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선민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 김정은 위원장의 사망설 및 신병이상설로 20일간 어수선했다. 하지만 별 일 없을 거라 직감했다. 정부의 부인 외에도 북한 주요 인사 사망 보도에 내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1986년 ‘세계적’ 오보로 기록된 조선일보의 김일성 피격 보도 이후 김일성 주석은 8년을 더 살았고, 2013년 8월 “김정은 옛 애인(보천보 전자악단 소속 가수 현송월) 등 10여명, 음란물 찍어 총살”됐다던 현송월 단장은 다음해 5월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이후 한국을 방문해 ‘현송월 패션’ 보도로 건재함을 과시했다. 지난해 5월 단 한명의 북한 소식통을 근거로 북미정상회담을 이끈 ‘김영철과 김혁철이 노역형, 총살’(2019. 5. 31)됐다는 보도 이틀 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은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오보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북한에 관한 오보가 많은 것은 취재가 어려운 것도 있지만 오보 당사자가 항의를 하는 일이 좀처럼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오보 뒤에는 “북한 관련 보도는 모 아니면 도입니다. 용감한 사람 지르고 겁 많은 사람 확인하다가 못 쓰고”(MBN <아침&매일경제>(4.23)에 출연한 윤영걸 전 매경닷컴 대표 발언)라는 마인드를 가진 무책임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언론이 있다.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인데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히 지나가면 언론은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정정보도, 사과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김정은 사망설 오보는 최근 몇 년간 있었던 현송월, 김영철 오보와 비교해 그 무게가 확연히 다르다. 국내의 자칭 북한전문 매체가 첫 보도를 했지만(대개 북한이탈주민 피셜로, 뉴욕타임스는 이 매체의 보도를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 보수 언론의 일회성 보도에 머물지 않고 CNN까지 가세하면서 ‘설마’라는 생각을 잠시 들게 했다(CNN은 2014년 김경희가 독살됐다는 오보를 낸 전력이 있다).

한국 정부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고, 트럼프 대통령이 사망을 부인하는 발언을 했음에도 언론은 CNN을 ‘인용’하면서 김정은 사망설을 확산시켰고, 이후 미래통합당 윤상현 의원과 북한 이탈주민인 미래통합당 태영호 당선자가 “김정은이 일어서거나 걷지 못하는 상태”라고 주장했고, 며칠 뒤인 1일 같은 당 지성호 당선자가 “김정은 사망 99%”로 기정사실화하면서 다른 국면을 맞았다. 북한 국적을 가졌던 국회의원 당선자의 발언은 발언 수위도 높았을 뿐 아니라 일반 국회의원 발언보다 더 ‘특별하게’ 다뤄지는 듯 했다.

이들의 발언은 북한이탈주민이 출연하는 종합편성채널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 ‘모란봉 클럽’을 떠올리게 한다. 10대 때 북한을 떠난 사람들이, 평양조차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북한의 보위부와 김일성 부자의 건강 관리방법에 대해 직접 경험하고 본 듯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말이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한국 사회에서조차 군과 정치권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알기 어려운데, 북한처럼 폐쇄적인 사회에서 그리고 권력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던, 어린 시절 북한을 떠나온 사람들이 권력의 동향과 치부를 어떻게 그리 잘 알 수 있을까.

비슷한 상황이 지성호, 태영호 당선자의 김정은 사망설 보도에서 반복된 것 아닐까. 언론에게 그들이 믿을만한 정보원인지, 그들 발언이 믿을만한지의 확인은 그들이 (한때) 북한에 거주했다는 사실보다 중요하지 않다. 북한 거주 사실 덕분에 그들의 주장은 정부의 공식 발표보다 더 믿을만한 것으로 둔갑된다. 취재의 기본인 정보의 교차검증은 ‘북한에 살았던 국회의원 당선자’의 희망사항 중계의 뒷전으로 사라졌다.

두 정치인은 여론에 떠밀리듯이긴 했지만 최소 사과‘라도’ 했다. 물론 사과로 끝날 일은 아니다. 많은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으며 한반도 위험을 높여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인권’을 운운하며 정치인이 되자마자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편견에 빌미를 준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두 정치인 뒤에 숨은 언론은 자신의 오보, 허위정보 유통에 대해 사과가 없다. 자나 깨나 한국 경제를 생각한다고 하면서 한반도 안보 위기를 부추겨 경제에 불안을 지피고 국민들을 불안하게 한 것 등에 대한 사과. 사과를 대신한 것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기 위한 계획된 전술”이라는 뇌피셜급 합리화와 “'건강 이상 확률 0.0001% 이하'..김정은 건재 맞힌 의원들”이라며 자기들끼리 호들갑을 떨다가 한반도 안보를 ‘맞히는’ 급으로 만들어버리는 태세전환이다. 언론과 보수 정치인들의 주술은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될 것만 같다.

* 이선민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858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올립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