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코로나 선거’였다고 하지만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외에 코로나19 사태를 어떻게 극복하겠다는 메시지는 거의 없었다. 코로나19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있다는 자화자찬과 총선을 겨냥해 확진자 수를 줄이고 있다는 음모론뿐이었다. 이런 선거에 유권자의 66.2%나 투표를 하러 나왔다는 것은 경이롭다. 국민들은 그만큼 절실했던 것이다. 정치권이 이 절실함을 얼마나 성실하게 현실 정치에 반영하는지 지켜볼 때다.

압도적 승리를 거둔 여당은 열린우리당의 사례를 말하며 오만을 경계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 치러진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차지해 과반을 넘겼지만 내부의 분열과 야당의 강경투쟁 때문에 곧 과반을 잃고 대연정 논란을 거쳐 지방선거에서 기록적인 참패를 했다. 정권을 잃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지금의 여당이 겸손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물론 그때와 지금을 기계적으로 동렬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민주세력’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여당이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같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많다. 정계개편의 결과로 급조돼 리더십 위기를 겪었던 열린우리당과는 달리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리더십은 새정치민주연합 분열 이후 분파투쟁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인지 두고 볼 일이긴 하다. 대권주자들이 여럿 부상하면서 대선후보 경선의 전초전이 시작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보수야당이 강경투쟁을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인지가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것도 차이점이다. 적어도 2006년에는 대권주자인 ‘박근혜 대표’가 있었다. 이에 비하자면 지금은 미래통합당 스스로가 ‘그라운드 제로’를 말할 정도의 상황이다. 비대위를 구성할 것인지 말 것인지, 구성한다면 비대위원장은 누가 언제까지 할 것인지, 그러니까 혁신형 비대위인지 관리형 비대위인지를 놓고도 갑론을박만 많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현실정치의 흥미로운 점은 겸손하고 싶어하는 의지만으로는 겸손한 자세가 취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코너에 몰린 미래통합당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대여강경론을 꺼내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경우에도 ‘겸손’할 수 있을까? 미래한국당이 조금 더 국회의원을 꿔와서 교섭단체를 따로 만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자 ‘더불어스’들도 곧바로 맞불을 놓을 태도를 취하는 걸 보면 답이 나온다.

어떤 상황이건 보수야당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해선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국민은 그런 정치를 원하지 않는다. “오만하면 안 된다”는 주문의 반대편에는 “이제는 야당 핑계를 대선 안 된다”는 개혁에 대한 요구가 있다. 이렇게 보면 겸손의 결과로서 ‘협치’와 ‘개혁’은 양립하기 어려운 문제 같다. 두 요구를 모두 수용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기준이 있어야 한다. 여당이 밀어 붙여도 되는 문제와 보수야당을 끌어 안아야 할 문제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상임선대위원장이 17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합동 해단식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의 당면 과제는 코로나19에 대한 경제 대책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게 시급한 과제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고용 붕괴는 이미 진행 중이다. 정치와 언론이 제대로 감지하지 못해 비명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 같지만 심각한 상황이다. 정부 여당은 지금까지의 대책을 압도하는 대응에 나서야 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개혁’을 밀어 붙이는 결기가 필요하다. 더이상 관료의 저항을 핑계삼을 때가 아니다.

보수야당이 스스로를 재건할 의지가 있다면 여기서는 정부 여당에 협조해야 한다. 대여강경론만큼 걱정되는 것은 자중지란에 빠진 야당이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시나리오다. 리더십 부재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 여당은 명분을 갖고 밀어 붙일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보수야당 내부에서 강경파가 득세할 가능성이 커지는데, 이건 지금까지의 실패를 다시 한 번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느니 정부 여당의 경제 대책에 호응하면서 합리적이고 중도적인 리더십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코로나19 피해 외의 현안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을 포함한 검찰개혁 문제 등이다. 이 문제는 앞서의 코로나19 경제 대책과는 달리 국민적 이견이 존재하는 정치적 이슈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지난해 광화문 광장에 모인 보수 성향의 시민들을 정권이 그저 외면할 수는 없다. 검찰개혁이라는 정권의 숙원 역시 포기는 어렵다. 따라서 시민들을 더 설득하고 명분에 대한 공감대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검찰개혁이라는 이슈에 의문을 갖게 된 것은 정권이 이를 핑계로 삼아 핵심인사들에 대한 비호에 나서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정권이 스스로를 깨끗히 하는 것으로 돌파해야 한다. 그러자면 공수처장 후보 추천 과정에서, 또는 여권과 가까운 주요 인사들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전향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거취 문제 등을 일부러 쟁점으로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여당이 중심을 잘 잡기 위해서는 좌측에서 진보정치가 제 역할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당이 겸손을 무기로 협치를 시도하면서도 개혁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한쪽에서 원칙을 포기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갈등하는 양측이 있어야 중재자도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다. 진보정치가 갈등의 한 축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맡아야 한다.

원내 유일의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선거법 개정 국면에서 이 역할을 잃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문제에 대한 정의당의 태도는 세력의 이득을 위해 원칙을 포기한 것과 같은 이미지를 남겼다. 거대양당의 비례위성정당을 다수 국민들이 기꺼이 지지한 것은 야당심판 혹은 정권심판이 정의당이 내세우는 원칙론이나 진보적 의제 등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의 이런 판단을 탓할 수는 없으니, 결국 스스로의 존재 의의를 설득해내지 못한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정의당은 여당의 위성 역할에 머무는 것에 더이상 만족해선 안 된다. 일부러 모든 정부여당의 정책에 딴지를 걸어야 한다는 게 아니다. 기준은 원칙과 대의명분뿐이어야 한다는 거다. 당장의 유불리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걸 만큼의 무게인 원칙과 대의명분은 보이지 않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정치와 언론에 의해 ‘지워진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선거 때 정의당이 즐겨 언급한 ‘6411 버스’의 정신이라는 것도 이런 얘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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