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무협사극 무사 백동수에 가장 부족한 것이 액션이라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이 드라마의 굵은 줄기는 정조를 암살하려는 자와 그것을 저지하려는 힘의 대결이다. 정조에 대한 암살 의지는 무사 백동수 이전에 MBC 사극 이산을 통해서 익히 알려진 것이다. 이산은 무협사극이 아닌지라 노론의 끊임없는 암살시도의 정황에 밀착했을 뿐 액션에 큰 무게를 두지 않아도 좋았다. 그러나 무사 백동수는 그와 사정이 다르고, 시청자 입장에서는 화려한 무협 액션을 기대하게 되지만 아직은 만족할 만한 명장면은 나오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연기적으로는 불꽃 카리스마를 내뿜는 전광렬이라 할지라도 액션 연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였고, 거기다가 대역이 연기하는 것을 너무 빈번하게 노출시키는 화면의 구성이 문제다. 물론 펄펄 나는 젊은이들이 드라마를 이끌기 시작하면 이 부족한 액션을 충분히 커버해주리라 예상하지만 아직까지는 무협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또한 아쉬운 점이다.

그런 부족한 액션을 커버해주며 무사 백동수의 무거운 배경을 장악한 이가 있다. 이 사람은 겨우 몇 마디의 대사와 짧은 등장만으로 드라마 전반의 중량감은 물론이고 살수로 살아야 하는 어린 여운(후일 유승호)의 비극적 운명을 대신 표현해내고 있다. 요즘 아역들이 무섭도록 미친 연기력을 보이고는 있지만 누구라도 살성의 운명을 표현해내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거기에 어린 여운을 데려다가 흑사초롱의 수업을 시키며 등장하는 천(최민수 분)의 말없는 암흑 카리스마가 부족한 나머지 많은 부분들을 대신해주고 있다.

특히 2회 마지막 장면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어린 여운이 살수로서의 자격을 얻기 위한 세 가지 관문 중 최종 임무는 세상에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대상을 죽이는 것이었다. 어린 여운에게 그 대상은 유일한 피붙이 아버지 여초상(이계인 분)이었다. 여운과 함께 장대비를 맞으며 마지막 임무에 동행하는 최민수의 모습은 살수로 살아가야 하는 자의 어두운 운명을 분위기만으로도 전달해줄 수 있었다.

그리고 차마 아비를 죽일 수 없었던 여운 대신 아버지 이계인이 칼을 자신의 가슴에 박으며 과연 무협극다운 대사를 한 마디 남긴다. 아들의 저주받은 운명에 몸부림쳐왔던 아비는 살성의 운명을 자신의 목숨으로 바꾸고자 하는 절절한 바람이 담겨 있었다. “이 애비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어야 한다”는 말을 끝으로 숨을 거두고, 아비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여운은 기절을 한다. 그 장면을 말없이 지켜보는 최민수는 술병을 높이 치켜들어 입 안에 쏟아 붓는다.

쏟아지는 장대비, 검은 복장에 검은 삿갓 그리고 말없이 술을 쏟아 붓고는 빗소리에 씻겨나갈 정도의 작은 소리로 탄식인지 술이 목을 넘어가는 감탄인지 모르게 하아~ 하는 것이면 충분했다. 해설도 대사도 필요 없었다.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강렬한 눈빛을 더하는 것도 필요 없었다. 오히려 설명하지 않으려는 무심의 역설이 여운이 처한 상황 그리고 더 나아가 살수로 살아가는 자들의 삶을 그리는 데 더 적절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보통 배우는 자신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인데 최민수는 자신과 더불어 어린 여운의 감정을 대신 연기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또 다른 의미의 1인 2역 연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최민수의 연기는 그렇게 어두운 면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전광렬을 만나서는 결국 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 숙명의 적에게서 느끼는 우정을 넌지시 내비치고 있다. 약간 어눌해 보이는 말투까지 보이는 최민수의 두 가지 설정, 이중의 감정이 살수 천과 조선제일검 김광택의 관계를 더욱 흥미롭게 해주고 있다.

아비를 죽일 정도로 독한 것이 살수라면 그에게는 평생 누구와 우정을 나눌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환과고독이 모두 가족이 없는 외로움을 표현한 말이지만 가족만큼이나 친구가 없는 남자의 삶은 처절한 고독을 안겨준다. 게다가 마음에 드는 상대가 있다면 그 고독은 더 심해진다. 살수라는 것이 누군가의 청부에 의해 무심한 칼을 휘둘러야 하는 몹쓸 직업이고, 또한 미화될 수 없는 존재지만 최민수를 통해서 연민과 동경이 생겨날 것 같다. 과거 모래시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래서 최민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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