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투게더3가 200회를 맞아 아주 특별한 그러나 사실은 사소한 변화를 추구했다. 200회 동안 MC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을 게스트석으로 옮기게 한 것이다. 콜롬부스의 달걀처럼 이 간단한 변화가 의외의 재미를 주었으며, 정말 별 거 아닌 작은 변화로 ‘이거 대단한데?’하는 감탄을 불러올 수 있었다. 이것은 요즘은 거의 사라진 애드리브지만 콩트 중 개그맨이 대본이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웃음을 터뜨렸던 상식의 파괴와 비슷한 일이다.

주병진이 14년 만에 방송가에 돌아왔어도 왜 그가 예능대제로 불릴 만한가를 보여준 사건은 그동안 그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올밴의 침묵을 깨게 한 작은 도발이었다. 개그맨과 시인은 닮은 점이 많다. 사물을 그대로 본다면 시가 될 수 없고 웃음을 줄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자신의 주변 더 나아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늘 의문을 던지는 자세에서 남을 웃길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오기 마련이다. 단지 자리만 바꿨을 뿐이지만 대단한 특집이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발상의 전환 때문이다. 흔히들 역지사지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그만큼 어려운 것이 남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러나 게스트들의 죽음의 자리인 정수기 자리에 앉아서도 유재석은 건재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많지만 그것은 변명에 불과할지 모를 일이다. 2인자 박명수는 올해 들어 1인자로 올라설 몇 차례의 기회를 차지했지만 결국 “나는 2인자”를 선언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듯이 죽음의 자리에 앉아도 유재석은 유재석이었다. 그 자리에 앉아 MC가 아닌 게스트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고 비로소 아주 오랫동안 유재석에 대해 가졌던 의문 혹은 의심이 풀렸다.


자리를 바꿔도 유재석은 유재석

그가 아주 오랫동안 안티 없는 국민MC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은 스스로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 체질이라는 점이다. 남을 웃겨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필연적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그런 증언은 개그맨들을 통해서 수도 없이 들을 수 있었다. 이 날 신봉선도 “자신의 노력은 인정하지 않고 오직 못 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멸시한다”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유재석도 개그맨인지라 신봉선만큼은 아닐지라도 스트레스 원인이 없을 리가 없다. 그런데 그가 평온하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것은 타고난 체질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200회 특집에서 유재석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200회를 특집으로 규정케 해준 ‘입장 바꾸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유재석 스스로도 말했듯이 해피투게더3는 혼자서 만든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 것이다. 개그맨 1인 MC체제를 굳힌 천하의 주병진에게도 노사연이 필요했었던 것처럼, 유재석에게는 박명수와 김원희가 있었다. 자리 바꾸기의 노림수는 유재석이 아닌 바로 유재석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 모으기에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어차피 정수기가 아니라 어디에 둔다 하더라도 유재석은 유재석이기 때문이다.


트로피 없는 작은 시상식

두말 할 것도 없이 당연히 해피투게더3 신길동 목욕탕에는 언제나 유재석과 함께 비이성적 정신세계를 유지해야 하는 3D직종인 2인자 박명수가 있었고, 말리는 시누이 역할로 불난 집에 부채질한 박미선이 있었다. 과거의 코너 박명수를 웃겨봐를 통해서 해피투게더에 합류하게 된 박미선이 일부러(?) 수성 마스카라를 하고 나와 손병호 게임에서 먹물 미선이 됐던 헌신적 투혼은 잊을 수가 없다.

또한 여자로서 화장실 옆자리에서 목욕탕 댄싱 머신으로 온몸을 던져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웠던 신봉선이 있었다. 해피투게더가 자리 바꾸기를 한 이유는 유재석이 게스트가 된다는 이슈 뒤에 이들의 보이지 않는 조력과 활약을 좀 더 부각시키지 위한 의도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트로피 없는 조촐한 시상식이었다고 생각하고 유재석의 조연 역할을 묵묵히 해낸 그들에게 박수를 보낼 자리였다.

유재석이 자청했건, 아니면 제작진의 아이디어였건 자리 바꾸기를 통해 200회 동안 중심이었던 유재석을 외곽으로 빼고 가장 중심에 신봉선을 둔 것은 1등만 박수 받는 세상에서 외치는 작은 휴머니즘이었다. 그래봐야 다음 주부터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겠지만 그래도 200회라는 의미 있는 자리에서 자리 바꾸고, 입장 바꿔서 2인자, 3인자의 고충과 또한 활약을 돋보이게 한 것은 정말 착한 일이었다. 예능이 한때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며 극한 이기주의에 빠진 적도 있지만 이렇게 착한 모습일 때 뒷맛까지도 깨끗한 웃음을 주게 된다. 해피 투게더라는 말처럼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이름값을 한 특집이었던 이유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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