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강남규 칼럼] 5월을 마지막으로 제20대 국회가 문을 닫고 제21대 국회가 열렸다. 이 분기점에서 언론들의 평가는 다음과 같이 요약되는 듯하다. 20대 국회는 역대 최악이었고, 21대 국회는 ‘일하는 국회’가 되기를 기대한다는 것. 언뜻 당연한 평가 같지만, 당연하게 느껴질수록 좀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많이 일했다’는 것에 그 자체로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많이 했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우선 20대 국회가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사실 이런 식의 단평은 국회가 끝날 때마다 여러 언론에서 매번 나왔는데, 당장 가장 최근의 국회들인 19대, 18대, 17대 국회가 막을 내릴 때 모두 ‘역대 최악’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정말로 국회가 매번 더 나빠져서 역대 최악을 갱신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평가는 단순히 정치혐오에 기댄 게으른 관행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제20대 국회가 관행적 의미에서의 평가가 아닌 실질적으로 역대 최악이라고 평가될 만한 데이터가 있다면 법안 처리율(발의된 법안이 본회의에서 통과된 비율)이다. 20대 국회에서는 총 2만4천여 건의 법률안이 발의되었으나 이 중 37.8%인 9천여 건만 통과되었다고 한다. 17~19대 국회에서 모두 40%대를 기록한 것에 비하면 확실히 역대 최악의 수치다.

하지만 ‘법안 처리율’을 기준으로 최악을 논하는 것은 다소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 중요한 것은 법안의 내용과 질이지, 숫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법안 발의 수만 놓고 보면 20대 국회는 지난 국회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양의 법안을 발의했다고 볼 수 있다. 19대 국회에서는 약 1만8천 개의 법안이 발의됐고, 18대 국회에서는 약 1만4천 개 정도다. 그렇다고 20대 국회가 특별히 더 많이 일했다고 평가해줄 수는 없다. 국회의원들이 법안 발의 실적을 만들기 위해 자잘한 용어를 바꾸거나 시류에 편승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식의 편법을 쓴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5월 16일 KBS 심야토론 화면 캡처

한편으로는 한국의 법안 발의 수와 처리율이 외국에 비해 높다는 분석도 있다. 2016년 8월 더미래연구소에서 발행한 <19대 국회 입법실적, 저조한가?>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연평균 법안 발의 수는 독일(약 200개)‧일본(약 60개)‧영국(약 100개)‧미국(약 3000개)‧프랑스(약 1400개) 등 주요 선진국들보다 훨씬 많은 편이다. 법안 처리율 역시 독일‧일본(50%대) 다음으로 높고, 한국 다음인 영국은 20% 초반이다. 미국은 10% 초반, 프랑스는 10% 미만이다. 이러한 수치들을 고려하면 법안 발의 수 또는 법안 처리율을 ‘일하는 국회’의 상징으로 보는 한국 언론의 관점은 어딘가 문제가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얼마나 많은 법안’을 통과시켰느냐가 아니라 ‘어떤 법안’을 통과시켰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사회를 후퇴시키는 법, 독소조항으로 가득한 법, 국민 대다수의 바람을 배반하는 법은 통과되지 않느니만 못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회의원의 임무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을 넘어 ‘악법을 막는 것’으로 확장된다. 거대양당이 짬짜미로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과반을 차지한 제1당이 날치기로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시도를 어떻게든 막아내는 것, 이른바 ‘동물국회’다.

더불어민주당이 절대 과반을 차지한 21대 국회에서 그런 일이 반복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과거 미래통합당의 전신들이 숫자로 밀어붙인 법안들을 떠올려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16대 국회), 지금의 종편을 만든 미디어법과 한미FTA 비준안(18대 국회), 이른바 ‘테러방지법’(19대 국회). 각각의 순간마다 육탄방어로든 필리버스터로든 법안 통과를 막으려는 시도들이 있었고, 많은 국민들이 그 시도를 지지했다. 법안 통과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익히 경험해 왔다는 얘기다.

20대 국회가 한국 정치사상 드물게 4개 이상의 정당이 정치적 영향력을 쥔 채 밀고 당긴 실질적 다당제 국회였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양당제에서의 법안 통과는 단순한 측면이 있다. 두 당이 원만하게 합의하거나, 법안 거래로 담판을 짓거나, 다수 정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키거나, 완전히 파행되거나. 어느 길을 택하건 행위자가 둘뿐인 정치에서는 결정도 상대적으로 빠르다. 하지만 4개 이상의 정당이 협상하는 다당제라면 협상 과정은 늘어질 수밖에 없다. 서로 조건과 규모가 다른 정당들이 서로의 이해를 조정해야 합의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당 체제가 당연한 상식으로 여겨지던 지난 18대 국회에 말미에 제정된 국회선진화법이 조건으로 작동하면 더 까다로워진다. 국회선진화법은 양당의 ‘협치’를 강제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되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양당 중 어느 쪽도 180석을 가지긴 어렵다는 전제 하에, 신속 처리 가능 의석을 180석으로 묶고 ‘날치기’를 어렵게 만들어 양당의 협상에 의한 합의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20대 국회는 전례 없는 다당제 구성이었다. 당시 새누리당은 122석을 차지했다. 고작 2석 차이로 의회를 마비시킬 수 있는 힘을 쥐게 된 셈이다. 다만 임기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보수정당 의원들은 자발적으로 뱃지를 반납해(법원 판결에 따른 의원직 상실) 120석이 무너졌고, 이것이 다시 ‘동물국회’가 재연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양당제 시절의 국회법이 다당제 국회에 적용되면서, 안 그래도 합의가 까다로운 다당제에서의 법안 처리를 더욱 까다롭게 만들었다. ‘역대 최악’이라고 평가받게 만든 20대 국회의 법안 처리율 이면에는 이러한 지점이 작동했다. 오히려 협치를 강제하는 국회선진화법이 없었다면 각 정당들은 먼저 과반을 달성하기 위해 상대 정당들과 치열하게 협상했을 것이고, 서로 지향이 다른 정당들이 두루 합의할 만큼 원만한 법안들이 명분을 갖춘 채 빠르게 통과되었을지도 모른다. 20대 국회에서의 다당제 실험은 면밀히 평가되어야겠지만, 이러한 제도적 불일치에 따른 한계가 감안될 필요가 있다.

20대 국회가 최악이 아니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언론들이 쉽게 ‘역대 최악’이라고 평가를 내리는 것은 관성적이며, 보다 질적이고 밀도 있는 분석으로 지난 4년에 대한 균형 잡힌 평가를 내려 앞으로의 4년을 전망하는 것이 언론이 수행해야 할 역할이라는 것이다. ‘일하는 것’은 무조건 옳고 ‘일하지 않는 것’은 무조건 나쁘다는 단편적인 층위로는 이야기할 수 있는 깊이가 그리 깊지 않은 듯하다. 20대 국회는 어떤 법을 통과시켰고 어떤 법을 막았는가? 통과된 법안들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꿔낼 것이며, 통과되지 못한 법안 중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할 것들은 무엇이 있는가? 이것들을 이야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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