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래퍼 빌스택스는 데뷔 20년 차에 가까워지고 있는 래퍼다. 바스코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그는 2017년 빌스택스로 이름을 바꿨다. 그에겐 남다른 이력이 하나 더 있다. 마약류 복용 혐의로 두 차례 적발된 적이 있다. 2006년에 대마초 흡연이 적발됐었고, 2018년에 한 차례 더 적발됐다. 이때는 코카인과 엑스타시 투약 혐의도 걸렸다.

Mnet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3>

빌스택스는 2018년 불구속 기소된 이후 음악 발표가 뜸했다. 공식적으로 2019년 4월과 5월, 두 개의 싱글 음원만 발표했다. 그리고 그 사이 사회운동가 같은 활동을 시작했다. 대마초 합법화와 비범죄화를 공론화하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마약 처벌 빛 교화 실태를 다루는 공중파 방송국 영상에 출연해 인터뷰를 했었다. 당국의 마약 사범 관리시스템이 오히려 재범을 부르고 치료 및 구제가 부족하다는 취지였다. 스스로 개인 방송을 진행하며 여러 차례 대마초에 관해 발언하고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해당 영상들은 그가 소속된 레이블 ATMseoul 유튜브 채널에 올라와 있는데, “기호용 대마초는 개인의 자유”라는 주장을 펴기도 하고 대마초 흡연에 관한 통념을 반박하기도 했다. 대마초로 인한 환각 작용은 없다고 말하고, 대마초가 더 강한 마약에 빠지는 예비 단계가 된다는 ‘관문 이론’을 반박했다. 해당 영상에는 주장의 근거가 쓰여있는 출처가 링크되어있다. 단지 경험론에 의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마초에 관해 이런저런 공부를 해 온 흔적이다.

박재범이 진행하는 네이버 나우 ‘Broken GPS’에도 출연해 대마초 합법화를 실현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4월 20일에는 대마초에 관한 유튜브 채널 ‘초록 연기’와 함께 국민 청원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청원 내용은 의료용 대마에 대한 규제를 풀고 대마초 사용을 비범죄화하는 쪽에 맞춰져 있다. 의료적 효능이 있는 CBD 오일의 해외 직구에 대한 규제를 풀고, THC가 필요한 질병들에 대한 처방과 국내 농가의 CBD 제조를 허가하고, 대마초 사용을 비범죄화해달라는 것이 그들의 네 가지 청원 사항이다.

지난 4월 8일 발매된 빌스택스의 새 앨범 ‘DETOX’는 이런 행보가 전면에 돌출된 앨범이다. 앨범의 테마는 다름 아닌 대마초이며, 거의 모든 노래에서 대마초가 언급된다. 앨범의 표지에도 클로즈업된 대마 사진을 박아놓았다. 앨범 발매와 함께 찍어낸 카세트테이프는 ‘그린 테이프’라 명명됐고 대마를 표현하는 초록색 디자인이다. 빌스택스는 대마초를 피우고 수사기관에 적발된 경험을 배경 서사로 끌고 와서 디스코그래피에 집어넣고는 음악적 캐릭터와 서사를 재구성한다. 마약류 복용 혐의로 함께 적발됐던 씨잼이 자신의 앨범 ‘킁’에서 마약을 복용한 이력을 음악적 무드에 녹여내는 방식으로 활용했다면 빌스택스는 훨씬 직설적이다. 대마초가 주는 기쁨을 예찬하고, 대마초 흡연이 일으키는 ‘High’ 한 상태를 음악적으로 묘사하며, 마약 복용과 그로 인한 수감 생활이 래퍼들의 인생 서사를 구성하는 미국 힙합 신에 빗대 자신 역시 이제 “한국 거가 아닌 거”를 하게 된 ‘리얼’한 래퍼라고 너스레를 떤다. 마약 합법화를 주장하고 있지만, 그런 주장을 논설문처럼 고루하게 풀기보다 트렌디한 사운드로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연출하며 거기에 흥건하게 버무려 놓은 앨범이다.

빌스택스의 새 앨범 ‘DETOX’

한국에서 대마초를 복용하다 적발된 음악인은 여럿 있었고, 배우 김부선 씨는 2004년 대마초 처벌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했었다. 다만, 온전히 대마초라는 주제 하나로 앨범을 기획한 사례는 확신할 순 없지만 빌스택스가 처음이 아닐까 한다. 민감한 주제를 향해 어떤 금기를 대하듯 아슬아슬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 혹은 누려야 하는 것으로서 당연하다는 듯 못 박고 이미 그 한복판에 들어간 상태로 천연덕스럽게 그루브를 타고 있다. 앨범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거기 실린 노래들이 익숙해지는 만큼 노래에 담긴 소재 역시 익숙해지고 금기에 무뎌지는 느낌이 든다. ‘DETOX’는 절대다수 한국인의 삶에서 괴리된 대상, 금지된 관념을 자신의 일상처럼 펼쳐 놓고 청자들을 초대한다. 한국 음악사에서 표현되어온 소재의 범주를 한 걸음이라도 넓혀 놓은 셈이다.

미국 힙합에는 대마초를 다루는 노래가 흔하다. 스눕독, 위즈 칼리파 같은 유명 래퍼들이 대마초 브랜드를 론칭하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에선 11개 주가 여가용 대마초를 합법화했고 더 많은 주가 의료용 대마초를 허용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대마초를 피운 경험이 있다고 밝혔을 정도로 사회가 관용적이다. 세계로 초점을 넓혀도 우루과이, 캐나다가 합법화한 상태다. 대마초 유통과 공급은 단속하되 소비자는 처벌하지 않는 비범죄화를 실시한 국가도 많다. 이런 추세의 배경에는 대마초가 금지돼야 할 만큼 사회적 피해를 일으키는지 의견이 분분하단 사실이 있다. 대마초가 담배보다 중독성이 낮다는 연구 보고서도 있다. 다만 경성 마약, 소위 하드 드럭으로 불리는 마약들은 같은 잣대로 볼 수 없다. 이런 약물들은 중독성과 심신의 피해에서 대마초와 달리 논쟁의 소지가 현저히 적다. 미국 힙합 신 내부에서도 래퍼들이 마약을 미화하며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마초 합법화에 찬성할지 반대할지는 저마다의 의견에 달려있다. 다만 대마초 합법화를 반대할 권리가 있는 만큼 지지하는 이들도 의사를 표명할 권리가 있다. 현재 대마초 흡연이 처벌받는 상태라면 현행법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지만, 그런 한편 현재 입법된 법률이 합리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비판적으로 판단하는 사고도 필요하다. 법은 천지창조와 함께 신이 내려준 계율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이고 인간이 고쳐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약류 사범으로 처벌받았다고 해서 그것을 판단할 자격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법이 규율하는 실재를 가장 밀접하게 경험해 본 사람이기에 대마초의 실제 효과와 형벌의 정당함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느낄 수 있고 목소리를 낼 동기도 커진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사회는 사회 각 문제에 관한 당사자들 목소리에 귀를 열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주장을 도덕적으로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사실관계에 비추어서 평가하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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