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이 5주를 충무로의 덕을 톡톡히 봤다. 여배우에 이은 명품조연 특집은 특히나 1박2일에 남긴 혜택이 크다. 특급 게스트 박찬호와 여배우들이 조연들보다 시청률은 더욱 높게 끌어올렸겠지만 남는 것은 오히려 조연들이 더욱 크다. 2주간의 조연 특집이 끝나고는 단연 김정태가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단 한 번의 출연으로 논란 항시 대기 김종민이나 적응기가 길어지고 있는 엄태웅에 긴장과 훈수를 두고 간 인물이다.

그러나 역시 조연들이었다. 추노의 천지호처럼 때로 주연을 뛰어넘는 조연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조용히 영화나 드라마에 녹아드는 역할이 조연의 몫이다. 김정태는 아주 적극적으로 예능을 하고자 작정한 것이었지만 나머지 배우들은 그것이 여의치 않아 보였다. 그렇지만 그들이 1박2일에서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진짜 야생이었다. 사실 그동안 강호동이 목청이 터져대라 외쳐댔던 야생은 1박2일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산다면야 그 정도로도 충분한 야생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간 1박2일에서 보여준 것은 야생이라고 하기에는 부족감이 많았다. 그렇지만 순포 해수욕장에서 저녁을 준비하면서 이 빛나는 대한민국 대표 조연들은 묵묵히 야생의 진수를 몸소 보여주었다. 험하다면 험할 수 있는 영화판에서 몸에 익은, 스타가 아닌 사내로서 겪어온 경험과 배짱을 보여줬다. 예능에는 결코 1박2일 멤버들을 따라갈 수 없는 초보지만 험한 역할도 마다 않았던 강단과 근성으로 얻은 진짜 리얼 야생만은 확실한 한수를 보였다.

조연들이 보여준 진짜 야생의 정점은 커다란 솥을 녹슨 파이프에 꿰어 불에 올려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김정태가 제대로 만든 칼국수 사리를 넣고 음식을 마무리하는 과정은 곱게 자란 사람은 차마 먹지 못할 음식이라고 왼고개를 칠 수 있을 정도다. 당연히 여배우들의 저녁식사와는 차원이 다른 남자들의 막무가내이며, 장비와 준비가 충분하지 않아도 무작정 떠났던 젊은 시절의 추억의 재연이었다.

흔히 연예인, 영화배우 등의 명칭은 아무래도 일반인들보다는 화려한 뉘앙스를 준다. 그러나 세상 모든 연예인과 영화배우들이 화려하게 사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또한 영화를 만드는 제작 현장은 도무지 그 화려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보기에도 군침이 도는 오징어 된장 칼국수로 식사를 마치고 삼삼오오 어울려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있었다. 거기에서 성지루와 고창석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전해주었다.

먼저 성지루는 연기에 대해서 묻는 이승기의 질문에 우회적으로 대답을 했다. 영화는 부담이 세다면서 그 이유를 다른 것이 아닌 필름값을 거론했다. 아닌 게 아니라 주연도 아니고 조연이나 단역이 NG를 내거나 감독이 만족할 만한 연기를 못한다면 미안한 것도 있겠지만 다음 캐스팅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 4분짜리 필름 한 롤이 30만 원 정도 하는데 그것을 못 쓰게 할 수 없다는 말은 이들이 연기에 들어가는 데 얼마나 큰 긴장을 하게 되는지를 역설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자 고창석은 다른 일화를 소개했다. 감독이 자기들은 기본적으로 한 신에 한 테이크 간다. 더 찍고 싶은 분은 필름을 사오라고 했다는 웃지 못 할 말을 했다. 그것이 한국 영화의 현실이고, 출연자 한 명에 여러 대의 카메라가 밀착하는 예능의 환경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격차이다. 어떻게 들으면 좀 비참한 생각까지 들게 하지만 항상 그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을 것이다. 그 현장을 오래 겪으며 명품조연이라 불릴 자격을 얻게 된 그들에게는 연기를 논하기 전에 누구보다 강한 생존의 힘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박2일의 연속 특집의 1탄 여배우 편은 눈이 즐거웠지만 조연 편에서는 다만 웃고 보기에는 미안한 마음이 들 무거운 영화의 현실이 보였다. 그래서 여배우 편을 통해서 영화의 화려한 외면을 보였다면 조연 편에서는 스크린 뒤편에 존재하는 시끌벅적한 현장을 끌어냈다. 그것까지 나영석 PD의 노림수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충무로 특집이 여배우에서 끝내지 않고 조연까지 이어져 비로소 완성된 것은 탁월한 기획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여배우 특집은 시청자를 겨냥하고, 조연 특집은 1박2일 스스로를 위한 MT였을 수도 있다. 여전히 1박2일은 대한민국 시청률 1위 예능이지만 나름 매너리즘에 빠져 있을 수도 있는 기존 멤버들에게 조연들의 경험과 자세를 보여줌으로 해서 요즘은 통 외치지 않은 버라이어티 정신을 재정비할 계기를 만들고자 했을 수도 있다. 그런 의도가 없더라도 조연들은 그것을 충분히 보여주고 갔다. 그들의 근성을 제대로 충전할 수 있다면 1박2일의 자리는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