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이어즈&이어즈 (Years and Years=이하 이어즈)>는 BBC와 HBO가 공동으로 제작한 영국 드라마이다. 2019년 6부작으로 방영된 이 드라마는 같은 해 가디언지가 선정한 영국 드라마 중 4위에 오르는 화제작이 되었다. 최근 왓챠 플레이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이어즈>는 2019년부터 2034년까지 '미래'의 영국을 다룬다.

그런데 이 '미래'의 이야기가 주목받고 있는 건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혼돈에 빠진 상황에서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떤 미래를 향해 나갈 것인가’라는 불안함의 가정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다.

<이어즈>는 영국의 대표적인 미니 시리즈 <닥터 후>의 러셀 T. 데이비스가 각본을 맡았다. <닥터 후>는 미래에서 온 외계인 닥터 후를 주인공으로 영국의 역사와 정치를 풍자적으로 그려낸 드라마로, 이런 서사의 장점이 <이어즈>를 통해 영국이 맞닥뜨린 현실과 미래에 대한 담론으로 제대로 그려졌다.

평범했던 가족에게 들이닥친 격동의 세계

6부작 SF블랙코미디 <이어즈 앤 이어즈>

이야기의 시작은 2019년이다. 브렉시트 후의 영국, 그곳에 한 가족이 있다. 금융설계사로 살아가는 맏형 스티브(로리 키니어 분)는 회계사인 아내 셀레스트(트니아 밀러 분)와 두 딸과 함께 천정부지로 집값이 치솟는 런던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에 반해 큰딸인 이디스(제시카 하인스 분)는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채 세계를 돌아다니며 소수자의 인권 운동에 헌신하고 있다.

주 정부의 공무원인 둘째 대니얼(러셀 토비 분)은 난민을 담당하는 주택 관리원으로 결혼까지 한 게이였고, 다리를 쓰지 못하는 막내 로지(루스 메이들레이 분)는 아빠가 다른 두 아이를 키우며 학교 식당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로지가 태어날 당시 바람이 나 집을 나간 아버지, 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라이언스 가족의 '어른'은 오래된 집을 지키며 살아가는 증조할머니 뮤리얼이다.

나름 특별하고 평범했던 라이언스 가족은 저마다의 삶을 꾸려가고 있었지만, 격동의 세기에 들어선 영국은 이들이 누리고 있는 '보통'의 삶을 흔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격동의 한가운데 정치인 비비언 룩(엠마 톰슨 분)이 등장한다.

심야 토크쇼에 등장한 비비언 룩. 약칭 비브 룩은 당시 국제적인 분쟁 상태에 빠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태에 대해 욕설을 섞어가며, 관심도 없다며 이목을 집중시킨다. 브렉시트 후 나날이 악화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상황에서 오로지 영국의 문제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비브 룩의 '극우적' 입장은 2025년 드론으로 목숨을 잃은 지방의회 의원의 보궐 선거에서 아이들의 전자기기 제한을 내세우며 압도적인 관심을 끌고, 2026년 아이큐 70 이상인 사람만 투표하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총선까지 승리의 기세를 몰아간다.

하지만 오로지 영국에만 집중하겠다는 극우적 입장이 판치는 것과 달리, 세계는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중국이 만든 인공섬 홍샤다오를 둘러싼 국제적 분쟁에서 결국 미국은 핵미사일을 쏜다. 극우 정권이 들어선 우크라이나에서는 동성애자들을 처단하고, 결국 이런 세계의 변화를 감당하지 못한 런던의 유력 은행들이 파산한다.

평범한 삶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가족

6부작 SF블랙코미디 <이어즈 앤 이어즈>

그 과정에서 집을 판 돈을 은행에 맡겨두었던 스티브 일가는 금융전문가라는 직업이 무색하게 100만 파운드 이상의 돈을 하루아침에 잃고 할머니 집에 얹혀 택배 배달을 하는 신세가 된다. 아내 역시 나날이 발전하는 인공지능의 세상에서 회계사라는 직업의 존재 이유를 잃고 실직하게 된다. 비브 룩은 오로지 영국의 이해를 내세우며 승승장구하여 총리에 이르지만 사람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진다. 사람들은 출근하게 해달라며 '출근하기' 운동을 펼치지만 더이상 예전과 같은 안정적인 직업은 없다.

미국이 홍샤다오에 핵미사일을 쐈을 때 그곳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던 이디스는 그로 인해 ‘피폭'을 당하고 자신의 생을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영국으로 돌아온다. 대니얼은 그런 이디스에게 자신이 사랑하게 된 우크라이나 난민 빅토르의 송환을 위해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이디스의 도움을 받아 빅토르를 영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극좌정권이 장악한 스페인으로 떠난 대니얼은 위험을 무릅쓰고 난민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 그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11가지 직업을 전전하던 스티브는 약물 실험 대상이 되는 바람에 고개가 제멋대로 돌아가고, 막내딸 로지는 직업을 잃고 대신 하던 푸드트럭마저 여의치 않게 된다. 살던 지역은 위험지역으로 철조망이 쳐지고 왕래조차 쉽게 할 수 없게 되고, 정권에 협조하지 않는 사람들이 실종되기 시작한다.

