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오디션에 도전하는 참가자들 중 매주 기성 연기자들의 모습이 등장하고 있다. 물론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 영순위로 캐스팅되는 연기자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프로 연기자들이 아마츄어가 도전하는 자리에 서고 있다는 것은 뭔가 이상한 일이다. 뭔가 어색하고 자칫 기적의 오디션이 가진 정체성을 흔들어놓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자신의 직업이 연기자라고 믿는 사람들이 기적의 오디션에 도전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 어쩌면 어떤 환경이 그들을 낯선 아마추어의 자리에 서도록 강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 드라마를 부끄럽게 하는 몇 가지 단어들이 있다. 막장 드라마, 아이돌 발연기, 스타 캐스팅에 끼워 넣기 등등의 말들이 있다. 한국 드라마가 아시아는 물론 세계 전역에 가랑비처럼 한류를 심어가는 일등 주역이지만 같은 지점에서 벌어지는 정반대의 일이 생겨나는 것이다. 위에 말한 세 가지 중에서 두 단어는 기적의 오디션과 연결되고 있다.

아이돌이 출연한 드라마치고 연기력에 대한 지적이 없던 경우를 찾기 힘들다. 아이돌이 출연한 드라마에 연기력 문제가 제기되면 곧바로 이어지는 것이 옹호성 인터뷰다. 대부분 "차차 나아질 테니 응원해주세요" 하는 얘교 섞인 말이다. 드라마를 연기 배우는 곳으로 착각한 듯한 말이 어처구니없지만 그렇다고 배역에서 끌어내릴 수도 없는 일이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그 드라마는 그렇게 한 아이돌에게 연기력 지도와 프로필에 적을 굵직한 이력 하나를 남기고 끝난다.

물론 아이돌 가수만 드라마에 나와서 발연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버젓이 직업 연기자라고 내세우고, 매번 주연에 캐스팅되면서도 변함없는 저급 연기로 혹평을 받는 스타들이 여럿 존재한다. 그들 중 불명예스러운 1위였던 김태희는 아주 다행스럽게도 지긋지긋한 발연기 꼬리표를 스스로 떼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김태희는 발연기 탈출의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여전히 드라마 제작자들은 연기력을 갖추지 못한 스타를 캐스팅하고, 그들 속에 아이돌 가수들이 자주 눈에 띄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스타급 주연에 같은 소속사 배우가 끼워 넣기로 출연하는 예는 흔한 일이다. 그렇게 들어온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 스타 한 명의 캐스팅으로 인해 드라마는 연기라는 근본을 포기하게 되는 부조리가 발생하고 또 그것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아이돌이라고 해서 연기하지 말라는 고답적 주장을 펴는 것이 아니다. 아이돌이건 광고 모델이건 연기력을 갖췄다면 몰라도 단지 인기가 있고, 외모가 출중하다고 해서 겁도 없이 드라마 주연을 꿰차는 현상이 문제라는 것이다.

기적의 오디션에서 이런 드라마 캐스팅의 난맥상에 대한 배우들의 온몸을 던지는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1회에만 그런가 싶었지만 2회 서울 지역 예선에서는 오히려 기성 배우의 도전이 더 늘고 있다. 물론 서울이라는 특성 때문에 더 많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직업이 배우인 사람들이 연기가 본업이 아닌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아픔을 읽을 수 있어 보기에 짠하기만 하다.

특히 2회에 출연한 최규환은 그래도 좀 심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개성 넘치는 명품조연 최주봉의 아들로 그 역시도 데뷔는 좀 쉬웠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최규환은 아버지의 후광보다는 자신의 노력과 연기로 출연하는 작품마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온 연기자이다. 그가 비중 높은 역할로 출연한 작품들의 이름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토지, 별순검, 연개소문, 아름다운 시절 등등 대작들이 많았고 특히 아름다운 시절에서는 마침내 주연으로 발탁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소식은 2009년에서 멈춰있다. 그 이유를 다 알 수는 없지만 2011년 느닷없이 아마추어 오디션에 등장한 것만 봐도 그간의 사정이 여의치 않았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최균환은 기적의 오디션에 나와서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연기를 하고 다시는 하지 않고 싶다고 했다. 적지 않은 연기자 2세들이 공통적으로 안게 되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그러나 단지 아버지의 그림자를 벗기 위해서 그 자리에 섰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오히려 지난 몇 년 간의 공백이 가장 두려웠을 것이고, 연기를 하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최규환을 오디션 자리에 서게 했을 것이다.

최규환 혹은 또 다른 캐스팅 순위 바깥의 배우들이 모두 아이돌, 광고 모델들 때문에 밀려난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부족함이 더 클 수도 있다. 그러나 하다못해 아버지의 인맥이라도 갖고 있는 최규환이 굳이 기적의 오디션에 나오기까지는 아주 많은 망설임과 고심이 있었을 것이다. 장편 드라마 주연까지 했던 배우가 아마추어 오디션에 나온다는 것이 말처럼 간단한 일은 아닌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최규환에는 고민과 체면보다 배우로서 계속 살아가는 일이 더 절실했기에 그 자리에 나와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쪽에서는 아이돌들이 출연해 드라마를 망치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연기가 절실한 배우들이 무릎을 꿇고 배우로 살게 해달라고 절규하고 있다. 이 어울리지 않는 극단의 현상은 기적의 오디션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역설한다. 또한 기적의 오디션이 있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다행히 기적의 오디션의 심사를 맡은 드림 마스터들은 진지하고 또 혜안을 계속 발휘하고 있다. 기적의 오디션 하나로 캐스팅의 질곡이 완전히 뒤바뀌진 않겠지만 그렇게 시작해서 연기의 위대함에 대한 경외를 인기와 외모로 버티려는 연기 하지 못하는 주연들에게 경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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