야 한다.

지난해 11월에 개최된 언론정보학회에서 강준만 교수는 “뉴스수용자들이 모든 기자와 언론을 기레기라고 하진 않는다. 그들이 인정하는 논객과 선동가의 주장이 노출되는 매체에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누가 나의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가, 이 기준에 따라 의인과 참 언론인이 결정된다. 수용자들은 해장국 언론을 갈망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언론이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실확인과 취재를 하지 않고 보도자료를 중심으로 보도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금의 언론수용자들이 자신의 입맛과 취향에 따라 기사의 가치를 재단하는 것은 문제이다. 언론 수용자들은 나의 의견과 맞는 보도인지, 우리 편의 인사에 비판적인 기사인지에 대해 평가하고 비판한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기사를 공격한다. 댓글뿐 아니라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으로 확산되어 풍선효과를 나타낸다. 심지어 자신의 의견과 같지 않은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폭행하기도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내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를 징벌하는 도구가 아니라 거짓 보도로 인권을 침해하는 언론에 책임을 묻는 언론개혁의 시작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이사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862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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