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사건’과 ‘사고’가 다르다고 말한다. 개가 사람을 무는 건 사고이고 사람이 개를 무는 건 사건이라는 예시를 든다. 사고에서 필요한 건 사실 확인과 사고 이전으로의 복구. 사건에서는 해석을 통한 진실의 추출이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은 사건을 다루는 한국영화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이다.

<박하사탕>에서 사건을 매개하는 상징은 기차다. 기차가 터널을 빠져나오는 오프닝을 지나 주인공 영호(설경구)가 처음으로 바라보는 사물도 기차고 최후를 선사하는 사물도 기차다. 생채기를 낼 수 없을 만큼 육중한 철제구조, 정해진 시간에 맞춰 도착하고 출발하는 정시성. 그리고 엄연히 존재하는 후진기능을 망각시키는 압도적인 직진성 때문에 기차는 근대화의 상징으로 자주 사용된다.

그런데 <박하사탕>에서 기차는 직진성을 거부하고 무려 6번이나 역주행을 한다. 기차만 거꾸로 달리는 게 아니라 시간도 1999년에서 1979년까지 역순으로 흐른다.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영호의 주문 같은 유언에 따라 근대화의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온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훑어내듯 말이다.

영화 '박하사탕'

사건에 다가가는 6가지 키워드

1999년의 영호는 억울하다. 친구의 배신으로 사업이 쫄딱 망하고 증권사 직원이 추천한 주식은 휴지조각이 됐다. 빚쟁이에게 쫓기고 빗물이 새는 비닐하우스에서 잔다. 부인 홍자(김여진)와는 이혼하고 하나뿐인 딸도 만날 수 없다. 혼자 죽기는 억울해서 저승길 동무를 만드려고 남은 돈을 모두 털어 권총을 한 자루 사지만 ‘인생 조져놓은 놈들이 너무 많아서 한 놈을 고를 수 없다’는 결정곤란증도 겪고 있다. 그때 일면식 없는 한 남자가 찾아온다. 첫사랑 순임(문소리)의 남편이다. 젊은 시절 박하사탕 공장을 다녔던 순임은 시한부 판정을 받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다. 영호는 의식을 잃은 순임의 손에 박하사탕을 쥐어주며 ‘옛날 모양 그대로죠’라고 말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1994년의 영호는 불행하다. 사장님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중형 세단을 몰고 묵직한 열쇠꾸러미를 들고 다닐 정도로 가구점이 번창하고 있지만 부인이 바람을 피운다. 상대는 운전교습을 해주던 강사다. 현장을 급습해 ‘두 년놈’을 아작 내지만 아내의 바람이 불행의 전부는 아니다. 사실 영호는 부인을 사랑하지 않는다. 사무실 미스 리(서정)와 이미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고 직장 동료들을 초대한 집들이에서 기도하는 아내 모습이 꼴보기 싫어 뛰쳐나갈 정도다. 그렇게 미스 리와 밀회를 즐기던 영호는 식당에서 어떤 남자를 만나 인사를 나눈다. 안면은 있는 사이지만 대화는 어색하기 짝이 없다. 화장실 소변기 앞에서 다시 만난 남자에게 ‘삶이 아름답냐’고 묻는다. 이 남자의 정체는 1987년으로 거슬러 가면 밝혀진다.

1987년의 영호는 지독하다. 베테랑 경찰인 영호의 업무는 사회치안유지다. 1994년에 식당에서 만난 남자를 처음 마주한 곳도 하얀 타일이 깔린 고문실이었다. 워커홀릭이 된 영호는 한 번 시작한 일을 끝을 봐야한다며 회식도 마다하고 남자의 머리를 수조에 처박는다. 기어이 동료의 위치를 뱉고 무력함과 죄책감에 사로잡힌 그에게 일기장에서 봤다며 ‘삶은 아름답냐’ 묻기까지 한다. 곧바로 남자의 동료를 잡으러 군산으로 간 영호. 잠복하다가 만난 술집종업원과 하룻밤을 보내며 영호는 종업원을 순임이라 부르고 눈물을 터트린다. 아침에 부두 앞에서 만나 함께 해장국을 먹자고 약속하지만 불순분자의 동료를 서울로 연행하며 순임이 됐을지 모를 만남은 무산 된다.

영화 '박하사탕'

1984년의 영호는 흔들린다. 식후에 자판기 커피를 마시듯 자연스럽게 피의자를 취조하는 고참들과 달리 영호는 고문실이 어색하기만 하다. 오랏줄에 묶인 피의자를 취조한 뒤 실금한 인분이 묻은 손을 닦으며 신고식을 치르던 날. 영호의 고향집까지 찾아가 물어물어 순임이 찾아온다. 분위기는 이상하지만 ‘딴 사람처럼 느껴지지만 착하게 생긴 손을 보니 영호씨 맞다‘는 순임의 호의에 영호는 훗날 부인이 되는 홍자의 엉덩이를 일부러 움켜쥔다. 순임은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뜬다. 마지막으로 사진찍기가 취미였던 영호를 위해 샀다며 카메라를 선물하지만 영호는 그마저 매몰차게 돌려준다. 이어진 저녁 회식자리. 영호는 술집을 때려 부수고 고참들의 군기가 빠졌다며 마대자루를 휘두르며 명령한다. ‘뒤로 돌아‘라고.