6부작 SF블랙코미디 <이어즈 앤 이어즈>

극좌와 극우가 판치는 세계, 스티브는 자조적으로 말한다. 80년대에 태어나 살아온 자신들의 지난 시대는 ’잠깐 괜찮았던‘, 세계적 위기의 휴식기였을지도 모른다고. 결국 그들이 당연하다 믿으며 살아왔던 '민주주의는 잠깐의 이상'이었냐고.

기후변화가 극심해져 80일, 90일의 홍수가 일상이 되고, 나비가 멸종된 세상. 사람들의 삶이 갈수록 척박해지는 것과 달리 인공지능의 세상은 나날이 발전한다. 어릴 적부터 온갖 IT 문명에 접속했던 스티브 가족의 큰딸 베서니는 자신의 정체성을 디지털 세계에서 찾는다. 트랜스 휴먼을 지향하며 손에 핸드폰을 이식하는 것으로도 부족해 자신의 정신을 디지털로 업로드하고자 하다 사기를 당하기도 하지만, 결국 정부의 권한에 자신을 맡기는 조건으로 디지털 휴먼으로 거듭난다. 머릿속에 ’인터넷 세상‘을 동기화환 베서니는 가만히 앉아서 세상을 본다. 황반변성을 앓아 시력을 잃을 위기의 증조할머니가 줄기세포 수술로 시력을 되찾는가 하면, 택배 배달을 하던 자전거에 치여 목숨을 잃은 라이언스 가족의 아버지는 수장으로 세상을 마감한다.

하지만 그런 문명의 편리함이 사람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사람들을 가스비와 전기세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고, 사이버 공격이란 명목으로 정전이 일상이 된 세상을 살아간다. 실종자 캠프는 고도화된 전파 방해로 핸드폰 수신마저 불가능하게 격리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전으로 손실되는 정보를 대신하기 위해, 다시 종이 인쇄물이 등장한다.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던 BBC가 결국 2029년을 끝으로 방송을 끝낸 날, 정부는 창궐하는 전염병 환자들을 난민 캠프로 보내 '자연스런 정리'를 도모하는 파쇼적 결정을 내린다.

결국은 세상은 우리가 할 탓

6부작 SF블랙코미디 <이어즈 앤 이어즈>

그렇게 2029년을 보내던 날, 함께 모여 더이상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암울함을 나누던 가족들에게 할머니는 그렇게 남 탓, 세상 탓을 하지만 결국 '너희들 탓'이라고 통렬하게 쏟아붓는다.

어쩔 수 없는 작고 무기력한 존재라고 주저앉아 있지만, 사실은 바로 그 작고 무기력한 너희들의 ’선택‘이었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 목화를 생산한 농부들에게 0.01달러의 이익도 돌아가지 않는 싼 티셔츠를 보고 ‘거저네’ 하며 샀던 그 선택, 슈퍼에서 일하던 여성 대신 자동계산대에 들어섰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 선택, 심지어 편하게 생각했던 그 편의주의. 비브 룩을 웃고 조롱했지만 그녀에게 선뜻 손을 들어주고 열광했던 그 선택이 바로 오늘의 너희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세상에서 민주주의를 사라지게 한 것이라고 말한다.

피폭으로 생의 마지막 길에 들어선 이디스. 그녀는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빅토르를 구하러 한다. 아니 빅토르만이 아니라, 난민 캠프 전파를 방해하던 송신탑을 파괴하고 그 실상을 전 세계에 전한다. 인권운동가로 살아온 마지막 선택이다. 자신의 아이가 철조망에 가로막혀 집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자 더이상 가족의 호구지책이 될 수 없는 푸드트럭을 몰고 철조망을 향해 로지가 달린다. 빅토르가 자신의 동생 대니얼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하여 빅토르를 실종자 캠프로 보냈던 스티브는 죽음 대신, 자신이 알고 있는 비브 룩의 비리 정보를 경찰에 보낸다.

6부작 SF블랙코미디 <이어즈 앤 이어즈>

결국 2030년 비브 룩은 현직 총리 최초로 구속되고, BBC는 다시 방송을 시작하게 되었다. 2019년부터 2030년까지 장장 20여 년에 걸쳐 영국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그 상황 속에서 속절없이 희생자가 되던 가족은 스스로 떨쳐 일어나 그 위기로부터 영국의 민주주의를 지킨다.

6부작 짧은 시리즈 안에 몇십 년의 세월을 몰아넣은 <이어즈>는 오늘날 조짐을 보이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능태'의 현실로 그려낸다. 마치 잠수함의 토끼처럼 나비가, 바나나가 멸종된 세상에서도 여전히 각자도생의 삶에 빠져 살던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방기한 결과물은 그 어떤 스릴러와 공포물보다도 섬뜩하다. 무엇보다, 그것이 가능할 것 같은 미래의 모습이기에 더욱.

물론 그렇게 공포스런 미래를 향해 질주하던 드라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람들의 손을 들어준다. 작고 무기력하고 자신들의 삶에 묻혀 살던 그 평범했던 가족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결단과 모험에 자신을 던지고, 그것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잠깐의 이상이 아닐 수 있도록 만드는지 드라마는 극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나 드라마는 해피엔딩이었지만, 괴물이 가고 또 하나의 괴물이 깨어났다는 에필로그의 대사처럼 언제나 위기는 또 다시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을 잠언처럼 남긴다. 드라마로 넘기기엔 엄숙했던 미래의 묵시록이다.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톺아보기 http://5252-jh.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