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범이 현재 최고의 이슈 메이커가 된 것은 분명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은 지나친 관심과 의미 부여였다. 나가수의 짧은 출연으로 일약 최고의 스타가 된 임재범이 티비에서 다 보여줄 수 없었던 그의 음악적 담론을 콘서트를 통해서 펼쳐가기 시작했다. 그의 공연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전해졌고, 처음에는 그의 상의 탈의가 화제가 되더니 지금에 와서는 탈의 전 그가 입고 있었던 독일군 복장이 논란이다.

일부에서는 임재범이 나치 복장이 아닌 일본군 복장이었다면 어땠을 거냐는 가정을 한다. 물론 상황은 지금과 또 달라졌을 것이다. 히틀러와 일왕이 똑같은 세계적 전범이기는 하지만 우리와 직접 관계가 없는 독일과 달리 일본이라면 아마도 일체의 옹호 없는 비난에 몰렸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놓고 아무리 평화와 반전을 외친다고 해도 그것을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며, 임재범이 그나마 나치복장을 한 것이 다행인 상황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최고의 호감 가수가 입은 나치 복장이 주는 충격파는 결코 작지 않다.

논란이 일 기미가 보이자 소속사에서는 반어적 상징이라는 해명을 내놓았다. 당연한 얘기를 공연히 한 셈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미국 일부에서만 발호하고 있는 신나치즘을 임재범이 주창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체로 그러려니 이해하고 넘어가는 상황으로 보였다. 그러나 29일 진중권의 트위터에 의해서 다시 논란이 재점화되고 말았다. 그런 데는 작곡가 김형석의 맞대응도 큰 계기가 되었다. 다소의 냉소가 담긴 말이지만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임재범의 퍼포먼스는 그의 공연 이후 떠돌아다니는 사진 한 장으로 판단할 일은 절대 아니다. 임재범이 아니라 그 누구의 공연이라도 마찬가지다. 공연에서 벌어지는 것들은 사소한 것까지 무의미하게 보여지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나치복장을 입을 정도의 과격(?)한 퍼포먼스를 준비할 때는 아주 많은 것들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에 있어 임재범이 나치 퍼포먼스를 하기 전후의 상황까지 모두 보고 느낀 사람이 아니라면 단순히 전해지는 사실 몇 가지를 통해 전체를 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공연 리뷰는 현장의 분위기가 중요하다. 진중권은 임재범의 나치 퍼포먼스를 윤리의 문제가 아닌 미감의 문제이며, 몰취향이라고 했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중권의 비판에 대응한 김형석이 공연장에나 와서 릴렉스하라고 맞받아친 것 역시 틀리지 않는 말이다. 같은 노래를 부르더라도 현장마다 느낌과 반응이 달라지는 법이다. 비평가라 해서 현장을 보지 않고 예술가의 행위를 미학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김형석 대 진중권의 공방은 사실상 무효이다. 필자 역시 공연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임재범의 퍼포먼스에 대한 평가나 소감을 말할 수 없다. 만일 하게 된다면 그것은 단지 사기일 뿐이다. 만일 임재범의 공연이 티비로 중계되었다면 약간은 달라질 수 있지만 그래도 엄격한 의미의 공연 평가는 힘들다. 티비는 한정되고 의도된 장면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공연장 객석에 앉아 느끼는 현장의 진실한 정서를 전달할 수 없다. 진중권이 신이 아닌 이상 보지 않은 공연을 평가할 수는 없다.

그것은 공연에 가지 않고도 그저 임재범에 대한 호감의 경향성에 편승해 무조건 편드는 쪽 역시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하지 못할 비판과 칭찬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서울에 살던 사람보다 안 가본 사람이 더 잘 안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미지라는 것은 일종의 우상이다. 작금의 인터넷 세상은 이처럼 보지 않은 사실에 대한 갑론을박이 너무 심화되고 있다. 이번 임재범 나치 퍼포먼스 논란은 옳고 그름의 판단 이전에 논란의 허구를 반증하고 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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