1980년의 영호는 불운하다. 계엄령이 선포된 엄혹한 상황. 군장도 제대로 싸지 못하는 이등병 영호가 위로받는 유일한 순간은 순임이 정성스레 보내온 편지를 읽을 때다. 영호는 편지와 동봉된 박하사탕을 찬합에 고이고이 모아놓는다. 그리고 면회 온 순임과 영호가 만나기 직전, 다급하게 출동준비가 떨어지고 내무실 바닥에 나뒹구는 박하사탕이 군홧발에 밟혀 박살이 난다. 칠흑 같은 밤. 5월의 광주로 파견된 영호는 동료군인의 눈먼 총알에 다리를 맞아 정신이 없는 와중에 민간인 여학생에게 오발탄을 쏘는 사건을 일으킨다. ’엄마한테 혼나니까 일어나서 집으로 가라‘는 영호의 절규에도 여학생은 집으로 가지 못한다.

1979년의 영호는 순수하다. 나들이 나온 청춘남녀들. 영호는 이상하게 자주 눈이 마주치는 순임을 보며 이름 없는 꽃들을 찍으며 다니고 싶다고 말한다. 공장에서 하루에 박하사탕을 1,000개씩 포장한다는 순임. 박하사탕을 좋아한다는 영호는 이상하게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이곳의 철교랑 강이 낯익다고 말하고 순임은 그런 건 꿈에서 본거라고 ’영호 씨의 꿈이 좋은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한다. 그리고 영호는 샌드 페블즈의 ’나 어떡해‘를 합창하는 무리에서 벗어나 홀로 강가에 누워 철길을 달리는 기차를 바라본다.

영화 '박하사탕'

퇴행하는 인간의 마지막 모양새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창동 감독의 첫 고민은 영화 순서대로 찍을지, 시간 순서대로 찍을지였다고 한다. 제작진 사이에서는 후자가 대세였고 설경구도 감정 잡기가 수월하다며 시간 순서대로 촬영을 주장했다. 왜 죽어야 하는지 실감나지 않는데 어떻게 죽겠다고 할 수 있겠냐는 이유였다. 이창동 감독이 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제시한 근거는 두 가지였다. 뒤로 갈수록 감정이 강해져야 하고 자기가 누군지 모르고 시작하는 게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가는 영화의 내적 방향과 일치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촬영은 영화 순서대로 진행된다.

이런 맥락에서 20년이 지난 지금도 감독의 판단은 틀리지 않아 보인다. 신형철 평론가가 이어서 덧붙인 사건과 사고의 중요한 차이점과도 일치한다. 복구가 가능한 사고와 달리 사건은 ‘진실의 압력‘을 갖고 있어서 진정한 사건이 발생했다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무리해서 되돌리려 할 때는 퇴행이 일어난다. <박하사탕>은 사고가 아니라 사건을 다룬다. 공교롭게 개봉 이후 20년이 넘도록 쌓이고 있는 영화의 외적인 기억들은 감독의 선택에 더 높은 설득력을 부여한다. 이를 테면 5.18민주화운동과 유공자에 대한 폄훼, 북한간첩의 주도로 이루어졌다는 근거 없는 루머들 말이다.

물론 이와 같은 질문도 던질 수 있다. 엄연한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발급하는 것 아니냐고. 이에 감독은 ’폭력과 가해자에 대한 어떤 합리화가 아니라 현대사와 맞물린 한 인간의 시간을 되돌려 현실 결과의 원인을 찾는 실존적 결과’라는 단서를 붙였다. 불가피하게 역사의 흐름에 휘말려 타락하는 군상보다 순수의 상실로 고통 받는 개인에 집중하자는 의미일 거다. 하지만 한 번 더 물음표를 붙이고 싶다. 과연 영호는 속죄의 기회가 없었을까.

경찰이라는 직업을 택하지 않았다면. 84년 카메라를 주러온 순임에게 그날의 진실을 털어놓았더라면. 87년 군산에서 제 2의 순임이 될 뻔한 종업원과의 약속을 지켰더라면. 추출된 진실과 마주할 용기를 내지 않고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치며 무리해서 과거로 돌아가려던 영호의 마지막을 우리는 알고 있다. 퇴행하는 인간의 마지막 모습은 항상 비슷한 모양새인 덕분이다.

덧. 1980년 5월에 이등병인 영호는 1960년생으로 1999년에는 40살이다. <박하사탕>은 새 천년의 시작인 2000년 1월 1일 개봉했고 2020년인 올해는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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